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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는 역사적 연속성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는 역사적 연속성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1.25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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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한국 경제사 연구』(이영훈 지음, 근간)놓고 집중토론

이 책은 ‘내재적 발전론’, 기존에 잘못 알려진 천박한 ‘식민지근대화론’, ‘그리고 몰역사적인 경제성장론’ 모두와 차별성을 갖고 있다. ━ 우대형

갈무리, 문화과학, 푸른역사 등의 출판사들이 주도하던 집중 서평이 대학 연구소로도 확대될까? 한양대 HK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사업단과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곧 발간될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과)의 저서 『한국 경제사 연구』에 대한 집중 토론회를 지난 21일(금) 한양대에서 개최했다.
갈무리나 푸른역사 등 출판사들이 자신들이 출간한 논쟁적인 책을 놓고 저자와 토론자 중심의 집중토론을 일궈나가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대학 연구소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집중토론’이 정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할 것 같다. 그러나 대학 연구소 단위에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학술적 토론’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낙성대 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영훈 교수는 ‘수량 경제학의 방법론을 한국 경제사에 적용해 독보적인 업적을 이뤘을 뿐 아니라 다양한 사료를 발굴해 한국사 연구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가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불리는 타율적 발전론의 지평을 다졌다는 비판도 존재하는 터라 이번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마련한 집중토론은 처음부터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영훈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한국의 독특한 시장경제체제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2천 년 전인 상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통사를 시도했다.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은 언제부터 출현해 어떠한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한국에서 토지는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사유재산으로 성립하게 됐는가?, 한국사에서 노비제와 같은 신분제는 언제 어떻게 확립됐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조선 사회가 토지와 인구에 대한 이원적 지배체제를 이뤘으며 이는 비교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닫힌 사회와 근대적 경제성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교수가 이러한 ‘닫힌 사회’에서 어떻게 근대적인 경제 성장이 이뤄졌는지를 추적하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책이 출간돼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의 전반부는 조선왕조의 패망까지를 진단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20세기가 후반부에 해당한다. 집중토론을 위해 준비한 그의 글 「『한국 경제사 연구』의 탈고를 앞두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19세기 이후 조선왕조는 해체의 위기에 접어들었다. 시장은 쇠퇴했으며, 농업생산은 감소했다. 조선왕조가 실패한 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에서 역사를 밀어 올릴 동력으로서 새로운 지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패망은 닫힌 사회는 결국 해체된다는 인류 문명사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지혜의 더 없이 좋은 사례를 이루고 있다.” 조선왕조의 패망을 중요한 분수령으로 놓고, 이후 한국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이 진행된다는 독법으로 접근한 이 교수는 1997년 ‘고도성장이 종언을 고하는’ 시기까지의 ‘한국 경제사’를 야심하게 진단했다.


다소 혼란스럽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경제성장(고도성장)의 과정이 역사적으로 ‘연속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 가지 측면을 꼽았다. 첫째, 현대 한국사회의 구조는 전통 소농사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둘째, 고도성장을 이끈 다른 한편의 동력은 국제적인 것이었다. 일제하에서 전개된 최초의 공업화는 일본으로의 수출과 일본으로부터의 투자에 기인한 식민지적 현상이었다. 크게 보아, 그러한 국제적 인과는 19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고도의 개방체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民族主義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이것을 정신사적 문제로 봤다. 개방사회인데 지배 논리는 민족주의라는 것, 그래서 “여기에 한국 현대사회의 위기가, 한국인들을 다시 실패하게 만들지 모를,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위기의 심원은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근대’를 이해하고 실천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근대’를 부정하거나 초월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전통’을 잔뜩 되살려 놓았을 뿐이다. 그런 일이 부지부식 간에 벌어져 왔음은 한국 현대가 여전히 ‘식민지적 근대’에 매몰돼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교수가 말하는 근대나 “그들의 ‘전통’을 잔뜩 되살려 놓았을 뿐”의 ‘그들’, ‘전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 ‘전통’이 민족주의와 모종의 어두운 관계에 있다는 뉘앙스로 말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날 집중토론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은 아직 발간도 되지 않은 책에 대해 어떤 토론을 주고받았을까.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는 윤선태 동국대 교수(역사교육과), 염정섭 한림대 교수(사학과), 우대형 연세대 경제연구소 전임연구원(경제학), 강진아 한양대 교수(사학과)가 참여했다.
염정섭 교수는 이 교수의 방대한 저술 작업을 놓고 “저자는 주요한 사료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사 연구』의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저자가 『한국 경제사 연구』에서 전개하는 史實의 흐름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란 다름 아니라 저자가 특정 史料에 대해 내려놓은 독특한 해석, 해독을 재검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접근했다. 강진아 교수 역시 중국현대사 전공자답게 꼼꼼한 독해를 바탕으로 질문을 던졌다.

A4 462쪽 분량 꼼꼼하게 읽고 토론 나선 연구자들
좀 더 적극적인 논의는 우대형 전임연구원에게서 나왔다. 그는 이 교수의 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도성장의 직접적 계기는 일제에 의해 도입된 ‘시장경제체제’이지만―그리고 이 체제는 해방 이후에 남한에만 유지되면서 남한의 고도성장의 직접적 동인으로 작용했다. 이 점에서 남한 경제는 식민지기와 해방 후 사이에 연속성을 갖고 있다―시장경제체제가 훌륭하게 정착되고 고도경제성장의 동인으로 작용한 역사적 배경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한반도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해온 ‘시장체제 친화적’인 문화와 환경이 있었음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내재적 발전론’, 기존에 잘못 알려진 천박한 ‘식민지근대화론’, ‘그리고 몰역사적인 경제성장론’ 모두와 차별성을 갖고 있다.”
우 전임연구원은 가족제도와 근대경제성장과의 관계에 개념의 혼란, 전근대시대의 유산과 근대경제성장과의 관계, 소농경제의 발달 외에 전근대발전을 보여주는 지표의 개발 여부, 조선후기 시장경제의 평가 등과 관련해 질문을 던졌다.


우 전임연구원의 평가대로 이 교수의 이번 저작이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근대화론’, ‘몰역사적인 경제성장론’ 모두와 어떻게 구별되고, 차별성을 확보하는지는 책의 전체 윤곽이 나오는 내년쯤에 가서야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집중토론’의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토론은, 토론 참가자들이 A4 64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직접 챙겨서 곳곳에 산재한 문제점을 끄집어내, 이를 좀 더 생산적인 방향에서 수렴 가능하게 서로의 시각과 해석, 사료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토론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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