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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변해 주렁주렁 … '단 감자'의 비밀
뿌리가 변해 주렁주렁 … '단 감자'의 비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10.27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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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16. 고구마

고구마(Ipomoea batatas)는 1년생 넝쿨식물로 메꽃과에 속하는 쌍떡잎식물이다. 원산지는 중남미지역으로 추정하며, 온대에서는 일년생이지만 열대에서는 겨울이 돼도 뿌리가 죽지 않고 동면을 한 후 봄에 다시 싹이 나는 宿根性이다. 꽃이 피어 씨앗이 맺히는 수가 있으니 그것은 실험용(사육용)으로 쓸 뿐이다.

고구마는 넝쿨식물로 땅바닥을 기고, 어긋나기잎의 잎몸(곸身)은 심장 모양으로 얕게 갈라지며, 꽃은 통꽃(合瓣花)으로 나팔꽃(morning glory)을 닮았다. 꽃의 둘레는 희고 안은 보라색이며,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꽃부리(花冠)는 깔때기 모양이며,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있다. 흔히 고구마 꽃이 피면 祥瑞롭다고 하는데 실은 드물지 않게 자주 피우는 편이다. 금년 내 고구마 밭에도‘나팔꽃’이 피었었다.

녹말이 많이 든 덩이뿌리(塊根, tuberous roots)로 감자(potato)와 비슷하지만 맛이 달다고‘단 감자(sweet potato)’라 한다. 고구마를 캐보면 사방에 굵은 원뿌리들이 깊고 멀리 뻗었고, 고구마 덩이에도 잔뿌리들이 나 있으니 말해서 고구마는 뿌리가 변한 것이다. 반면 감자(Solanum tuberosum)는 고구마덩이와는 달리 둥그런 감자에 하얗고 굵다란 줄기가 달려 있을 뿐 결코 덩이에는 잔뿌리가 전연 없고 매끈하니 감자는 줄기가 변한 것. 하여 감자는‘덩이줄기’이고 고구마는‘덩이뿌리’다.

그리고 아열대·열대 지방에서는 일 년 내내 시들지 않으므로 적당한 시기에 줄기를 잘라 꼽아서 번식한다. 감자는 줄기가 곧추서는데 고구마줄기는 길게 땅바닥을 따라 뻗으며, 생식기관인 꽃이 지고 열리는 씨앗이 아닌 잎·줄기·뿌리 같은 영양기관을 써서 번식하는 것을 영양생식이라 하며, 감자와 고구마는 모두 거기에 든다. 감자는 덩이를 짜개서 심고, 고구마는 순을 틔워 심는다.

고구마껍질은 매우 여려서 조금만 닿아도 겉껍질이 벗겨지고, 잎줄기가 다치면 희뿌연 젖물(乳液)이 나오니 그것은 녹말 즙이다. 고구마의 살색은 보라색, 하얀색에서 누르스름한 것 등 다양하고, 속까지 보라색인 자주색고구마도 있다.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다닐 적이다. 학생들이 모두 농사꾼 자녀들이라‘農業’이란 과목이 있어서, 학교에서 농사짓기를 실습으로 배웠다. 그런데 학생도 그렇지만 선생님 한 분이 서너 과목 가르치는 것이 예사였으니 학교 사정이 어느 정돈지 不問可知다.

암튼 요새는 3월 상순경 싹이 돋는 씨고구마를 심어 비닐을 씌우고, 온도를 높여서 모종을 기른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비닐이 없었으니 생판 달랐다. 이른 봄 양지바른 밭가에 넓게 4각형 구더기(구덩이)를 꽤 깊게 파고, 켜켜이 대소변을 뿌리고는 두엄을 한가득 쟁여 넣는다. 그 위에 흙을 깔고 주먹만한 고구마를 가지런히 심고는 가마니로 위를 여러 겹으로 덮는다. 가능한 빨리 두엄에서 나오는 열로 고구마 순을 틔우자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사실 고구마농사만큼 힘이 덜 드는 것도 없다. 필자는 올해도 고구마 줄기(순) 두 단(140여 포기)을 사서 골골이,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다닥다닥 심었다. 심을 자리에 물을 흠뻑 뿌리고 나무막대기로 비스듬하게 찔러 미리 구멍을 내고 거기에 고구마 순을 7㎝ 정도 찔러 넣고 흙을 꼭꼭 눌러준다(고구마줄기를 꼿꼿이 세워 심지 않음). 고구마 줄기가 한창일 즈음에는 핏줄처럼 얽힌 줄기를 한 번쯤 줄줄이 젖혀주니 잔뿌리에 영양분이 헛되게 쓰이는 것을 막는 것으로, 그냥 두면 줄기에서 수많은 곁뿌리를 내려 먹지도 못할 잔 것들이 마구 달리기 때문이다.

고구마는 중국, 우간다, 나이지리아 순으로 많이 재배, 수확한다고 한다. 성분은 수분 69%, 당질 28%, 단백질 1.3% 등으로 탄수화물과 식이섬유가 대부분이고, 9종이 넘는 비타민과 여러 무기염류가 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고구마수프, 일본서는 고구마소주가 이름이 났고,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의 군고구마가 유명하며, 당면과 소주의 원료로 제일 많이 쓰인다. 밥에 얹거나 얇게 썰어 전을 붙여먹어도 맛있지만, 어릴 적에 먹던 것은 머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 손가락만한 자잘한 것들을 작은 뿌리(細根)와 꼭다리(꼭지)를 떼고 쪄 말려 졸깃졸깃해진 그놈을 한겨울에 군것질로 먹었다. 그리고 고구마 껍질의 자주색은 안토시아닌으로, 누르스름한 베타카로틴(beta-carotene)은 항산화제antioxidant)로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 한다.

흔히‘고구마줄기’를 먹는다고 하는데 틀렸다. 그 질긴 고구마줄기를 어떻게 먹으며, 또 한창 자라는 줄기를 뜯어다 먹는다면 고구마가 열리지 않을 건데 어쩌려고? 결론은‘잎자루’를 먹는 것이다. 잎의 본체(곸身)는 따버리고 길게 붙은 잎자루(곸柄)를 한소끔 데친 다음 겉껍질을 벗겨버리고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 먹으며, 말려서 묵나물로도 먹는다. 고구마는 잎자루와 뿌리를 주로 먹는다.

갈바람에 곡식들이 혀를 깨문다. 이윽고 구시월이면 고구마 덩이가 몸집 불리느라 밭두둑이 쩍쩍 갈라지니 조심조심 금간 두둑을 호미로 살짝 긁어보면 고구마가 보인다. 와! 원줄기를 힘껏 잡아당기면 주렁주렁 고구마가 달려 올라온다! 세상에 고구마 캐는 재미라니……. 農者天下之大本이라,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根本이요, 한 톨의 곡식에 만인의 노고가 담겼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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