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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문학 연구를 대학에서 추방하고 있나?
무엇이 인문학 연구를 대학에서 추방하고 있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1.10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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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 ‘식민화하는 대학, 대항하는 인문학’ 학술대회 개최

 
세계적 평가기관을 자처하는 외국 정보서비스업체와 미디어 자본이 어떤 국제적·사회적 합의도 없이 제국주의 시대의 모국어 말살 정책처럼 우리말로 하는 인문학 연구와 강의를 대학에서 추방하고 있다.

 

지난 7일 성균관대 문과대 퇴계인문관 308호에서 열린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의 ‘식민화하는 대학, 대항하는 인문학’ 학술대회는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 학술대회였다.
대학 구조조정이 취업률이라는 학문 외적 척도를 잣대로 진행되면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은 마라톤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 부문이다. 학과 통폐합에서부터 신임교수 임용 축소까지 이미 곳곳에서 인문학 부문의 산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한 대학의 단과대 차원에서 ‘대학과 학문’의 문제틀을 짚어내고자 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접근은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대학과 학문제도를 놓고 사회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의 연장선에 놓일 수 있는 작업으로, 좀 더 구체적이며 확산된 논의가 필요하다.


학술대회 주최측이 “이번 학술대회는 인문학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학술대회”라고 의미를 매긴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측의 문제제기는 확실히 직설적이며 날카로웠다.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국내 대학 평가 나아가 세계대학 평가가 보이지 않는 식민주의적 폭력의 양상으로 인문학에 행사되고 있다. 세계적 평가기관을 자처하는 외국 정보서비스업체와 미디어 자본이 어떤 국제적 사회적 합의도 없이 제국주의 시대에 모국어 말살 정책처럼 우리말로 하는 인문학 연구와 강의를 대학에서 추방하고 있다”라는 대목에서 이들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학술대회는 “인문학 연구 및 교육 활동의 식민화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문학자들의 문제의식”을 강조하면서, “특히 영국과 미국의 사설 평가기관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만성과 반인문성을 규명해 우리 학문후속세대의 주권적 학문활동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겨냥하는 데 집중했다. 개별 발표들의 면면을 보면 딱 그렇다. 역사학, 영문학, 국문학, 철학 등 관련 인문학 전공자들이 발표자로 나섰다.


김택현 교수(성균관대·사학과)는 「‘아직 아님(not yet)’의 굴레와 인문학의 장소」를, 손혜숙 교수(성균관대·영어영문학과)는 「영어의 제국, 나, 그리고 세계문학」을, 천정환 교수(성균관대·국어국문학과)와 최병구 박사후 연구원(성균관대·동아시아학술원)은 「신자유주의 대학체제 하의 학문(장)의 변형, 그리고 ‘협동적’ 대응」을, 이종관 교수(성균관대·철학과)는 「A&HCI 숭배와 인문학의 비극」을 각각 발표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 인문학자들이 인문학 내부의 반성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학의 인문학이 도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인문학자들의 책임으로 그들의 반성과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우리의 대학은 인문학의 반성과 성찰의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무자격의 국제평기기준에 맹목적으로 예속돼 자발적 식민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데 있다. 학술대회 제목 ‘식민화하는 대학, 대앙하는 인문학’의 좌표가 놓이는 곳이다.


“비판적 대항을 통해 인문학자들이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후 한국 인문학이 주권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는 깃발을 든 이날 학술대회는 개별 논문 발표뿐만 아니라 「학문적 식민주의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인문학 다살이(인문학콘서트)’도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종관 교수의 사회로 김기봉 전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경기대·사학과), 김누리 중앙대 교수(유럽문화학부), 권경준 성균관대 교수(러어러문학과), 김영진 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유승환(인문학협동조합) 등이 참여했다. 이날 발표문을 정리했다.


‘아직 아님(not yet)’의 굴레와 인문학의 장소(김택현): 서구 식민주의의 이른바 문명화 사명 담론은 단일하고 위계적인 역사주의적 시간 구조 안에 비서구의 역사를 통합시키면서 비서구에게 ‘아직 아님’의 장소를 할당하는 식민 지배 전략이다. 비서구의 지배 엘리트들은 그 같은 시간 구조를 오히려 수용함으로써 서구 식민주의와 공모했고, 이에 따라 역사주의적 발전 개념이 전지구적으로 보편화돼 왔다. 인문학은 바로 이 같은 식민 담론의 보편화 효과에 대항하는 차이의 장소, 또 그 내부의 외부/한계로서 다른 역사의 시간과 삶의 귀속을 사유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


영어의 제국, 나, 그리고 세계문학(손혜숙): 오늘날 세계어로서 막강한 위엄과 지배력을 가진 영어가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집단 히스테리와 강박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문제 제기 자체를 억압하고 은폐하는 사회적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영어를 둘러싼 다양한 국가들의 대응과 논쟁들을 분석할 경우, 전지구적 상업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천박한 실용주의적 관점을 넘어 진정한 세계어가 제시할 수 있는 ‘보편’의 시각은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다. ‘세계문학’ 개념으로 이러한 ‘보편’의 시각을 마련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대학체제 하의 학문(장)의 변형, 그리고 ‘협동적’ 대응(천정환·최병구): 지금-현재도 진행 중인 학문장의 변화는 정부(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그리고 대학의 공모관계에 의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마련되고 실행됐던 학문장의 시스템은 개인이 써야 할 ‘논문 편수’의 증가, 영어제국주의, 대학의 양극화, 학과통폐합 등 무수히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 가운데 일부 연구자집단의 프레카리아트화가 가속화됐으며 성과주체화된 연구자 개인은 냉소와 불신을 내면화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책은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체제와 학벌체제를 폐기하는 것이지만 그럴 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성찰에 기반한 연대와 협력의 틀이다. 변형된 대학 제도 속에서 그 누구도 현재의 상황에서 예외일 수 없다. 문제의식을 공유한 교수부터 대학원생까지 수평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 폐해가 심각한 시간강사, 대학원생의 문제를 공유하고 공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인문학협동조합’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조직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A&HCI 숭배와 인문학의 비극(이종관): 현재 QS 세계대학평가에 의한 대학 서열화, A&HCI라는 영어 학술지 편람 등에 논문 게재강요 등 한국 대학(교육연구)정책은 사실상 정체불명의 신식민주의의 침투기제에 말려들어감으로써 대학의 자발적 식민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무차별적 영어강의 강요와 영어논문 양산 강요의 방식으로 집행되는 인문학 평가제도는 신식민주의의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 세계화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영미권의 지식세계 서열화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미개적 행태일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해 한국의 인문학이 모국어 학문활동을 금지당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언어와 문화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말로 하는 인문학이 죽어가면 우리말은 하류언어로 퇴화하면서 죽어갈 것이고 결국 우리 역사와 문화의 미래 역시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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