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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화자본
여행과 문화자본
  • 교수신문
  • 승인 2014.12.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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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고 25년이 흘렀다. 1960년대 아버지가 미국으로 출장을 가면서 김포공항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에는 10여명의 친척들이 꽃다발을 들고 환송을 나온 장면이 보인다. 외국 사람은 모두 미국인으로 생각했던 시절에 미국은 달나라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1980년대 초에 나온『김찬삼의 세계여행 10권』은 우리나라 바깥에 미국 말고도 유럽과 아프리카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린 시절 김찬삼씨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을 목격했다는 글을 읽고 분노했던 기억도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대학생인 김정미 씨가 쓴 세계 여행기인『배낭하나 달랑메고』는 우리도 외국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했다.

대학 3학년 때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와 함께 이른바‘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어머니가 탄 적금을 받아내 떠난 유럽이었지만 바다 건너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여행이었다. 졸업 후 다시 유학을 다녀오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유럽 배낭여행’경비로 사용된 어머니의 적금이 그리 헛되게 쓰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 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들에게 학기 초면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학기 중에는 서울로, 방학 중에는 외국으로 떠나라고 한다. 여행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사는 학생으로서 이타성을 기르고 자신감을 갖으라는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지역대학 학생들의 경우 상당수는 자신들이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그 지역 대학을 졸업한 뒤 그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게 된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지역에 산다고 해서 전공에 대한 학문적인 욕심도 버리고 꿈도 축소되는 학생들을 보면 학력자본, 경제자본의 차이에 따른 사회계급의 형성과 세습화까지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자본의 축적 여부가 사회적 계급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경제적 차이와 지위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가 시도한 문화자본과 사회적 계급에 대한 실증적 분석 중에 민중계급은「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에 대한, 상류 계급은「피아노 평균율」에 대한 선호가 유난히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문화자본의 축적 여부에 따른 음악에 대한 계급적 선호도를 우리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지역에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고 소극장 연극 관람은커녕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환경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과, 방학이면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빌리 엘리어트」를 감상하거나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자화상」앞에 서있는 학생의 문화적 경험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방학 때 여행을 다녀올 것을 권하면 그럴 여유가 없다는 대답이 많이 돌아온다. 그런 대답을 듣다보면 등록금 내기도 힘들고 학생식당을 벗어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이미‘문화자본’을 축적한 선생이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강의하고 있는 뮤지컬 관련 강좌를 통해 설문조사를 해보면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티켓이 너무 비싸서’라는 대답이 다수를 차지한다. 프랑스에도 분명 문화자본의 차이에 따른 사회계층이 존재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공연이라도 학생들을 위한 5만원 이하의 티켓은 남겨두자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합의다.

프랑스의 민중계급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사실에서도 생각할 점이 많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조사에서 그들의 통속화된 음악에 대한 대중적 취향을 읽어내기보다는 사회적 계층에 상관없이 그 정도의 고전음악은 누구나 다 듣는다는 사실에 더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읽은『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루벤스를 흠모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에서도 문화체험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사회에서도 특히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문화체험의 기회를 더 늘려줘야 한다. 그 역할을 사회가 하기 어렵다면 대학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모든 박물관의 무료입장을 허용하고 공연예술 티켓 50% 할인 혜택을 주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취직이 비교적 용이했던 80년대를 살았고 부동산 활황기를 경험한 기성세대 입장에 보면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 대한 문화적 지원은 배려가 아닌 의무다.

여행과 문화체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요즘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니 문제가 확대되고 말았다. 그런데 연말을 앞두고 고가의 뮤지컬 티켓을 일찌감치 구입해놓고 요한 슈트라우스보다 바흐나 라벨을 좋아한다고 믿으려 하는 나의 문화적 취향 속에 속물근성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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