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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데다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 ‘삭족적리’ · ‘지통재심’의 한 해
무능한 데다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 ‘삭족적리’ · ‘지통재심’의 한 해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4.12.20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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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로 본 2014년
▲ 2014 올해의 사자성어 ‘指鹿爲馬’는 하영삼 경성대 교수(중어중문학과)가 『金文集成』에서 집자했다. ‘지록위마’는 곽복선 경성대 교수와 고성빈 제주대 교수가 추천한 사자성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指鹿爲馬’다. 지록위마는 『史記』에서 유래된 말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르는 뜻이다.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에는 사실이 호도됨을 뜻하기도 하고, 억지를 부려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도 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부터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사건의 연속이었다.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속이는 데 급급했고, 뻔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왜곡된 진실을 꿰뚫어보는 예리함은 더해졌고, 진실을 향한 열망도 커졌다. 지록위마는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정부와 권력자를 향한 따끔한 충고이기도 하다.

지록위마를 선택한 교수들은 위선이 진실을 가리는 해였다고 평가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과)는 국가권력이 실체를 가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세월호 사태의 본질은 자본 규제와 인명구제에 실패한 국가의 실패다. 정부가 사고로 규정해 진실규명을 외면하는 것은 국가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로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진홍 인제대 교수(사회체육학과)는 술수만 난무하는 현재 상황을 빗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민 제주한라대 교수(간호학과)는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운영에 대한 총괄적인 지적도 나왔다. 서혜란 신라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십상시니 7인회니 하면서 권력싸움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당사자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당당하니 참으로 난세다”라고 비판했다. 이규성 인하대 교수(지리정보공학) “담뱃값, 공무원 연금, 대한항공 등 연초부터 연말까지 우리 사회의 이른바 가진 사람들의 뻔뻔함을 잘 표현한 사자성어”라고 표현했다.

무능한 데다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 비판에 무게를 실은 교수들은 ‘削足適履’를 택했다. 지록위마와 불과 4.3% 차이였다. 삭족적리는 『淮南子』 券17 「說林訓」에 나오는 말로, 신발이 너무 작아 발에 신발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발을 자르려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이처럼 원칙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의미한다.

이차영 한서대 교수(교양학과)는 “세월호를 포함한 모든 사고와 부조리한 현실, 이를 덮고 넘어가려는 부적합한 대책들 모두가 삭족적리의 자세에서 기인했다”고 말했다. 서재선 그리스도대 교수(중국어과)는 “비리가 한꺼번에 터지고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회풍조가 만연하다”며 추천 이유를 밝혔고, 옥일남 서원대 교수(사회교육학)는 “욕심을 위해 원칙을 버리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본적인 원칙을 존중하고 이를 정치, 경제, 생활 모든 방면에 적용해 합리적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발돋움했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至痛在心’와  ‘慘不忍睹’에는 올 한해 큰 슬픔을 안겼던 세월호 참사를 돌이켜보는 교수들의 마음이 담겼다. 지통재심은 효종 8년, 영중추부사 이경여가 상차해 간언의 수용과 폐단의 제거를 청했는데, 이에 대한 비답에 ‘至痛在心日暮道遠, 즉 지극한 아픔이 마음에 있는데 시간은 많지 않고 할 일은 많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지통재심을 택한 손기동 협성대 교수(음악학과)는 “실수와 무책임과 비인간성으로 인한 아까운 생명들을 잃어버린 것은 온 국민의 아픔이었다”라며 한 해를 회상했다. 강수택 경상대 교수(사회학)도 “일부 지도자들이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감정을 일깨우는데 적합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희망을 내다보는 의미도 곁들였다. 이경돈 신구대 교수(실내건축과)는 “아픔은 가슴에 담아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참불인도는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이 없단 뜻으로 현대 중국 작가 峻靑의 『故鄕雜憶』에서 기원했다. 참불인도를 선택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철학)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국가의 무능과 기업의 부도덕, 슬퍼하는 유족을 바라보는 일부시민의 잔인한 시선과 폭력적 패러디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줬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을 애도하는 뜻도 있다. 김재훈 대구대 교수(경제학과)는 “거짓 공약으로 기초연금인상이 거부됨으로써 노후가 막막해진 노년층, 연금제도 개편으로 사보험 시장으로 내몰린 공무원 등 한국사회 곳곳에서 겪고 있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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