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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근대성은 일란성 쌍생아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재난’과 근대성은 일란성 쌍생아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 정리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1.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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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부산문화재단 시민아카데미, 재난 이후를 말하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와 부산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시민아카데미가 논의를 좀 더 구체화해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재난과 도시, 그 이후’를 주제로 한 이번 시민강좌는 부산 감만창의문화촌에서 지난 14일 첫 강좌를 열고 오는 11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 ‘시민강좌’는 아카데미와 대중을 잇는 대학 연구자들의 고민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세월호 침몰, 판교 환풍구 붕괴 등 잇따른 재난의 공포 속에서 연구자들이 과연 어떤 내용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요 강좌 내용을 정리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도시의 공동성:
이상봉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도시는 공동생산, 공동생활, 공동방어 등 집합생활의 필요에 의해 형성됐으며, 이러한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성을 키워왔다. 특히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재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동성이 강화됐다. 하지만 거대화된 현대도시에서 집합성은 공동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종래에 공동으로 관리 또는 운영되는 일들이 도시 인프라, 행정서비스 등의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고 또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개인에게 환원됐기 때문이다. 최근의 동일본대지진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성을 대신한 도시의 시스템은 재난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대규모 재난은 도시의 공동성 파괴로도 이어진다. 관동대지진처럼 재난으로 도시의 시스템이 마비됐을 때 도시의 약자나 이질적인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발생한 것처럼. 역으로 공동성의 파괴가 재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기적 영리를 앞세운 승자독식의 경쟁사회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된 것처럼. 재난은 상실되는 도시 공동성에 대한 자각과 관심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신대지진이 자원봉사활동과 거주외국인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됐다면, 동일본대지진에서는 자원봉사활동이 한층 강화된 것처럼. 흔히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기반시설의 확충이나 대응 매뉴얼 개발 등의 대응방안에 몰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다. 도시의 공동성 회복이 재난예방과 극복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인도 보팔의 블랙데이:
장세룡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영문으로 아예 ‘Bhopal disaster’라고 고유명사화 돼 있는 보팔 가스 사고(Bhopal disaster)는 1984년 12월 2일에서 3일 사이에 인도 중부 도시 보팔에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며 화학약품 제조회사인 유니언 카바이드(현재는 다우케미컬이 인수)의 현지 화학 공장에서 농약 원료로 사용되는 42톤의 아이소사이안화메틸(MIC)이라는 유독가스가 누출되면서 시작됐다. 사고 발생 2시간 동안 저장 탱크로부터 유독가스 8만 파운드(36톤 상당)가 노출됐다. 20세기 최대의 산업 재해 중 하나인 이 참사는 하루 만에 사망자가 8천여 명이나 발생했고,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이 2만명(추정)이 넘어서 인명피해가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1986년)를 능가한다.


대참사의 원인은 안전관리가 미비하고 비상대책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인구 밀집지역인데도 설계비용을 줄이고자 검증되지 않은 설계방식을 도입했고 사건 발생 당시에도 가장 기본적인 조기 경보체계마저 작동되지 않았다. 이 참사는 다국적 기업의 개발도상국으로 공해수출에서 비롯됐다.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유니언카바이드는 피해자 보상과 후유 장애 치료, 선천성 기형을 타고난 2세들에 대한 대책 등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유니온 카바이드는 2001년, 다우 케미컬에 인수됐고, 현재 보팔 주민들은 다우 케미컬에 장기적인 건강관리 제공과 독성물질 제거, 경제적·사회적 지원 제공을 요구하고 있지만 다우 케미컬은 이를 거부하고 아직까지도 인도 정부와 배상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의 쓰촨(四川)대지진―시민사회 발전 계기인가? 국가 통치력 강화인가?:

 이은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2008년 5월 9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쓰촨(四川)대지진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탕산(唐山)대지진 이후 최대의 국가 재난이었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 2008년이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획기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활발했던 논쟁은 이 대지진이 중국의 시민사회 발전에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지진 직후 중국내 57개 NGO가 구제 활동에 적극 참여를 호소하고 성금, 구호품 배포 활동을 전개했다. 인터넷과 소설 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개인적 차원의 원조, 구호 활동이 진행됐음도 물론이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국가와 민간 사이에 초래한 ‘합의의 위기’가 시민의 공적 참여를 활발하게 만들었고, 정부와 시민사회, 지방정부 간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됐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반면 정부의 강력한 재난 대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통치력이 강화됐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민간의 자발성은 ‘시민적 공간’을 열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중화민국의 단결’이라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차원이 얽혀있었다.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은 티베트, 위구르의 소요와 세계에서 벌어진 성화 봉송 반대 시위로 위기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쓰촨대지진이 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지진은 중국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공적 차원에서 재난에 대처하는 강한 정부의 이미지를 통해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공고화하고 민간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구호 및 원조 운동을 통해 중국인의 단결을 과시했다. 이로써 중국은 국가적 시련의 극복과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되고 강국으로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영화 <대지진>(펑샤오강 감독, 2010년작)은 1976년 24만 명의 사망을 가져온 탕산대지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제작 배경과 동기 뿐 아니라 대중에게 소비되는 과정에서도 쓰촨대지진의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재난은 고립되고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탈핵운동의 최전선 부산에서:
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부산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세월호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인식과 우려가 높아졌다. 특히 부산은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방재구역 개편 문제로 시민의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다. 부산시는 고리1호기 폐쇄,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 방재구역 확대에 대한 정책을 내 놓으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핵발전소로 인한 도시 안전 안전문제가 부산에서 크게 쟁점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고리1호기 수명연장의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지진과 쓰나미의 발생, 발전소의 연쇄 폭발과 오염의 광범위성과 지속화를 통해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부산은 고리1호기 노후 핵발전소의 가동과 신고리 5, 6호기의 추가건설, 각종 비리와 사고로 인해 도시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특히 지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국가가 대형 재난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지 크게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부산지역의 탈핵운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까지 확대 된 반핵운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핵발전소에 대한 문제의식은 발전소 최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책결정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난 시대의 담론전략: 이왕주 부산대(국민윤리교육과)


나는 재난의 문제를 깊이 성찰했던 철학자 하이데거의 주장들을 활용해서, 재난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재난을 피하는 법, 재난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하는 공리주의적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서 재난의 의미를 더 근원적인 심급으로 다가서서 이해, 파악, 적용하는 재난의 해석학적 담론전략도 반드시 곁들여져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술주의나 생태주의적 비전을 넘어서서 존재론의 지평으로 도약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이 재난의 담론전략은 독화살 맞은 사람 앞에서의 해독학 강의처럼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을 말로써 다 덮으려거나, 다급한 현안을 구름 잡는 공론으로 기만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세계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이고 ‘사실들의 총체는 곧 언어적 사태’ 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동의할 때, 이것은 나름의 준열한 이유를 지닌 접근방식이될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날카롭게 짚었던 대로 데카르트 이전에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재난(disaster)’은 생활세계의 어휘목록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유로써 존재의 확실성을 선언하는 데카르트적 코기토, 즉 근세적 자아가 자연세계에서 빠져나와서, 자연을 타자로 정립시키는 권력주체로 등장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유포되기 시작한 낯선 언어다. 가령 베이컨이 인간의 지식을 권력장 안에 위치시키면서 유행시킨 ‘아는 것은 힘’이라는 저 유명한 슬로건도 이 시대 언저리에 등장한다. 결국 ‘재난’과 근대성은 일란성 쌍생아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재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난’이라는 어휘자체가 쓸모없어지는 처지에 이르는 것, 이것을 하이데거는 초연(Gelassenheit)이라고 명명했다. 초연이란 곧 ‘존재가 존재이게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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