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2:35 (화)
“지식인 사회의 공론장 혼탁, 사이버공간의 황폐화 부른다”
“지식인 사회의 공론장 혼탁, 사이버공간의 황폐화 부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18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45회차 강연_ 박명진 서울대 명예교수,‘ 여론과 지성: 인터넷과 SNS 시대 한국 사회의 여론과 지식인’

지식인사회의 공론장 타락은 사이버공간의 황폐해져가는 현상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지식인사회의 혼탁한 공론장의 행태가 인터넷, SNS 매체들의 구조적인 특성과 맞물려 사이버 공간의 공론장 황폐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그리고 SNS. 한국사회의 속도를 측량할 수 있는 척도들이다. 이들은 디지털문화를 구성하면서 발빠르게 사회 변화를 추동해왔다. 이정춘 중앙대 명예교수(신문방송학)는 이러한 현상이‘생각이 사라지는 사회’를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6일‘문화의 안과 밖’45회차 강연자로 나선 박명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여론과 지성: 인터넷과 SNS시대 한국 사회의 여론과 지식인’이란 강연에서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은 SNS와‘지식인’이라는 대목이다. SNS를‘여론’의 자리에 등가로 놓는다면, 박 교수의 지적은 결국‘여론과 지식인(의 책무)’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박 교수가 보기에, 오늘날 지식인들은 예전의 빛나는 이상의 후광을 잃은 존재가 됐다.“ 지식인들도 정치적 지향, 권력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기되면서‘성령’에 버금갔던 힘의 원천을 잃고 왜소해졌다.”그렇다면 집단지성이 맹위를 떨치는 오늘날, 정치권이나 정부기관, 기업체들이“여론의 힘이 막강해진 이 시대에 지식인을 경청하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고용해 여론 관리에 힘을”쓰는 시대, 여론과 지식인의 관계를 재고하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진단일 것이다.

박 교수가 던진 질문은 간단하다. 여론과 지식인의 관계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등에 업고 탄생한 근대의 쌍생아인데, 지식인은 여전히 여론에 책임지는 계몽적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식을 생산하는 기능인으로서 혹은 집단지성의 일원으로서 겸손하게 스스로 자리매김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그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그의 강연을 발췌했다.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박명진 교수는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육부총장, 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이미지 문화와 시대 쟁점』,『 두꺼운 언어와 얇은 언어』(공저), 『세계화와 미디어 연구(De-Westernizing Media Studies)』등의 저서가 있다.
지성(intelligence)은 간단하게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통해서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여론(l’Opinion Publique)은 공중이나 공동체에 의해 공유된 감정이나 사고를 지칭했다. 이것은 단순한 보통명사가 아니라 상당히 깊은 정치적인 함의가 실린 개념이다. 19세기말,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민중세력이 성장하고 여론의 주체로서 자리 잡기까지 여론과 지식인은 민주주의 추진체의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분리 불가능한 관계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여론이나 지식인의 개념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집단지성과 웹의 시대에 지식인은 누구이며 여론과는 어떤 관계인지 혹은 지식인은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무수한 미디어들이 열어놓은 수많은 공론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의무와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자신의 학문동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큰 범위의 일반 공중을 대상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자 한다. 특히 미디어가 만발한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경계하면서도 협조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입장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미디어 활용가가 돼야 한다. 여론 주체가 민중으로 확장되면서 여론에 대한 인식은 불안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되며 교육받지 못한 민중의 의견이라는 것이 신뢰할 만한 판단이라고 볼 수 있을지 지식인 사회를 많이 혼란시킨 것 같다. 실용적 지식인들은 정계와 업계의 필요에 부응하는 여론조사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론을 둘러싸고 새로운 차원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민중세력의 성장과 함께 여론은 부르주아 전용의 것에서 민중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대중매체의 발달은 여론의 형성에서 전통적 지식인들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저널리즘의 손에서 놀아나는 의심스러운 개념이 되기 시작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여론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여론은 유동적, 부유하는 생물처럼 흘러 다니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실시되는 그 순간의 여론일 뿐이라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보인다. 또한 여론은 국가 차원, 정치권력의 차원에서 조작의 유혹을 느끼며 그 가능성 역시 열려 있기 때문에 여론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 할 수 있는 것이냐는 신뢰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론을 아는 것,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고 여론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정치 생활의 지속적인 관건이 됐다. 여론을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진 정치, 기업, 단체 등 사회의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구들의 필요에 부응해서 1930년대에는 미국에서 여론조사기법이 개발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상호 작용하고 결합해 결국 적합한 의사결정을 해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지혜를 모으는 효율적 방법이 여론조사라고 설명한다.

1987년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전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국가적 이슈(National issue)가 사라지면서 지식인 사회의 분화가 시작됐고 영역별 독자성도 다시 살아났다. 획일화되다시피 했던 공론장도 다변화되면서 분야별로 다양한 쟁점과 목표가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적 이슈는 소비문화, 인터넷, SNS, 한류, 참여문화로 탈정치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지식인 사회의 공론장 타락은 현재 사이버 공간의 황폐해져가는 현상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지식인 사회의 혼탁한 공론장의 행태가 인터넷, SNS 매체들의 구조적인 특성과 맞물려 사이버 공간의 공론장이 황폐해져 가는 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공간이 정보 확산과 여론형성 과정에 작용하는 영향력의 범위를 확장하고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기반을 제공해서 등장 초기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각광받았던 트위터,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가 최근에는 이념·지역·계층·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소통 자체를 봉쇄하는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SNS는 같이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연결돼 같은 정보에 노출되고 의견교환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동류의식이 강해서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으로 흐르고 전염성이 강하다. 문제는 대중적 의사소통 능력이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언어 구사 능력의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해 얻게 되는 지적 능력에 의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 소수의 우수한 개체나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웹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호작용과 그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 모두 집단지성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좋은 예가 위키피디아다. 이것은 수많은 일반 개인들의 참여로 이뤄진 방대한 지식 데이터베이스이다. 이 사이트를 만들어가는 핵심 인력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무수한 마니아, ‘잉여’젊은이들로 알려져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잉여인간의 상태가 심화되면‘剩餘king’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공중은 점점 더 노력을 요하는 논증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근거 없는 주장을 강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넷 다중은 흥미를 느끼고 필요를 느끼는 일이면 헌신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엔하위키 미러를 위시해서 여러 종류의 장르 문화의 확산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잉여’와 마니아들의 활동 그것을 볼 수 있다. 그 비밀의 열쇠 중 하나는 위키피디아와 엔하위키 미러의 지식 담론 형태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