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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지 못한’ 일본사회의 불안감
‘성숙하지 못한’ 일본사회의 불안감
  • 교수신문
  • 승인 2014.10.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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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시간_ 『일본,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 ,조관자 엮음|박문사|335쪽|19,000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성장’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을 투사시키는 모델이자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목표의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반일’은 한국인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고, 일본의 ‘상실’에서 ‘극일’의 성취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직면한 문제들은 한국의 몫이기도 하다. 노령화, 실업, 양극화, 재정적자와 복지 위기, 지역경제 쇠퇴, 재해와 방재, 자원과 에너지, 국제사회의 지위 및 미래지향적 역할을 한국사회도 풀어가야 한다. ‘일본 안의 우리’인지, ‘우리 안의 일본’인지, 그 안팎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한 ‘뫼비우스 띠’와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의 부정적 위기들은 글로벌 사회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연이은 문제의 꼬리를 잘라내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없다. 글로벌 사회에서 ‘격차’는 존재해도, ‘안팎’의 구별은 무의미한 것이 됐다.


일본인 스스로가 하류사회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생활세계가 ‘하류’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2013년 중국의 GDP가 일본의 2배 가까이 치솟았지만, 2012년 인구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4만7천879달러, 한국이 2만2천670달러, 중국이 5천680달러로, 일본인의 평균적 풍요는 중국의 8배로 환산된다. 일본의 실업률은 유럽과 미국에 비해 양호해 2003년에 최고 5.4%를 보인 후, 2014년 3월 현재 3.6%로 호전됐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글로벌 자본주의 문제며, 중국의 경제규모와 성장 단계에 비교해 일본의 쇠퇴와 박탈감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도될 뿐이다.
따라서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담론을 맹목적으로 흡수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문제의 소재와 책임을 외부의 적에게 돌림으로써 뫼비우스 띠처럼 펼쳐진 현실을 감추려는 민족 감정과 일국적 대응 논리에 감정이입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장 뒤의 쇠퇴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 이치를 깨닫는 사람들은 경제성장보다 성숙사회(mature society)를 추구한다. ‘성숙’은 성장의 쇠퇴를 ‘국가적 위기’로 선동하지 않고 현실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성숙’은 고령인구의 부양책임을 국가와 젊은 세대에게 요구하거나, 자본주의적 경쟁을 회피하고 생산성 향상의 효율을 거부하거나, 사회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거나 하는 돌파력이 아니다. 소통과 협력, 정성과 인내 속에서 일본사회의 성숙을 돕고 우리의 성숙도 꾀할 수는 없을까. 기업들의 혁신경쟁은 글로벌 사회에서 더욱 치열하게 ‘따라잡기’를 반복하고 번복하겠지만, 글로벌 사회는 평화적 공존을 추구한다. 경쟁과 공존의 이중성이 갖는 분열은 결국 개별 사회의 ‘성장’이 아니라 ‘성숙’을 위한 국제적 공조와 상호 신뢰 속에서 극복될 것이다.


일본의 다양한 ‘성숙’ 가능성을 일본의 역사와 문화, 정치 사회 구조 전반 속에서 치밀하게 탐구해내는 것도 새로운 일본연구의 가능성을 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성숙’은 이 책의 화두가 아니었다. 이 책은 ‘성숙하지 못한’ 일본사회의 불안과 상실감에서 출발했다.


□ 엮은이인 조관자는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로 있다. 도쿄대에서 한일 지식 교류와 문화 내셔널리즘의 교섭 현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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