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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재를 마치며 지중해학을 생각하다
지중해 연재를 마치며 지중해학을 생각하다
  •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장
  • 승인 2014.12.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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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_에필로그

▲ 화가 터너(Joseph Turner)의 그림을 조각가 윌슨(D. Wilson)이 종이에 찍어낸 「고대 카르타고-루글러스의 승선(Ancient Carthage-The Embarcation of Rugulus)」(1838)

1년여에 걸쳐 지중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그들의 속살을 들추어 보면서 지중해의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장
지중해는 바다로 연결된 땅이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지중해의 국가들은 지중해라는 큰 바다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었다. 이들은 지중해에서 때로는 전쟁을 하며 때로는 교역을 하며 끝없이 서로 소통했고 교류했다. 그 과정이 지중해의 역사이고 그 결과가 지중해의 문명이다.
외견상 달라 보이는 지중해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속살을 들춰보면 놀랄 만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북아프리카에서 로마의 흔적을 쉽게 찾고, 로마문명에서 아랍인들의 예술적, 문화적 성취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페인에 건설된 해양 무역 도시 카르타헤나(Cartagena)는 로마 시대에는 ‘Cartago Nova(새로운 카르타고)’로 불렸다. 이는 이 도시가 카르타고(Carthage)인들에 의해 건설됐다는 의미다. 지중해의 동쪽 끝에 있던 카르타고인들이 그들의 뛰어난 선박 건조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지중해를 가로질러 반대편에 있는 스페인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남겼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은 지중해가 지중해 주변 국가와 문명권을 분리한 장벽이 아니라, 이들을 연결해 준 주요 통로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지중해의 기층 문명인 오리엔트문명이 없었으면 그리스, 로마문명은 태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가 하면 헬레니즘과 비잔틴 문명이 없었으면 이슬람문명은 사막에 사는 야만인들의 초라하고 조잡한 습작일 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중해권의 문명이라고 하는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과 이슬람 문명은 주변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성취를 받아 들여 더욱 진화된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로마시대 여인들의 머리 장식은 고대 이집트 여인들의 머리 장식을 흉내 낸 것이었고,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인 황금사원(일명 바위돔 사원)은 유대인들의 왕이었던 헤롯왕이 그 토대를 구축했지만, 그 완성은 후대 이슬람시대 칼리파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이슬람 예술의 결정체라는 다마스쿠스 우마이야사원의 모자이크 예술은 기독교 예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지식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라고 고백했고, 압바시야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Bayt al-Hikma)에서는 헬레니즘, 페르시아, 로마와 비잔틴의 학문, 예술, 철학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인도의 민담에서 시작됐지만 西進하며 페르시아와 아랍인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러다가 지중해를 한 바퀴 돌며 유럽인의 손을 거쳐 아랍인들에 의해 완성된 세계 문학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아랍 문학인 동시에 세계문학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학문적·철학적·과학적 동력은 유럽인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이슬람문명에서 발원된 것이다. 기독교문명은 유대인들의 민족 종교였던 유대교를 바탕으로 한 신흥 종교를 천년제국 로마의 종교로 수용한 콘스탄티누스황제의 큰 결단이 있었기에 세상에 그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의 가장 큰 기여는 신의 복음을 유대인뿐만이 아닌 인류 전체로 확산시킴으로써 종교적 헌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인류 문명을 보편화하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기독교 문명을 계승한 이슬람 문명의 우수함은 아랍인들 자체가 지적으로 걸출했다기보다는 기존 문명의 장점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여기에 자신들의 문화적 역량을 반영한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용광로에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비잔틴, 페르시아 문명을 모두 혼합해 화학적으로 재탄생시킨 것이 이슬람 문명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위대한 학문적, 과학적 기여를 한 이븐 시나(Ibn Sina), 시바와이히(Sibawayihi)등과 같은 이슬람 세계의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비아랍계 무슬림인 마왈리들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고대와 중세의 현인과 철학자들은 타 문명의 수용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고 학문적으로도 정직했다. 자신의 성취와 타자의 성취를 분명히 구분했고, 자신이 거둔 성취의 상당 부분이 기존의 성취를 활용했음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러한 솔직함과 당당함은 점차 퇴색돼 가고 있어 안타깝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갖게 된 지적 확장, 물질적 풍요와 군사적 능력을 갖춘 유럽의 국가와 군주들은 오만함에 빠져 들었고 역사를 왜곡하며 진실을 은폐했다. 유럽의 학자들은 이들의 거짓과 위선을 잘 포장했다.
군사적·경제적 부강은 타자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만들어 냈고 결국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극단적 집단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는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과 분쟁을 야기했고 인종 청소라는 상상하기 힘든 범죄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은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진행형이고,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이제는 솔직해질 때가 됐다. 우리는 이웃 국가에 대해 과거를 부정하지 말고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 충고는 지중해의 국가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어깨를 빌리고 있는 국가들이 상대를 외면하면 발전과 공생은 기대할 수 없다. 나의 발전을 위해서는 타자의 존재와 도움이 필요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발전된 미래를 함께 도모하는 것이 인류가 공존공영하는 상생의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지중해학(Mediterranean Studies)’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중해를 연구하는 지역 학문의 차원을 넘어, 외견상 이질적으로 보이는 국가와 문명들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대를 인정하며 함께 공생하는 길을 찾는 문명 소통학을 지중해학이라 부르고자 한다.


