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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금실 상징하는 '수다스런 나무'
부부금실 상징하는 '수다스런 나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09.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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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_ 114. 자귀나무

자귀나무잎(제공.국립수목원)
樵童牧豎란 ‘땔나무 하는 아이와 소먹이는 총각’이라는 뜻으로, 배우지 못해 識見이 좁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으며, 그러다 보니 生物學이라는 과목이 좋아진 것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매화를 그리다 보면 매화를 닮는다고 했던가. 생물학이 좋아진 것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인 적성인 듯한데, 자식 셋이 모두 애비 따라 생물을 전공했으니 후천적 적성도 유전하는 것일까. 암튼 아비를 붙좇은 자식들이 마냥 고맙고 행복할 따름이다.

여름 한철 오후에는 소를 쳐 놓고 산비탈을 올라 꼴을 한 짐 뜯는다. 오늘따라 소가 잘 먹는다 하여 ‘소쌀밥나무’, ‘소찰밥’라 부르는 자귀나무(Albizia julibrissin)를 만난다. 학명의 속명‘Albizia’는 18세기 유럽에 처음 이 나무를 소개한 이탈리아인 필리포 델 알비치(Filippo del Albizzi)에서 딴 이름이고, 종소명인 ‘julibrissin’은 ‘비단 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지를 자른 기억이 나지만 한참을 손대지 않았는데도 뜯어먹은 자국이 났으니 이건 분명 노루, 고라니가 한 짓이다. 질소고정세균과 공생하는 콩과식물은 어느 것이나 콩처럼 단백질(흰자질) 성분이 많아 초식동물들이 즐겨 먹으니, 칡잎·토끼풀·아까시나뭇잎 따위를 토끼도 잘 먹지 않던가.

자귀나무 잎은 낮에는 옆으로 활짝 퍼지나 밤이나 어스레히 흐린 날에는 부리나케 접는다. 자귀나무를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자며 즐기는 나무(合歡木), 혼인을 맺는 나무(合婚樹), 밤에 정을 통하는 나무(夜合樹), 인정이나 동정심이 많은 나무(有情樹)라 부르니,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다. 이는 밤엔 하나같이 마주보는 잔잎을 오므라뜨려 둘씩 포개지는 데서 온 말들이다. 

자귀나무는 장미목, 콩과에 속하는 아름드리 낙엽교목으로 높이 6∼9m를 자라고, 영어로는 silk tree 또는 mimosa tree라 하는데, 후자는 미국 쪽에서 많이 쓰지만 잘못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에 자생하고, 원산지가 동남아이거나 동아시아인 한국이나 중국으로 보고 있으며, 비슷한 자귀나무를 태국 등지의 동남아에서도 만난다. 넓게 퍼진 가지 때문에 나무의 모양이 풍성하고, 특히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매우 아름다워 정원수(관상수)로 많이 심으며, 꽃말은 ‘歡喜’라 한다. 그리고 주변이나 나무 아래에는 다른 식물을 못 자라게 하는 심한 타감작용(allelopathic)을 보인다. 소나무 밑에 잔솔이 나지 못 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반질반질하고 보들보들한 잎은 나긋나긋한 줄기에 하나씩 달리는 홑잎(單葉)이 아니라 아까시나무처럼 작은 잎들이 여럿이 모여 하나의 잎을 만드는 겹잎(複葉)이다. 잎은 깃꼴겹잎(羽狀複葉)으로 어긋나고, 잎자루에 자그마치 20~30쌍의 잔잎(小葉, leaflet)이 촘촘히 마주난다. 대부분의 복엽은 역시 아까시나무처럼 작은 잎들이 둘씩 마주나고 맨 끝에 하나 남는데(奇數羽狀複葉), 자귀나무는 짝수여서 저녁녘에 잎을 닫을 때 홀로 남는 잎이 없는 偶數羽狀複葉이다. 잎이 푸지게 매달린 말쑥한 자귀나무는 짙푸른 것이 시원하고 그윽한 그림자를 어울리게 지우는 여름나무로 으뜸이다.

자귀나무 (제공. 국립수목원)
꽃은 兩性(암수한꽃)으로 7월에 새 가지 끝에서 길이가 5㎝ 정도의 꽃대가 나와 피는데, 15~20개의 꽃들이 우산꼴 꽃차례(傘形形花序, 꽃대의 꼭대기에 여러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달린 무한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기다란 분홍 수술이 술(실, silky thread)처럼 늘어지기 때문이고, 암술은 수술보다 길며, 한창 피면 향긋한 냄새에 벌과 나비가 날아와 꿀을 딴다. 열매는 15㎝ 정도의 납작하고 긴 꼬투리(콩깍지) 모양으로 노란빛 도는 밝은 갈색으로 여문다. 다 익으면 꼬투리가 갈라져 5~6개의 씨앗이 튀어나오는데, 깍지는 금세 떨어지지 않고 겨울바람에 부딪혀 달가닥거린다. 이 소리가 시끄럽다고 ‘수다스런 나무(女舌木)’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잘 관찰하면 다른 콩과식물들도 밤이 되면 차이가 날 뿐, 죄다 잎자루나 잎을 오그리는 것이 본새다. 같은 콩과식물인 신경초 또는 잠풀이라 부르는 미모사(mimosa)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꼬마 화분에 심어 팔았었고, 쫙 벌어진 잎에 열을 가하거나 손으로 집적이기나 하면 어느새 담쏙 잎과 잎자루가 처지는 장난을 해 봤다. 어느새 쏘옥 도로 제 모양으로 돌아왔었고. 그런데 밤에는 가만히 뒀는데도 잎이 저절로 오므라드니, 빛이 없어져 광합성을 하지 못해 잎줄기의 물이 빠지면서 팽압이 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귀나무도 그러하다.

미모사(Mimosa pudica, sensitive plant, sleepy plant, touch-me-not)는 중남미가 원산지로, 거기서는 다년초이나 한국에서는 일년초다. 식물체에 잔털과 가시가 있고, 높이가 30cm에 달하며, 잎은 보통 4장의 깃꼴겹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배열한다. 꽃은 7∼8월에 연한 붉은색으로 피고, 꽃대 끝에 모여 달리며, 꽃잎은 4개로 갈라진다. 수술(stamen)은 4개로 길게 밖으로 뻗고, 암술(pistil)은 1개로 암술대는 실 모양이며 길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납작한 꼬투리에 5~6개의 씨가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내친김에 정원 딸린 독채로 이사가 마당에 有情樹 한 그루 심어놓고 변치 않는 부부사랑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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