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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고 근원이 맑아야 하는 이유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고 근원이 맑아야 하는 이유
  • 이승환 고려대ㆍ철학과
  • 승인 2015.01.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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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정본청원’을 추천했다

이승환 고려대·철학과
‘正本淸源’이란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교수집단이 이 성어를 신년화두로 채택한 이유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길이 ‘정본청원’과는 너무도 반대되는 곳을 향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본청원과 반대되는 길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本崩源濁’ 즉 ‘근본이 붕괴되고 근원이 혼탁해진 상태’가 여기에 해당할 것 같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생명을 대가로 얻어낸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에 대해 깨닫게 됐고, 우리 사회의 운영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하기 짝이 없으며 지도자급 인사들의 의식구조 또한 얼마나 혼탁하기 그지없는지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근본이 붕괴되고 있다는 징후는 ‘공공성의 실종’으로부터 감지된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 사령부 등 국가의 공공기관이 특정 정당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私傭으로 동원됐고, 법원은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정치개입은 있었으나 선거개입은 없었다”라는 궤변으로 면죄부를 안겨줬다. 검찰이 행정권력의 시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는 정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마저 행정권력의 시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사법적 정의의 실종은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 정당에 내린 정당해산 및 의원직 상실 선고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닌 헌법재판소마저 행정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삼권분립의 정신은 훼손되고 우리의 정치상황은 ‘민주 이전’의 시기로 회귀하게 됐다. 대한민국 호는 바야흐로 1970년대를 향해 역주행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공공성의 실종’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 나라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이처럼 부실하다는 점에도 놀랐지만,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보여준 책임의식의 결여와 냉담함에 새삼 놀랐으며,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전 현직 관료들과 민간업체 간의 유착관계에 다시 놀라야만 했다.

해피아 뿐 아니라 원전마피아와 방산마피아 등 수많은 관피아의 변종이 나라의 근간을 좀먹고 있지만, 이를 척결하기 위한 국가 지도자의 의지도 엿보이지 않으며 입법부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책도 감감 무소식이다. 수많은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결된 사회의 공적 영역이 이처럼 부실하게 방치돼 있고, 이를 운영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의 의식이 이처럼 혼탁하게 썩어있으니 본붕원탁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공공성의 위기’는 지난해 말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논란에서도 두드러지게 감지된다. 『논어』에는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 그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라는 말이 있다.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임무를 맡은 국무위원들과의 소통은 외면한 채 사석에서 몇몇 비선 실세들과 국정을 논한다면 국가는 공적 기구가 아닌 사적 소유물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역사서에 빈번하게 보이듯이, 환관과 내시에 의한 국정의 농단은 전문성과 책임성의 결여, 그리고 공공성과 공정성의 훼손으로 말미암아 나라를 망가지게 하고 민생을 피폐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근본이 바로 서야 하고 근원이 맑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管子』에서는 나라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근본이 바로 서야한다고 말한다. “나라에는 네 가지 근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며, 세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무엇을 네 가지 근본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禮, 둘째는 義, 셋째는 廉, 넷째는 恥이다.”

관자가 말하는 ‘예’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한다. 민주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배려와 관용 등 사회통합적 덕목의 실행을 통해 완성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지고 증오감과 적개심에 의해 민심이 사분오열된 나라는 어지러운 나라이다.
‘의’는 의로움을 말한다. 중세 시대에 악과 불의에 대한 최종 심판관은 하나님이었지만, 민주사회에서 부정의에 대한 심판은 판관의 사려깊은 법해석과 정의로운 판결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법해석과 공정치 못한 판결이 난무하는 사회는 무질서한 사회다.

‘염’은 청렴함을 말한다. 나라 살림을 떠맡은 관료들과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인들이 청렴하게 본분을 다할 때 그 나라는 부강하게 된다. 민간업체와 먹이사슬로 연결된 부패관료가 많아지고 무기 살 돈으로 사금고를 채우는 비리 장교가 늘어날수록 나라는 위태롭다.

‘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여타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기반성의 감정이다. 공약을 줄줄이 폐기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치인, 유체이탈식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얼굴 붉힐 줄 모르는 지도자가 많아질수록 그 나라는 인간사회에서 멀어져 동물의 왕국에 가깝게 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근본이 바로 서고 근원이 맑아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훼손된 삼권분립의 원칙과 무너져버린 민주주의의 기틀을 단기간에 바로 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공적 영역 요소요소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혼탁하고 무능한 인사들 대신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가 들어서기를 기대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독주하는 행정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대안정당과 언론매체마저 무력화된 작금의 상황은 한치 앞의 미래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고 근원이 맑아지기 위해서는, 삼권분립의 심화, 사법부의 독립, 야당의 견제기능 강화, 언론의 제자리 찾기, 시민사회의 성장, 유권자들의 주권의식 회복, 학교에서의 민주시민 양성 등 수많은 과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이 중첩적 과제들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명약이란 없다. 출발점은 역시 ‘사람’이다.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면서 건강한 시민이 늘어나기를 기다리는 일, 이것이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王充의 시 한 구절로 위안을 삼아본다. “천지는 세월이 어지럽다고 하여 봄날을 없애지 않는다(天地不爲亂歲去春).” 왕충의 시처럼 눈을 치켜뜨고 힘을 비축하며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다시 봄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승환 고려대ㆍ철학과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횡설과 수설: 4백년을 이어온 조선유학 성리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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