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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자의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들
여성 과학자의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들
  • 박수지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 승인 2014.09.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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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조심스레 졸업시기를 점칠만한 시기가 되면 누구나 학위과정을 마친 후의 구체적인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입학 당시부터 지녀온 신념과 꿈을 꾸준히 가꿔온 사람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본인의 마스터플랜을 따라 전진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쯤은 다른 진로를 고민해 보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필자 역시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 중 하나다.

교수와 같은 연구자의 길을 고려하게 되는 계기는 직업 자체의 매력과 더불어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한 흥미와 깊은 호기심이 생길 때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외 학회 참석은 이러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큰 계기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생활 중 가장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경험이라 생각한다. 본인과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연구분야를 접하면서 학문에 대한 흥미가 유발되며, 이 커뮤니티에 소속감과 유대감이 형성된다. 여기서 내가 어떤 연구를 해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가 눈에 들어오면서 연구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위에는 교수 임용을 기다리며 꽤 긴 시간을 연구원 신분으로 지내는 분들이 종종 눈에 띄고, 힘겹게 교수가 되더라도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결국 비정규직이 아니던가. 지난 5~6년을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대학원생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서 살아왔는데 또 몇 년이 될지도 모르는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다른 친구들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나름의 인생설계를 하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 학생으로 남아있는 자신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계획대로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슬럼프가 찾아오면 이런 고민들은 더욱 더 우리를 괴롭힌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는 높아져만 가고 뚜렷하게 보장된 미래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 갈 즈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취업이다. 

필자와 같은 여성 과학자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하다. 결혼과 임신, 육아, 가정과 일의 균형. 여성들이 진로를 고민하고 인생을 설계할 때 어떻게든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모퉁이다. 요즘에는 각종 세미나와 멘토링 프로그램 덕분에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여성 과학자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부분은 가족과 주변인의 협조와 배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공담이다. 하지만 본인이 처하게 될 상황과 주변 환경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결국 그 상황을 만들고 헤쳐가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학원생들이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진로를 결정하는 시점은 아마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생길 때일 것이다. 누군가 ‘연구가 뭐 하는 것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럴듯한 답을 내놓기 힘들다. 대학원 생활 동안 끊임없이 해왔던 것이 일종의 ‘연구’지만, 아직도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갖고 이 일을 해왔는지 또는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많은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철학에 따라 스스로를 격려하고 노력한다면, 대학원에 입학하며 가졌던 원대한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위치에 있든 간에 연구자로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수지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고해상 엑스선 영상기술을 이용해 연성 물질과 액체, 기체 계면에서 나타나는 젖음주름(wetting ridge)에 의한 특이젖음성 동역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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