기독교가 이슬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수용해 공생의 길을 찾는 학문과 지혜를 지중해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1년여에 걸쳐 지중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그들의 속살을 들추어 보면서 지중해의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서로가 의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국가적 집단 이익, 무지와 편견 때문에 서로를 배척하는 것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도 봤다.
이러한 무지와 편견을 극복하고 더불어서 함께 사는 지혜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삶의 방식 자체가 지중해학의 연구 대상이며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지중해 여행은 여기서 마치지만, 지중해학을 위한 긴 여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지난 지중해이야기 연재 순서

1_ 중세의 古都, 테살로니키 (최자영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서양고대사)
2_ 슬로베니아(세바스티안 뮐러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
3_ 시칠리아, 유럽문명의 모자이크(김정하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4_ ‘지중해의 배꼽’ 몰타(박은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5_ 지중해의 항구, 마르세유(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6_ 태양의 도시, 말라가(권미란 부산외대·스페인어과)
7_ 유럽과 아프리카를 소통하는 도시, 탕헤르(황의갑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8_ 문명교류의 첨단, 알렉산드리아(최재훈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초빙연구원)
9_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장·아랍어사회언어학)
10_ 지중해의 분단국가 키프로스(우덕찬 부산외대 교수 러시아·중앙아시아학부)
11_ 아토스, ‘아기오 오로스’의 수도원 나라(최자영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서양고대사)
12_ 트로이-끝나지 않는 원정(세바스티안 뮐러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
13_ 콜로세움(김정하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14_ 시디 부 사이드(박은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15_ 페트라(최재훈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초빙연구원)
16_ 올비아 드 프로방스(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17_ 메스키타, 동서양의 결정체(권미란 부산외대·스페인어과)
18_ 피라미드, 불가사의를 초월한 불가사의 (최재훈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초빙연구원)
19_ 비잔틴 건축의 총화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대성당’(우덕찬 부산외대·러시아중앙아시아학부)
20_ 아나키적 고대 그리스사회(최자영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서양고대사)
21.이탈리아 문화(김정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22_ 지중해 영화의 가려진 얼굴(박은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23_ 옥시탄어와 프랑스의 언어정책(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24_ 터키의 명상 춤 ‘세마(Sema)’(우덕찬 부산외대 터키·중앙아시아어과)
25_ 스페인 왕가의 여인들(권미란 부산외대·스페인어과)
26_ Lingua Latina, Lingua Universalis(장지연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 조교수)
27_ 르네상스 예술과 사회(김희정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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