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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위험 줄여 … 약 아닌 식품 없다
녹내장 위험 줄여 … 약 아닌 식품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12.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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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19. 당근

당근을 홍당무라고도 한다. 불그스레한 무를 뜻하는‘紅唐무’는 수줍거나 무안해 붉어진 얼굴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또 口語에서‘당연히’란 말을 줄여‘당근’이라 하니“너, 방 청소 했냐?”하고 물으면 ‘당근이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흔히 말(馬)을 다루는 회유와 위협, 상과 벌을‘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이라 하는데, 이때 당근은 어루꾀는(속임) 것이요, 채찍은 훌닦는(매질) 것이다. 모름지기 교육은 상벌(reward and punishment)이 잘 조화를 이뤄야하는데 그게 그리 어렵다.

당근(carrot)은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로 뿌리채소(root vegetable)인데, 겨울이 따뜻한 우리나라 남부에서는 월동이 가능하지만 중부이북지방에서는 한해살이로 봄가을에 각각 파종한다. 봄에는 3월 초순에 심어 7월 장마 직전에 수확하고, 8월에 파종해 서리가 내리기 즉전에 뽑아 먹는다. 당근의 영어 말 carrot은 carotene에서 왔다고 하고, 염색체(chromosome)가 9개다.

당근(Daucus carota var. sativa)은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고, 중국에는 13세기 말에 중앙아시아로부터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16세기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런데 17세기에 네덜란드에 오렌지색의 새 품종(당근)이 생겨났으니, 네덜란드 국가대표의 유니폼이 오렌지색이고, 축구팀을‘오렌지군단’이라 부르게 됐으며, 또 네덜란드 독립운동의 상징색이라 한다.

뿌리가 큰 것은 길이 30㎝, 직경 7㎝로 굵직하고 곧으며, 오렌지색, 흰색, 붉은색, 자주색을 띤다. 잎은 잘게 찢어진 깃꼴겹잎(羽狀複곸)으로 털이 나고, 어긋나기(互生곸)하며, 줄기는 1m 가까이까지 늘씬하게 자란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繖 形花序(umbrella-like flower)로 꽃대의 끝에서 많은 꽃이 방사형으로 나와서 끝마디에 하나씩 붙는다. 꽃받침과 꽃잎, 수술은 각각 5개이고, 1개의 암술이 있고, 꽃은 아주 작고 희며, 꽃물(nectar)이 많아 곤충들이 들 끓는다. 눈에 겨우 드는 열매는 긴 타원형에 까끌까끌한 가시털이 있고, 하도 작아서 1g에 500~1천 개가 들었다.

당근도 뿌린 대로 자란다. 호미로 밭 흙을 골골이 살살 긁어 일구고, 씨를 조심스레 줄뿌림해 흙덮기(씨앗의 1.5배)해서 볏짚 등으로 덮어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주면 더 좋다. 10여일이 지나 싹이 틀 무렵에 덮어둔 짚을 벗겨내고, 일찌감치 키가 한 뼘 정도면 5~8㎝ 간격으로 솎아준다. 번번이 씨뿌리기 때마다 성글게 뿌린다는 것이, 혹시나 싹이 트지 않을까봐 배좁게 뿌려놓아 솎음질하기에 정말로 눈이 빠지고, 허리가 꾸부정 굽는다. 빽빽하게 난 총중에 오롯이 번듯하고 튼실한 놈을 골라 널따랗게 드문드문 세워야 하기에 한 움큼씩 뽑아 버린다. 양분이나 물, 햇빛싸움을 뜯어말리는 행위요, 그래야 뿌리가 성하고 볼품없는 놈이 없다.

당근 밭에 수시로 두더지가 지렁이 잡겠다고 돌아다녀 당근이 말라 죽기도 하고, 흙에 바람이 들어 잔뿌리가 많이 생기며, 또 땅이 땅심(地力)이 낮거나 바닥이 야물면 뿌리가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forked) 수가 있다. 땅은 겨울 냉장고다! 가을에 수확한 당근을 잎줄기는 잘라버리고 양지 바른 곳에 구덕을 파서 무와 함께 파묻어두면 이듬해 봄까지 두고두고 싱싱한 당근을 먹는다. 날씨가 추워진다는데 어서 뽑아 갈무리를 해야할 판이다. 게으른 농부를 만난 내 밭의 당근들이 어김없이 닥치는 코앞의 겨울에 안절부절 한다.

뿌리채소(根菜類)인 당근은 풋것으로 먹기도 하지만 당근샐러드나 주스로, 또한 카레나 겉절이에 썰어 넣어 먹는데 생것을 씹으면 사각사각, 아삭아삭하다. 여린 잎을 먹기도 하지만 잔뿌리가 나기 전에 아주 어린 순을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알칼로이드(alkaloid)의 독성 탓에 해롭다고 한다. 뿌리의 대부분을 체관(phloem)이 차지하고, 속에는 물관(xylem)이 있는데, 질긴 물관부가 적을수록 싱그럽고 좋은 당근이다. 그리고 익혀 먹으면 더 좋아, 삶는 것보다 찌는 것이 더 맛난다고 한다.

당근 뿌리에는 비타민 A와 C가 특히 많고, 박하(minty)향이 물씬 풍기며, 맛이 달달하다. 영양소도 아주 다양해 당, 단백질, 섬유소가 각각 1%고, 0.2%의 지방에, 무엇보다 3%의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들었으니 귤, 호박, 고구마 등 다른 과일이나 채소들이 오렌지색인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특히 베타카로틴은 비타민A 전구물질(provitamin A)로 우리 몸에서 비타민A로 바뀌고 부족하면 夜盲症에 걸린다.

당근에서 뽑은 카로틴색소를 사료에 넣어 송어 등의 물고기 살색깔이나 달걀노른자를 노랗게 물들게 한다. 또 당근을 많이 먹으면 피부색이 노랗게 변하니 이를 黃色素症(carotenosis)이라 하는데, 얼굴이나 손바닥까지 누르스름하게 바뀐다. 귤도 매한가지로 생리적으로 큰 탈이 없이 시간이 지나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그러나 과식하면 뇌압이 높아져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는 비타민A 과다증(hypervitaminosis A)에 걸리기 쉽고, 유럽사람 중 3.6%가 당근알레르기가 있다 한다.

당근의 카로틴은 항산화제(antioxidants)로 작용하고, 직장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며, 폐경 후에 많이 생기는 유방암을 줄이고, 노화에 따른 눈의 黃斑變性(macular degeneration)이나 綠內障(cataract)의 위험도 줄인다. 이른바 食藥同源이라고, 약이 아닌 식품은 없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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