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2:00 (수)
‘명예퇴직’ 카드 만지작거리는 대학들의 계산법은?
‘명예퇴직’ 카드 만지작거리는 대학들의 계산법은?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12.15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조조정이 불러온 대학사회 풍경

수도권 소재 4년제 A대학은 최근 교수와 직원들에게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직원뿐 아니라 교수도 11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이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숫자도 상당한 수준이다. 2012년에는 교수 13명, 직원 20명이 명예퇴직했다. 지난해에도 교수 18명과 직원 12명이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A대학은 최근 몇 년간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세게’ 추진한 대학에 속한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한 번 공고를 냈다가 두세 번씩 추가 공고를 내기도 한다”며 “눈에 보이는 강압적 분위기는 없지만 학교가 명예퇴직을 권하는 분위기는 있다”고 전했다.

수년 동안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인하, 대학평가 등으로 재정 압박을 겪으면서 ‘명예퇴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대학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수입은 특별히 늘어날 곳이 없거나 줄어드는데 돈 쓸 곳은 많아지면서 재정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등 대학 구조조정을 앞두고 미리 대응에 나서는 측면도 있다.

지역 4년제 사립대학인 B대학의 경우가 그러하다. B대학도 이달 들어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직원뿐 아니라 교수도 신청 대상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2년 전에도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교수는 1명뿐이었다. 이번에도 문의는 많이 왔는데, 실제 신청한 교수는 1~2명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대학이 교수들에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것은 구조조정 영향이 크다. 이 대학은 특성화 사업과 구조개혁 평가 등을 대비해 내년 입학정원을 대폭 감축했다. 당장 내년에만 등록금 수입이 20억원가량 감소한다. 이 대학 관계자는 “구조개혁 평가를 대비해 장학금 지급률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고, 교직원 호봉 승급분도 있다. 퇴직수당도 40%를 부담해야 하는데, 수입은 오히려 줄어 재정적으로 어렵다. 솔직히 조금은 명예퇴직을 장려하고 싶다”라고 토로했다.

고연봉인 정교수들이 명예퇴직하고 신임 교수를 임용하게 되면 전체 교원 확보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도 한 이유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명예퇴직 카드를 끄집어낼 대학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2011년부터 명예퇴직 등 사립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필요한 운영비를 융자해주고 있는데, 올해 처음 수도권의 한 4년제 사립대가 1억원을 신청한 사례가 나왔다. 과거 일부 지방 사립대는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을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유영훈 전국대학노동조합 사무처장은 “20년 이상 재직한 고연봉의 교수들을 명예퇴직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를 비정년트랙으로 채우게 되면 전체 교원확보율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높이면서 비용은 절감할 수 있다”며 “대학당국은 비용 측면에서 바라보니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인적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연금 개혁도 명예퇴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내 처리는 무산됐지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공무원연금법 개정은 피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사학연금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육부가 내년 2월 퇴임하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정부 훈·포장 신청을 받은 결과 국·공립대 교수 가운데 명예퇴직자가 늘었다.

훈·포장 추천이 올라온 교수 가운데 명예퇴직자 수는 2014년 2월 61명, 8월 63명, 2015년 2월 62명으로 변화가 없었는데, 각각 17명, 11명이었던 국·공립대 교수가 31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명예퇴직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연금 개혁 같은 것들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