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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왜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에게 발표기회를 줬을까?
학회는 왜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에게 발표기회를 줬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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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문교육연구회 199회 전국학술대회가 눈길 끈 이유

 

“세계 속의 국어국문학의 위상 확립과 세계화에 걸맞은 새롭고 독창적인 학문적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첫 출발점이 될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으로 유학 와서 각 대학에 수학하면서 연구하고 있는 외국인 소장학자와 국내 대학의 교수 및 연구자들이 한 팀이 돼 국어학, 현대문학, 고전문학, 한국어교육 등의 분야를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달 29일(토) 경희대 국제교육원에서 개최된 한국어문교육연구회(회장 남기탁, 강원대)의 제199회 전국학술대회 ‘세계화, 국어국문학의 발전과 창조적 확산’을 기획한 목적을 남기탁 회장은 이렇게 밝혔다. 국어학 분야에서 7편, 고전문학 분야에서 7편, 현대문학 분야에서 8편, 국어교육 분야에서 7편 등 모두 29편의 논문이 이날 소개됐다. 개별 논문들은 단독, 또는 국내외 연구자들의 공동연구, 외국인 연구자들의 공동연구 형태로 발표됐으며,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출신 연구자들이 주를 이뤘다.


공동 연구의 대표적 사례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 한국어의 품사 분류 기준」으로, 최형룡 이화여대 교수가 지도교수가 돼 그의 제자 劉婉瑩와 함께 발표한 논문이다. ‘한·중·일 品詞 대조를 위한 품사 분류 기준 설정을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논문에서 발표자들은 기존의 동아시아 삼국의 품사 분류를 진단(표 참고)한 뒤 “한·중·일 품사 대조를 위해서는 ‘機能’과 ‘意味’의 두 가지를 품사 분류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박사과정 연구자들이 공동연구 형태로 발표한 논문으로는 「중국인 학습자를 위한 한국어 높임법 화계 연구」가 있다. 인하대 박사과정에 있는 姜坤·夏欣欣·常中范 등이 참여한 논문이다. 이들은 “중국어에는 청자를 높이는 상대높임법이 미약한 반면에 한국어에는 청자를 높이는 상대높임법이 발달돼 있다. 더욱이 상대높임법은 다양한 종결어미의 文法要素로 표현되므로 表意文字를 갖는 고립어의 중국인 학습자들에게 이를 교육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어의 상대높임법과 중국어의 상대높임법을 對照 분석해 한국어 높임법 화계의 교육 방안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 가운데는 비교문화론에 입각한 접근들이 많았다. 「한국어·폴란드어 원형적 이동 동사의 대조 연구」(아그네 경희대 박사수료), 「한·일 지명 및 고문헌에 나타나는 ‘岸’에 관한 일고찰」(中嶋弘美 선문대 계약제 교수), 「한국 건국신화와 베트남 건국신화 비교연구」(阮玉桂 고려대 박사과정), 「한중 虎女說話에 나타난 호녀의 個我性 비교고찰」(朱銀淑 아주대 박사과정), 「『유충렬전』과 『삼국지연의』의 창작방법 비교 연구」(趙治成 가천대 박사과정), 「저항으로서의 한중 서사시 비교 연구」(李美玉 서울대 박사수료), 「「운수좋은 날」과 「駱駝祥子」의 비교 연구」(柳風 한성대 박사과정) 등은 흥미로운 발표였다.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을 소환해 이들이 겨루고 있는 ‘한국어문학’의 실체를 읽어내는 시선을 교환하고, 연구자들 간에 지적 자극을 극대화한다면, 1930년대의 식민지 현실과 문학사적 맥락과 연결시키면서 李箱의 시에 나타난 ‘새’ 이미지를 통틀어 고찰함으로써 李箱의 시적 세계의 변화 궤적을 추적한 劉惠瑩(서울대 박사수료)의 논문 「이상 시에 나타난 ‘새’ 이미지 연구」는 신선하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날개가 끊어진 새’에서 타율성의 극복 노력을 이끌어낸 그의 시선은 한국문학 연구의 지평 확대를 제시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현재 국외 155개 이상의 대학에서 한국학 학위 과정이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30곳 이상의 대학에는 한국학 박사 학위 과정도 설치돼 있다. 이와 함께 국내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을 전공, 연구하고 있는 외국인 연구자들의 수가 급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국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은, ‘국어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기치를 구체화한 것으로, 한국학 관련 타 학회에도 시사적이다.


또한 이번 학술대회는 개최 방법 측면에서도 눈길을 끈다. ‘세대 간 통섭을 지향하겠다’는 학회측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부분이다. 그간 국어국문학계 학술대회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진행됐다. 학술대회를 외국에서 개최하는 방법과 외국 학자들을 국내로 유치해 개최하는 방법이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선택한 것은 제3의 방법이다. 국내에서 연구하고 있는 국어국문학 연구자들을 모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모델을 만들어내겠다는 것. 이는 단순히 세대 간 대화뿐만 아니라, 전혀 이질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한 타자와의 수평적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남기탁 회장은 “국내에서 연구하고 있는 외국인 소장 연구자들의 경우, 연구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실체적인 현장에서의 피드백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도교수와 공동 연구발표를 통해 연구자 스스로의 자기확인을 거치는 것은 다양하고 깊이 있는 조언에 힘입어 연구 내용을 보완, 보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남 회장은 또, 이들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에게 발표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자신의 연구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한국에서의 연구활동을 마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현지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지속적인 한국학의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다.


물론, 일회적 학술대회로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과 국내 중견 연구자들과의 공동 연구가 시너지효과를 확대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 연구자들 간의 정보교환과 창발적 사고,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남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외국인 신진 연구자들과 국내 중견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됐다”라고 평가한다. 일단, 새로운 연구모델을 향한 공통의 열망을 확인했고, 이제 그 첫 단추를 뀄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학 전반에서 이런 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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