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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대체하고 있는 PPT … 독창적 콘텐츠로‘학술서 출판’겨냥할 수 있어야
교재 대체하고 있는 PPT … 독창적 콘텐츠로‘학술서 출판’겨냥할 수 있어야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4.09.29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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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출판협회-교수신문 공동기획‘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④ 대학강의, 교재활용 실태2

연재순서
❶ W 시대, 대학 강의실이 변해야 한다
❷ 저작권 보호와 강의
❸ 대학강의, 교재활용 실태1
❹ 대학강의, 교재활용 실태2
❺ W 시대, 새로운 강의 윤리를 찾아서
❻ 인터넷과 출판, 위기인가 기회인가
❼ 전자책은 어디로?
❽ 우리시대의 도서관1
❾ 우리시대의 도서관2
❿ 학술서는 살아남을 것인가

지 방 ㅅ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 아무개 교수는 강의와 관련, 불문율이 하나 있다. 이 불문율은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로부터 배워온 것이기도 하다. 내용인 즉, 강의 주교재 지참을 위해 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오픈 북’테스트를 한다는 것이다. 막 전임 교수가 돼 강단에 섰을 때, 수강생들이 지정한 교재를 준비해오지 않은 게 빈번해서 할 수 없이 스승의 지혜를 빌렸던 것이다.
“교재나 참고문헌 등을 최소한으로 제시했지만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교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20-30%가 됐을까?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는 생각을 바꿨다. 오픈 북 시험을 알렸다. 교재를 준비한 학생들이 늘었지만 그렇다고 100%는 아니었다. 복사해서 들고 오는 학생도 있었고 시험 때만 어디선가 빌려오기도 했다.”
김 아무개 교수는 강의와 교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재를 지정했다면 교재에 충실하면서도, 이것을 보완해주는 강의로 발전해야 하고, 또 그런 열의를 보여야 한다. 해당 학기 중에 준비한 강의계획서에 따라 충실하게 내용을 정리해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책 일부만 진행하게 되면 교재를 준비한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게 된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책이 사라진 강의실
10년 전만 해도 두꺼운 전공 서적을 손에 쥐고 다니는 대학생이 많았다. 요즘의 캠퍼스는 어떨까. 서울 소재의 O대학에서 만난 대학생의 가방 속은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는 “대부분 PPT로 강의하기 때문에 교재는 거의 갖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방에는 교재 대신 A4 몇 장의 출력물과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묶은 제본이 들어 있었다. 행정학과 4학년 윤 아무개 씨도 “교재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돼 편하고, 교재비가 들지 않아서 PPT강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강의에 필요한 책을 두 손 가득 들고 다니던 대학생의 낭만도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 등의 다양한 영상 장치가 강의실에 구비되면서 주교재와 보조교재만을 활용한 강의는 구시대적 방식이 됐다. 부산대는 최근 강의실에 PPT를 띄어놓고 그 위에 필기할 수 있는 전자칠판을 도입했다. 서울대는 사이버 공간에 다양한 강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ETL(ETeaching & Learning)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 자체에서도 ‘사이버 강의실’과 같은 사이트를 운영하며 교수와 학생들이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손쉽게 올리고 다운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강의 시작 전, 인터넷으로 수업 자료를 훑고 오거나 필요한 부분만 종이로 출력하는 일이 대학가에서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더욱 재밌는 현상은 강의 중간 쉬는 시간마다 스마트폰으로 PPT의 내용을 촬영하거나 강의가 끝나면 자료를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따라 교강사의 수업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서울여대에서 현대철학을 가르치는 문성훈 교수는 강의에 교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문 교수의 강의는 대부분 PPT를 활용한다. 슬라이드 형태의 PPT자료를 올려놓으면 학생들은 수업 전에 미리 출력해 온다. 필요한 경우 문 교수가 직접 집필한 학술출판물을 활용할 뿐 특정한 교재를 선정하진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문 교수는 “철학 강의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교재를 사용하면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PPT만 활용하다보면 학생들이 책을 멀리하게 될 거란 우려에 대해 문 교수는 “여러 권의 책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해 수업 전 미리 읽어보도록 유도한다. PPT는 키워드만 제시해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수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내용을 요약한 PPT에 의존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책을 사거나 필요한 도서를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학생의 비율이 증가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도 교재는 따로 사용하지 않고 PPT를 활용해 강의한다. 방 교수는 PPT강의에 대해 “사진 등을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줄 수 있고, 교재를 활용하는 것보다 수업이 일목요연해진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책 읽는 훈련위해 교재 활용해야
반면에 여전히 교재를 고수하는 교수들도 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대학 교수(국문학)는 직접 집필한 책을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오 교수는 “교재가 없는 수업은 체계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며 교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PPT강의에서는 학생들이 잘 필기하지 않아 인지적 영역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오 교수는 학생들에게 講讀을 자주 시킨다. 교재나 텍스트를 읽으면서 뜻을 해석하고 다른 생각도 접할 수 있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김용규 부산대 교수(영문학)도 “교재는 책 읽는 훈련에 도움이 된다”며 “책 읽는 훈련은 대학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평생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PPT만 활용한 강의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교재와 PPT를 결합한 강의는 교재만 활용하는 것보단 전달 효과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많은 강의실에 교재가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로 수업에서 필기하는 학생도 사라졌다. 참 신기한 것이 책은 두고두고 소장하게 되지만 낱장의 출력물들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기대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교재대신 필요한 부분만 몇 장 출력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간단하게 삭제하고, 재활용 종이로 버리기 쉽다는 뜻이다. 물론 교재가 사라진 데는 출판시장의 문제도 있다. 오 교수는 “학술출판은 구매자층이 분명하다는 점을 이용해 교재비를 터무니없이 높게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비싼 교재를 멀리하면서 제본이나 출력물에 의존하다 보면 학술출판의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침체된 학술출판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PPT의 좋은 콘텐츠를 학술출판의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방 교수는 “PPT 자료를 모아 강의로 활용하는 과정을 거치면 학술서를 출판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철저한 준비가 전제된다. 『떨리는 강사 설레는 강사』(학지사刊) 저자인 이의용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PPT강의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독창성’을 꼽았다.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것보다 자신의 것으로 자신만의 강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거지와 교수는‘작년에 한 말을 올해 또 한다’고 한다. 교강사들이 지난 학기와 똑같은 수업을 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적어도 20~30%는 새로운 내용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체된 학술출판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는 교강사들의 노력이 아닐까.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강의 준비를 위한 명강사 체크리스트
좋은 콘텐츠가 학술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교강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철저한 준비로 만들어 낸 콘텐츠는 학술서의 수준을 높이고 이는 학술출판 시장을 확대할 것이다.『 떨리는강사설레는 강사』(학지사刊)에서 발췌한 ‘강의 준비를 위한 명강사 체크리스트’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의용 교수는 “명강사의 기준을 단순히 점수로 끊어 평가할 순 없지만 절반 이하의 점수라면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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