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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들이라
사람을 들이라
  • 교수신문
  • 승인 2014.11.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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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만호 편집기획위원
후배들이며 학생들 말을 듣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다른 게 아니다. 사람 뽑는 얘기다.

거기는 참 어떻게 됐다나. 이번에도 안 뽑았답니다. 아니, 그 학교는 지난 학기에도, 지지난 학기에도 나가리라 안 했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또 안 뽑았다고. 그러면서 채용 공고는 왜 냈다는 거지? 글쎄요.

화제가 이런 곳에 이르렀을 때 한 마디라도 불만 섞인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학 사회에서 그래도 팔자가 편한 축에 속한다고 단정해도 좋다. 아직 취직이 안 된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부정적인 발언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에 행여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저어함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왜 생각이 없겠는가.

박사학위 논문을 내놓고 나서야 비로소 교수 임용에 지원할 자격이 생기는 우리나라 풍토다. 말이 박사고 또 흔하다는 박사지, 사람마다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쓸 때는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 속도로 오래 달리기를 하라는 듯한 우리나라 학위 제도 속에서 전력 질주를 하고 나면, 이건 무슨 철인 3종 경기라도 되는 건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수록 논문을, 최근 3년간 기준으로 열 편도 좋고 열다섯 편도 좋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자꾸만 쏟아 부으란다. 누가 누가 잘 견디나, 체력이 좋은가, 비위가 좋은가, 어디 한 번 내기라도 서로들 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은 멀었다고 한다. 논문을 많이 쓰면 뭐하냐는 것이다. 강의를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강의를 잘하면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좋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좋으면 또 뭐하냐는 것이다. 한 살이라도 젊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면 또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세상물정은 그래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상물정만 알면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거의 막판까지 고르고 고른 것이 최후의 3인이 돼 그 학교에서 가장 높은 분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앉아 계신 곳으로 들어간다. 목을 길게 늘어뜨린 초식동물 심정이 돼 말이다.

그때까지 교원 임용 절차에 응하는 사람들이 들여야 하는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한두 번이라도 떨어져 본 사람은 한두 번 쓰는 것도 아닌 자기소개서와 향후 연구계획서, 그리고 교육계획서 같은 것을 혹시 이 학교에 맞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고심하고 저렇게 고심해서 그때마다 쓴다. 학교마다 대학교 때 성적증명서부터 온갖 증명서를 다 필요로 하는 까닭에 시간강의 다닌 곳을 다시 순회하면서 증명서를 떼기도 하고 컴퓨터와 씨름을 해서 얻어내기도 한다. 연구 실적을 정리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나라에 통일된 서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교마다 다른 기준에 맞춰 몇 번씩 자기‘업적’을 갱신해대야 한다.

이런 모든 일들, 절차들을 다 감당하고 1차, 2차, 3차까지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의구심을 갖기도 하고, 기대를 품기도 한 사람들이 마지막 관문을 혹여 통과라도 할까 싶어 기다릴라 치면, 덜컥, 적임자가 없어 안 뽑겠다는 것이다. 면접 심사에 오신 수고는 교통비 쥐어 줬으니 됐지 않느냐는 것이다.

안 됐다. 학교는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양성하는 곳이고 사람세상 이어가도록 만드는 곳이다. 사람은 이른바 소비자라는 학생만 사람인가. 가르치는 시간강사들, 강의전임들, 초빙교수들, 연구교수들은 뭔가. 그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연구 환경, 호구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마음씀 없는 학교, 공고 내고 말고 공고내고 마는 습벽 고약한 학교가 과연 학생들을 위해 무슨 덕성스러운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사람들 시달리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충청도 사투리에 종애 곯린다는 말이 있다. 어감이 딱 그것이다. 해줄 듯 해줄 듯 안 해주고 약만 올리는 것이다. 심신 모두 지칠 대로 지치게 괴롭히는 것이다. 기가 질리고 마음에 불탄 자국이 나게 만드는 것이다. 학교를, 교육을 담당하려면 먼저 공부하며 일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누구에게라도, 가르치고 연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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