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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대지방이면 어느 곳에서나 서식
온대지방이면 어느 곳에서나 서식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11.1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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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17. 쌀바구미

▲ 쌀바구미. 출처=국립중앙과학관
내 어릴 적만 해도 집에서는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락부대를 男負겿戴해 정미소(방앗간)로 가 품삯을 주고 도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집집마다 쌀 찧는 기계(搗精機)가 있어 쌀을 빻아 오래 두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하면 내다 쓿으니 편리하기 짝이 없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필자도 디딜방아를 많이 찧어봤지만, 한쪽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서 두 사람이 찧는 양다리방아와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방아의 두 가지가 있었다. 다리에 힘을 주기 위해 방앗간 천장에다 매어 늘인 굵직한 새끼를 팔로 세게 잡아당기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가며, 발로 디딤대를 힘껏 밟았다. 한데 외다리방아는 일본, 중국 등지에 있었지만 양다리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품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고 한다. 쿵 당, 쿵 당, 쿵 쿵 짓찧어 지축을 흔드는 그때의 방앗소리가 귀에 쟁쟁하도다!

쌀을 쓿기 위해 묵은 가마니의 나락을 쏟으니 자잘한 벌레가 새까맣게‘거미 알 슬듯’온통 갈피를 못 잡고, 목을 빼고는 사방팔방으로 어물거리며 줄행랑을 친다. 성충들이 어두운 곳을 좋아해 햇빛을 피하는 습성이 있어 그렇다. 그것이 쌀바구미(Sitophilus oryzae)다.

이것은 절지동물의 곤충강, 딱정벌레목, 왕바구미과의 곤충으로, 몸은 긴 원통형이고, 쪼만한 것이 몸은 아주 굳고 야물다. 몸길이는 3~4㎜이고, 흑갈색으로서 앞가슴의 등과 굳은 딱지날개(앞날개) 위에 작고 둥글면서 우둘투둘 얽은 자국이 많이 있으니 이를 點刻(점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이라 한다.

또 바구미류는 머리에 코끼리의 코와 같은 주둥이(rostrum)가 앞쪽으로 썩 길게 뻗거니와 그 길이·너비·생김새는 종에 따라 다 다르나 머리 앞의 뿔 닮은 주둥이는 보통 1㎜로 체장의 3분의 1이다. 암컷이 수놈보다 좀 크고, 수컷 주둥이는 뭉뚝하고 짧으며, 암컷 것은 가늘고 길고, 수놈 등짝은 거칠고 윤기가 없으나 암컷은 반드럽고 광택이 있다. 이렇게 성적이형(sexual dimorphism)을 보인다.

바구미류는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다리와 더듬이를 움츠리고 죽은 척 假死(feign death) 상태로 꼼짝 않는다. 그리고 요상하게도 몇 종의 바구미들은 내장에 세균이 들어 있어서, 세균들은 아미노산이나 비타민을 바구미(宿主, host)에 주고, 세균은 바구미 몸 안에 살터를 잡으니 서로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다. 우리 내장세균도 큰 틀에서 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쌀바구미(rice weevil)는 인도가 원산지로 여기며, 한국을 비롯해 온대지방이면 세계 어디에서나 서식하니, 곡식의 수출입 탓에 더욱 빠르게 널리 퍼졌고, 한국 쌀바구미屬(Sitophilus)에는 14종이 있다 한다. 성충은 기온이 15~16℃가 되면 활발히 활동하고, 몹시 누기가 돌고 후터분한 28~29℃가 최적온도며, 40℃가 되면 활동을 멈춘다.

어른벌레로 쌀, 밀, 옥수수, 수수 등의 곡식 낟알 속에서 겨울나기를 하고, 낟알에서 나와 3∼4일이면 짝짓기를 한다. 암컷은 날카롭고 뾰족한 주둥이(snout)로 딱딱한 생쌀을 이여차, 영차끌이나 드릴처럼 갉고 파 구멍이 뚫리면 한 구멍에 알을 낳으며, 끈적끈적한 젤라틴 물질을 분비해 구멍을 틀어막는다. 쓿은 지 오래된 쌀 포대를 쏟아부어 보면 쌀알들이 덩어리를 지우고 있으니 바로 이물질 때문이었다.

산란 시기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암컷 1마리가 통상 하루에 2~6개의 알을 낳고, 일생동안 300개가 넘게 낳는다. 한세대에 걸리는 일수는 기온에 따라 달라서 발생 최적기인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는 23~30일이고, 4월과 9월 하순에는 약 60일이 소요된다.

더구나 성충들은 공중을 아주 잘 날 수 있고, 2~4년을 산다. 보통 곡식 한 알에 길이 0.7㎜, 폭 0.3㎜의 알 하나를 낳고, 알은 3~4일 후에 부화하며, 아주 작고 하얀, 다리가 없는 유충은 19~34일 동안 자라서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환경조건이 좋으면 3~6일 후에 우화(羽化, eclosion)해 바야흐로 성충이 되지만 좋지 않으면 20일도 걸리는데, 이것이 쌀바구미의 일생(한살이)으로 좋은 조건에서 어림잡아 5~7세대를 이어가니 대단한 번식력을 가졌다 하겠다.

번데기가 우화해 나온 낟알에는 뻥뻥 구멍이 뚫리거나 싸라기가 되고 만다. 그래서 다 큰 성체보다 앳된 유충이 더 해롭고, 쌀벌레가 조져놓은 쌀을 들어내 체에 쳐보면 하얀 쌀가루가 먼지처럼 쏟아지니 놈들이 곡식을 갉아먹으면서 생긴 부스러기다.

애벌레는 딱딱한 먹이를 즐기는 버릇이 있어서 저장 곡물에 해를 끼치지만 밀가루 같은 가루식품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리고 알곡 안에서 자라는 애벌레의 호흡으로 수분이 높아지고, 열이 발생해 쌀알이 흐물흐물하게 돼 갉기 쉽게 된다. 따라서 변질·부패돼 품질이 떨어진다.

해충(pest)인 쌀바구미 驅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생각보다 그리 시원치 않다. 얄궂게도 수놈들 이 짝꿍을 꼬드 겨 모으기 위해 페로몬(pheromone)을 분비하는데, 합성페로몬으로 이들을 끌어모아 잡는다. 그리고 바구미가 끓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쌀자루에 마늘이나 생강을 넣으라고 하는데, 요새는 놈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포장된 약을 판다. 무엇보다 쌀의 해충을 박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18℃ 이하에서 약 3일간 냉동시키거나 60℃에서 15분간 두는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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