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6:00 (토)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기능적 등가물로 상정한 연구는 틀렸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기능적 등가물로 상정한 연구는 틀렸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10.28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38회차 강연_ 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근대화와 아시아적 가치’


지난 18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38회차 강연의 주인공은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다. 그간 서구중심주의에 천착해온 그가 들고 나온 강연 주제는 ‘근대화와 아시아적 가치’다. 물론 그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는 1990년대 중반 이래 세계 학계를 비롯 한국 학계가 동아시아와 유교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온 논쟁적 주제다. ‘아시아적 가치’는 ‘아시아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가치체계’라고 정의내릴 수 있으나, 논자에 따라 다양한 내용으로 해석되면서 아직까지 그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적 후진성의 원인, 대안적 탈근대 사상, 아시아 경제발전의 주역인 동시에 경제위기의 주범 등 다양한 평가 속에서 위상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화’와 ‘아시아적 가치’를 겨냥한 그의 접근은 먼저 ‘우리의 무의식적 습성’에 대한 반성 혹은 성찰에서 시작한다. “‘근대화’와 ‘아시아적 가치’를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서구와 비서구의 근대화를 대체로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동일한(또는 유사한) 역사적 변화로 상정하고, 동일한 결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일한 전제조건(또는 기능적 등가물)이 무엇인지를 논해온 우리의 무의식적 습성이다.” 강 교수는 이러한 ‘무의식적 습성’의 발로인 ‘중요한 오류’ 가운데 하나로 “아시아적 가치를 베버가 서구에서 자본주의를 추동한 문화적 변수로 제시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기능적 등가물로 상정(규정)한 연구들”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강연 발표문 결론을 정리했다.
사진·자료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사진·자료 제공=네이버문화재단

대화와 관련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필자의 주장은 다소 반복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이익추구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금기를 내파해 무력화시키고 자본주의 정신을 정당화하는 데 성공했다면,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되는 아시아적 가치는 이익 추구에 대한 전통 유교의 금기를 스스로 변용하거나 무너뜨린 적이 없다. 거친 표현이 허용된다면, 유교의 금기는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자유주의를 내장한 근대 서구문명의 압도적 우월성(및 그에 대한 믿음), 다른 한편으로 그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유교의 문명적 정당성의 붕괴에 의해 해체됐다.


둘째, 베버의 주장에 따라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서구에서 자본주의 정신을 추동한 독립변수였다고 해도, 20세기 후반 아시아에서는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전제로 한 2차적 근대화에 대한 열망―서구문명에 대한 열렬한 학습―그리고 유교가 붕괴된 후 남은 빈 공간을 채운 ‘공리주의적 현세주의’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추동했다.
셋째, 위의 두 논점을 충족시키면서 서구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개인적으로 내면화된 종교적 금욕주의와 기율을 통해 합리적인 자본가와 노동자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아시아적 가치는 위의 두 가지 사태의 전개와 함께 이제 ‘마음의 습관’으로 남은 충과 효를 매개로 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 및 유교적 기율을 통해 (개인주의적이 아니라 공동체주의적인) 자본가와 노동자를 양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를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기능적 등가물로 논한다면 오직 이 마지막 논점에 관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필자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이 글의 주제가 과연 ‘지속가능한 학문적 적실성’을 갖는가에 대한 회의에 시달려 왔다.베버와 달리 상부구조에 속하는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을 일종의 이데올로기(허위의식)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적 입장에 따르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나 1960년대 한국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동원된 환치된 유교적 충효관념 역시 이익추구를 정당화하는 허위의식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을 따른다면, 역설적으로 ‘허위의식’으로서의 양자에 대등한 위상을 부여할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따른다면 19세기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20세기초 베버 역시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무장한 경건하고 금욕적인 자본가와 노동자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미화된 자본주의의 탄생설화를 그려내는 데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따르면 목가적으로 서술된 ‘정의’와 ‘노동’이 자본축적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 “정복과 압제와 살인 및 강도, 한 마디로 말해 폭력”이 그 압도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의 참혹한 현실을 은폐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문화적 심성에 대한 이처럼 상반된 해석과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와 베버는 유럽 예외주의를 강화하는 데는 상호협력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유럽에만 존재하던 봉건제를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산양식으로 규정함으로써, 베버는 합리적인 자본주의 정신의 유일한 구현체로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각인시킴으로써 자본주의 탄생에 대한 유럽 예외주의를 토대는 물론 상부구조에서 완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대두한 근대 세계체제에 관한 이론들은 자본주의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기존의 일국단위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통찰을 제시한 바 있다. 세계체제 이론의 대표적 학자인 월러스틴(I.Wallerstein)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기원을 16세기로 보는데 반해, 브로델(F. Braudel)은 13세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월러스틴이 말하는 16세기가 사실상 1450년에 시작해 1640년에 종결되는 ‘장기 16세기’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두 이론가 모두 ‘신대륙의 발견’을 포함한 지리상의 대발견을 전후해서 급속히 팽창하는 유럽 경제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지리상의 대발견은 단순히 평화적인 교역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점령과 정복 및 약탈을 통해 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기여했다. 따라서 세계체제이론이 제시한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그 설명에서 ‘베버’류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들어설 자리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봉건사회 내에서 계급투쟁에 초점을 맞춘 마르크스의 분석이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자본주의의 문화적 심성을 발견한 베버의 분석은 일국 단위 아니면 유럽 내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려는 근시안적 시도로 인해, 모든 거시적인 변수를 전제로 한 상황에서 기껏해야 미시적 차원에서의 분석적 효용을 가질 뿐이다.


여기서 일본에서의 아시아적 가치 담론을 분석하면서 “군사대국 제국일본이 그랬듯이 경제대국 일본도 발전을 설명해 줄 일본적 가치의 복권을 꾀하며” 그런 의미에서 “‘발전’을 달성하면 그것을 정당화할 ‘가치’ 창출의 욕구가 생겨난다”라고 지적한 장인성의 언급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장인성의 논리에 따라 일본이 1960년대 경제적 성공에 힘입어 아시아적 가치로 포장된 일본적 가치담론을 사후적으로 창출한 것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통찰을 그 후에 출현한 아시아적 가치 담론 일반에 확대 적용한다면, 시간적 선후에 있어서 아시아적 가치 담론(의 출현)은 발전의 ‘소산’이지 발전의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발전의 원인을 아시아적 가치에 귀착시킴으로써 아시아적 가치의 존재를 발전에 선행시킨다. 이 과정에서 발전의 정당화 담론이 발전의 인과적 담론으로 전환하는 연금술이 개입하며 아시아인의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그 실체적 내용이 무엇이든 신비화된다. 동시에 아시아적 가치로 귀착된 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역시 미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아마도 우리는 아시아적 가치 담론의 창출과 확산에서 발견된 이러한 전환과정을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 테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베버 역시 그 테제를 통해서 자본주의 출현에 관해 사후적으로 구성한 정당화 담론을 인과적 담론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추론을 받아들인다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 테제의 형성과정, 나아가 그것이 서구학계에서 자본주의 기원에 관한 정설로 확립되는 과정을 지식사회학이나 담론분석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