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25 (금)
“‘빅히스토리’는 역사 이념의 빅뱅 … 생물학·천문학 등 다양한 학문 통섭하는 역사이념 필요”
“‘빅히스토리’는 역사 이념의 빅뱅 … 생물학·천문학 등 다양한 학문 통섭하는 역사이념 필요”
  • 최익현 기
  • 승인 2014.09.22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33회차 강연_김기봉 경기대 교수의 ‘역사의 이념’


‘문화의 안과 밖’ 전체 50강 중 33회차 강연이자, ‘역사와 전통’을 주제로 진행되는 6섹션의 네 번째 강연이, 연사는 김기봉 경기대 교수, 주제는 ‘역사의 이념’으로 지난 13일(토)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에서 진행됐다.
김 교수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역사주의와 신문화사: 포스트모던 역사서술을 위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역사이론 연구에 주력해왔다.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사가들의 역사관을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의 역사 이념과 변천 과정을 살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B.C. 480~429)와 사마천(B.C. 145~86)은 서양과 동양에서 각각 역사라는 서사를 처음 만들어낸 장본인. 이들 두 사람은 각각 호메로스와 공자라는 ‘거인의 어깨 위의 난쟁이’라는 자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썼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Historial)의 목적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후세가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비해, ‘동양 역사의 아버지’인 사마천의 역사 서술(『사기』)의 목적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여 한 학파의 학설을 이루는 것”에 있었다. 즉, 서양의 역사 이념이 ‘記憶’에서 출발했다면, 동양의 역사 이념은 ‘天命’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서양 두 역사의 아버지가 지녔던 역사관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 교수는 그들이 존재했던 시대 조건의 차이에 주목했다.
우선, 호메로스가 ‘문학의 시조’라면, 공자는 ‘동아시아 철학의 태두’다. 즉, 서양에서는 문학에서 역사가 분리됐고, 동양에서는 經으로부터 史가 독립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이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이행 과정에서 탄생했다면, 사마천의 역사 서술은 지배집단이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통신 코드였던 漢字의 발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서양의 경우, 고대엔 ‘티케(합리적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연적인 사건이나 초월적인 운명)’, 중세엔 ‘신의 섭리’, 근대엔 ‘이성’이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었다. 근대에서 ‘이성’의 부상은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계몽사상은 역사를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범례의 집합소에서 과거를 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진보)의 개념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거대담론의 역사 이념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김 교수는 근대의 거대담론 역사 이념이 미래 역사의 진보를 위해 현재 인간의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에 복무하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계몽의 변증법’을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20세기 말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가치에 주목하는 ‘微視史’가 등장한 배경에는 이러한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반성이 작용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나아가 김 교수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를 소개하면서, 역사학이 생물학, 경제학,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섭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이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자료·사진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20세기 말 인류는 두 가지 정반대의 의미로 진보로서 역사의 종말을 맞이했다. 결국 틀린 것으로 판명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진보로서 역사에 대한 가치의 전도를 낳은 지구온난화와 생태계파괴가 그것이다.

오늘날 인류에게 진보는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사적 목표가 더 이상 아니며,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바벨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리스크를 내재한 것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미래 역사의 진보를 위해 현재 인간의 삶을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근대 거대담론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인간’을 주장했다. 이 같은 역사 이념은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에 복무하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계몽의 변증법’을 초래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기치를 들고 나타난 역사서술이 미시사다.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리오타르가 거대담론의 종말이라고 특징 지웠던 탈근대라 불리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우리의 현실과 세계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해지면 질수록, 종래의 거시적인 인식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는 점점 커졌다.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으로 작은 것들 또는 미시세계들에 대한 인식 관심이 증대했다. 따라서 역사현실의 소우주를 현미경적으로 관찰해 큰 것들 위주로 서술된 ‘위로부터의 역사’의 이념이 은폐하고 배제한 ‘역사들’을 발굴하는 미시사가 등장했다.

