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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읽는 ‘생물학’ … 과학저술의 미덕을 보이다
논리적으로 읽는 ‘생물학’ … 과학저술의 미덕을 보이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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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이일하 지음|궁리|384쪽|18,000원


‘21세기에 다시 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부제를 단 이일하 서울대 교수(생물학과)의 책이 나왔다. 30년간 꽃을 공부해온 과학자인 이 교수는,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냈고, 개화 유도 분야의 파이오니어로 활동해왔다. 서울대 기초교육원부원장으로 문과생들도 생물학의 기본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교과목을 개발, 운영 중이다.


이 교수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데는 생물학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의도도 작용한다. 그의 주변에서 만나는 이들이 생물학에 대해 품었던 태도는 ‘생물학=암기과목=재미없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생물학을 공부 혹은 연구하면서 생물학이 암기 과목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연구 생활을 하면서는 생물학이 물리나 수학, 화학처럼 논리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전형적인 과학과목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됐다”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자신의 이런 인식과 주변의 인식 사이에 벌어진 틈, 즉 인식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이러한 괴리가 발생한 배경을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에서도 생물학을 논리적 학문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대 입시 면접 및 구술고사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 일주일간 합숙했을 때, 이 교수는 교과서 속 생물학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학문이 아니라 잡다한 지식의 암기를 필요로 하는 박물학이자 논리적·수리적 사고가 필요 없는 학문으로 비춰지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집필 배경이다.


사실 책의 부제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천재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1948년에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도 이 제목을 ‘차용’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슈뢰딩거는 DNA가 무엇인지 유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기에 생물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 시도한 책을 썼다. 당시까지 축적된 물리적·화학적 지식을 동원해 생명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한 것이다. 그가 지금 시대의 생물학적 지식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책을 쓸까를 상상해보고는 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잃어보면 한층 더 재미있게 생물학을 접할 수 잇을 것 같다.”


또 하나, 저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고1인 저자의 아이에게 생물을 이해시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고민해 얻은 성과물이다. 어렵지 않고 쉽게, 그러나 생명 전반을 차분하게 설명함으로써, 누구나 논리적으로 생물학에 다가설 수 있게 했다는 점은 저술의 미덕이다.
책의 구성도 그런 접근 때문인지, 생명을 중심에 놓고, ‘생명은 흐른다 → 생명은 반복한다 → 생명은 해독기다 → 생명은 정보다 → 생명은 진화한다’ 이렇게 5부로 틀을 짰다. 생명체의 작동원리를 바탕으로 서술한 것이다.


본문 곳곳에 우리 교과서에서 바로잡아야할 생물학 교육의 면면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멘델의 법칙 가운데 ‘우열의 법칙’이 우리 교과서에서만 가르치고 있는 잘못된 교육방식임을 지적하며 왜 그런지를 비롯해 우리 생물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이런 친절한 저자의 설명 때문에, 책은 한없이 쉽게 읽히지만, 내용은 묵직하고 깊기만 하다. 과학책도 이렇게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좋은 사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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