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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고 정의롭고 순박한 한 해를 꿈꾸다
정직하고 정의롭고 순박한 한 해를 꿈꾸다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ㆍ민속학
  • 승인 2015.01.05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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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年새해의 지킴이, 평화와 희생의 양

 

십이지신도 미신발이라대장. 양은 순박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동물이다.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2015년 새해는 을미년 양띠의 해다. 양띠 해는 乙未(푸른 양)를 선두로 해 丁未(붉은 양)·己未(노란 양)·辛未(흰 양)·癸未(검은 양) 등으로 육십갑자에서 순행한다.

희생의 속죄양, 정직과 정의의 상징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贖罪羊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징벌하는 신에 대한 희생물로 바쳐졌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소, 돼지와 함께 중요한 제물로 쓰였다.

양은 어미의 젖을 먹을 때, 앞다리를 꼭 꿇는다. 무릎을 꿇고 젖을 빠는 모습에서 은혜를 아는 동물로,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노후를 봉양하는 모습에서 효도를 깨닫게 한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을 갖고 있다. 우리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양띠인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서 부정을 지나치지 못하고 너무 맑아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타고난 성격이 순박해 양하면 평화를 연상한다. 겁먹은 듯한 순한 눈망울과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양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안락, 그 자체다. 양은 또 순박하고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다.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 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별로 없다.

‘양띠는 온화하고 온순해 이 해에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식의 속설도 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착하고, 의롭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꼽았다. 또 羊은 글자 형태를 보면‘상서로울 상(祥)’과 같고, 音으로는‘밝을 양(陽)’과 같아서 서로 통해 길상의 의미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을 치고 기르는 사람을 ‘선한 목자’라고 한다. 성서에 맨 처음 나타나는 동물이 양이고, 500회 이상 양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맨다”는 성서의 구절을 비롯해 예수 자신이 양 치는 선한 牧者였다.

동양의 신선들도 양을 기르며 타고 다녔다. 어질고 착한 양치기 소년「黃初平傳」설화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 그림은「갏華鞭羊圖」이다. 채찍을 들고 있는 황초평과 그 뒤에 흰 양들이 그려져 있다. 비록 두 세 마리의 양을 그렸지만 이미 수만 마리의 양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황초평은 丹溪사람인데 15세 때 집에서 양을 치라고 내보냈더니 신선이 어질고 착한 것을 보고 데리고 金華山石室로 가서 신선도를 닦게 하니 40여 년 간 집을 잊고 살았다. 그 집에서는 형인 黃初起가 아우를 찾으려고 여러해 동안 산을 헤매고 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市中에서 한 도사를 만나 아우의 행방을 물었더니 금화산 중에 황초평이라는 양치기 소년이 하나 있다고 가르쳐 준다. 황초기가 도사를 따라가서 아우를 만나보니 아직도 15세 때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산 동쪽에 있다고 한다. 초기가 가서 확인하자 양은 없고 흰 돌만 산에 가득한지라 아우에게 돌아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황초평은 형과 함께 가서 “양들아 일어나라”하니 수만 개의 흰 돌이 변해서 양이 됐는데, 수만 마리였다고 한다.

양 꿈을 꾸고 임금이 된 이성계
조선 태조 이성계는 양 꿈을 꾸고 임금이 되기도 했다.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의 얘기다. 그가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고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꿈을 깼다. 無學大師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더니 대사는 곧 임금에 등극할 것이라고 해몽했다. 즉 한자의 羊에서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각각 떼면 王자만 남게 돼 곧 임금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 이후 李太祖가 조선을 건국해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된다.

양은 사람에게 안식과 여유를 주는 동물이기도 하다. 보통 잠이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양을 센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어느덧 머릿속엔 양떼 목장이 되면서 몽롱해진다. 영어 단어 sheep과 sleep의 연상 작용도 있지만 양떼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분위기가 스르륵 잠이 오게 만든다. 을미년, 새해에는 수호동물인 양처럼 모든 일이 평화롭고 정의롭게 술술 풀리기를 기원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ㆍ민속학
중앙대에서「한국 띠동물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는『운명을읽는코드열두동물』, 『 한국동물민속론』,『 한국馬민속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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