종래의 역사학은 연구대상과 연구관점은 비례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시사가 주장하는 것은 연구하는 대상이 작다고 연구의 성과물도 작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작은 대상에서도 큰 의미연관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각이다. 미시사는 거대담론 역사의 해체를 통해 카오스이론이 ‘나비효과’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작은 ‘역사들’이 촉발한 중대한 변화들을 규명하고자 했다.

21세기 역사학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유럽중심주의 극복이다. 이 문제를 화두로 해서 터키 태생으로 중국현대사를 전공한 아리프 딜릭은 1999년 「유럽중심주의 이후 역사학은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의 지역을 나누고 시대를 구분하고, 그리고 사회 변동을 설명하는 거의 모든 개념이 유럽의 근대 역사학이 만든 것들이다. 따라서 역사학이란 학문 자체가 유럽중심주의라는 기의(signified)를 내포하고 있는 ‘근대의 기호(a sign of the modern)’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유럽중심주의 바깥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탈식민주의와 지구사라는 겉보기에는 상반된 새로운 역사서술이 나타났다. 탈식민주의는 중심으로서의 유럽을 해체해 유럽을 지방화하고 유럽적인 것의 혼종적 기원을 밝히는 작업에 집중한다. 이에 반해 지구사는 전지구화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역사학적인 대응으로 나타난 새로운 세계사다. 역사현실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인류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지구촌’에 살게 된 시대로 변모한 반면, 역사학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적인 세계사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통합과 해체의 모순을 지양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지구사가 탄생했다. 결국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역사 이념으로 탈식민주의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지구사’가 등장했다. ‘아래로부터의 지구사’는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개인(the individual)이거나, 근대나 세계화와 같은 보편을 전제로 하는 특수(the particular)가 아니라, 특이성(the singular)을 의미의 코드로 삼아 대립적인 차이(difference)이 아니라 관계적인 차연(diff?e?rance)을 해명하고자 한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서양의 헤로도토스와 동양의 사마천 이래로 수많은 역사 이념을 만들어왔다. 그러한 역사 이념들이란 결국 폴 고갱의 그림 제목처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여러 형태의 답들이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역사가 서술됐다.

인간, 시간, 공간이라는 역사의 3間을 어떻게 조합해 어떤 역사를 쓰느냐는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사고의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 가장 큰 사고의 프레임을 가질 때 가장 큰 역사에 대한 이념과 역사서술이 나올 수 있다. 데이비드 크리스찬(David Christian)에 의해 1980년대 세계 역사학계에 처음 등장한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대한다. 거대사는 137억 년 전 빅뱅(Big Bang)에서 45억 년 전 태양계의 형성, 25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시공간을 우주라는 가장 큰 범주로 확대해 고찰함으로써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인류 역사의 우주적 본질에 대해 성찰하는 역사를 쓰고자 한다.

빅 히스토리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우주에서 왔다가 다시 우주로 간다. 나라는 존재는 비록 우주의 먼지지만, 내 나이는 137억 년 전 빅뱅으로 생겨난 우주와 동갑이다. 이 같은 빅 히스토리를 과연 역사라고 볼 수 있는가? 역사학을 넘어 철학,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는 빅 히스토리는 역사 이념의 빅뱅이다.

인류가 문명사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역사 이념의 빅뱅이 일어나는 이유이며 배경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또 다시 성장의 마의 벽을 뚫는 문명사적인 ‘특이점’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자연의 복수 또는 신의 징벌로 문명의 해질녘에 도달할 것인가. 계속 질주하는 과학기술은 장차 사이보그나 복제인간과 같은 새로운 인류의 종을 만들어내는 포스트휴먼시대를 도래시킬 전망이다. 이안 모리스(Ian Morris)는 인류를 구할 터미네이터는 어디까지나 역사가라고 주장했다. 왜냐면 “역사가만이 사회발전의 거대한 서사를 모을 수”있으며, “역사가만이 인류를 나누는 차이점을 설명하고, 그러한 차이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을 인류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학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대사처럼 생물학, 물리학, 사회학, 경제학, 지리학, 지질학, 천문학, 철학, 종교학 등 모든 학문을 통섭할 수 있는 역사 이념을 제시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