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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범주로서 ‘세대’의 잠재성을 읽어내다
학문적 범주로서 ‘세대’의 잠재성을 읽어내다
  • 박희경 성균관대·독어독문학과
  • 승인 2014.10.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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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세대’란 무엇인가?: 카를 만하임 이후 세대담론의 주제들』 리케 유라이트·미하엘 빌트 엮음|한독젠더문화연구회(박희경 외) 옮김|한울|483쪽 |48,000원


지난 1세기 세대담론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개괄하면서, 폭넓은 이론적인 스펙트럼과 다분히 입체적인 제안들을 던지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세대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시킬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독일에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 중에는 세대현상이 있다. 시작은 89세대였는데, 동독의 몰락으로 삶의 전환을 겪는 젊은이들을 집단화한 말이었다. 곧이어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가 이전됐고, 이를 기점으로 베를린 세대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2000년에 마침내 골프세대라는 말이 생겨났고 삽시간에 유행어가 됐다. 골프세대는 폭스바겐 골프와 세대를 합성한 말로서, 복지국가 서독에서 70년대에 태어나서 각종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면서 성장한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대략 십 년 사이에 공식적으로 세 세대들이 등장한 것인데, 같은 시기에 인턴세대, 싱글세대, 앨리세대 등의 세대 규정들도 만들어져서 어떤 것이 보다 더 세대 현실에 합당한지 경쟁했다. 십 년을 주기로 한 세대가 만들어진다는 상식으로 보자면, 이상하리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세대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명명된 세대들의 실체 여부도 논쟁거리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세대 용어의 과잉 생산은 근대적인 ‘정치적 세대’가 그 유효성을 상실한 것과 밀접히 연관된다. 세대는 오랫동안 단절의 개념이자 분리의 개념, 그리고 관철의 개념이었고, 전쟁청년세대부터 68세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라고 하면 정치적인 권력 및 사회문화적인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요구와 결부돼 이해됐고 또 사용됐다. 하지만 탈이데올로기의 시공간에서 세대라는 꼬리표를 붙인 신조어들은 정치사회적인 변혁, 새로운 출발과 연계됐던 세대적 修辭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편, 세대현상의 인플레이션은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적인 경험들에서 어떤 공동체적인 연계성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들로 보인다. 혹은 세대를 자기정체성 표현으로 보자면, 세대의 과잉은 몇 년 후를 계획할 수 없을 만큼 가속화하는 자본주의의 속도에 맞서는 공동의 경험에 대한 희망을 뜻할 수도 있다. 이전에는 계급과 계층이, 그 후에는 젠더가 사회문화적인 구조를 범주화했던 개념이라면, 이제 세대가 이에 버금가는 분석적 범주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울리케 유라이트와 미하엘 빌트가 엮은 책 『세대란 무엇인가?』는 세대가 계층과 젠더의 지위에 상응하는 분석적인 범주임을 전방위적으로 검토한다.


세대란 무엇인가. 일견 자명한 세대를 굳이 원점에서부터 다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오늘날 세대 개념으로 인식의 회로, 해석의 규범, 행동의 양식이 공통된 특정 집단을 지칭한다면, 세대는 근대에 생겨난 구성체로서 차이와 발전이 계승보다 중요해지고, 개인의 운명이 대가족제도의 질서와 지평을 벗어나며, 청소년기가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이라는 인식과 함께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였던 카를 만하임은 1928년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세대모델을 제시했는데, 그의 세대에 대한 관점은 이 책에 실린 열 세 편의 논문들에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유효하다. 많은 경우 여전히, 심지어 세대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자리에서도 세대가 동년배집단인 코호트와 동의어처럼 쓰이기 일쑤이지만, 만하임 이래 연령에 특유한 태도와 감정과 사고방식의 유사성은 실제세대가 생겨나기 위한 조건이지 결과가 아니다.
이 책의 독일어 원본에 ‘학문적 토대개념의 중요성(Zur Relevanz eines wissenschaftlichen Grundbegriffs)’이라는 부제가 있다시피, 이 책은 세대 개념이 갖는 학문적인 잠재력을 톺아보는 필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유라이트와 빌트는 세대 구성의 준거들로서 세대는 개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정체성을 표현하고, 개인이 집단과 맺는 관계에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며(이 부분이 복지국가와 관련해서 점점 중요해진다), 세대는 경험과 체험을 동일하게 인지하고 해석하고, 나아가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행동으로 귀결되는 점을 꼽는다. 이들은 만하임의 사회학적 세대모델이 갖는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세대 연구가 한 분과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다학제적이고 통섭적인 성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분석적 범주로서 세대 연구는 계보학적인 측면, 생식성적인 측면, 젠더적인 측면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충족되지 않는다. 사실상 사회학, 역사학, 교육학뿐 아니라 문화학, 문예학, 정신분석학 등에서도 이미 세대에 대해서 개별학문적인 해석의 범주들을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처럼 독일의 세대 연구에 다양한 학문분야가 참여하는 것이 더욱 주목된다. 개별 학문 분야에서 도달한 이론적이고 방법론적인 세대 컨셉과 범위들을 상호 연관하고 논쟁함으로써 연구의 폭을 심화, 확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로써 세대 개념의 분석적인 잠재력이 지속적으로 검증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 책의 필자들이 제기하는 만하임의 사회학적 세대모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점들이 있다. 근대적인 세대의 구성은 전쟁을 기점으로 했던 남성의 기획으로서 여성은 세대의 개념에서 배제됐다. 세대 규정에서 체험의 동시성과 세대간의 단절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신분석학이 밝힌 바에 의하면 상호 단절돼 보이는 세대와 세대 사이에도 역사적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계승된다. 따라서 세대와 세대간 관계 규정에서는 공시적인 측면뿐 아니라 초세대적인 연속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또한 골프세대의 유행과 같이 탈영웅적인 세대 현상에 주목하는 문화학적 관점에서는 사건과 체험 그 자체가 아니라 세대단위와 사회적 반향의 역학관계가 세대형성에 중요하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획을 설득력 있게 여기는가다. 나아가 문예학과 문화학은 기억에 의한 매개와 이미지를 통한 감정의 전달과 공유가 세대적인 구성요소임을 보여줌으로써 세대 연구에 새로운 제안을 한다.


현재 세대 문제는 비단 독일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386세대, 신세대, N세대,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에코세대 등 현상은 다양하고 말은 무성하다. 복지국가의 필요성과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세대갈등도 심화되고 있는데, 정작 세대 개념과 세대 연구에 대한 고민은 드물다. 세대란 무릇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유사한 경험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이라거나, 세대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교체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정의는 세대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문제적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그들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 세대격차와 세대갈등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 상당히 유비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청년적인 반항의 전통이 있던 독일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서구의 어떤 국가보다도 세대갈등과 세대전환을 극단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전쟁에서 패배할 때마다 과거와의 단절 및 새로운 출발을 역사적 소명으로 삼은 전쟁청년세대들이 나타났고, 이들을 세대로 집단화하고 세대적 특징들을 부여하는 세대 담론들이 있었다. 지난 1세기 세대담론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개괄하면서, 폭넓은 이론적인 스펙트럼과 다분히 입체적인 제안들을 던지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세대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은 독일 문학, 독일 문화, 독일학 분야 연구자들의 연구모임인 ‘한독젠더문화연구회’가 했던 독회의 결실이다.

 



박희경 성균관대·독어독문학과
필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나의 통일이야기』(공저), 『통일독일의 문화변동』(공저), 『독일 신세대 문학』 (공저) 등이 있다. 현재 초세대성과 감정유산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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