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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교육부의 이상한 민원처리방식
초점 : 교육부의 이상한 민원처리방식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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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1:25:32

ㄱ대학에서는 올해 교수임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대학본부 인사위원회에 지원자 가운데 한사람의 지도교수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심사결과 학과 교수들이 우수하다고 추천한 인물이 아니라 인사위원회에 참여한 교수의 제자가 최종 선정됐다. 그러자 해당 학과의 교수들은 심사가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교수들의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교수들은 청와대와 감사원, 교육인적자원부에 불공정임용에 대해 감사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ㄱ대학 교수들이 제기한 민원은 불공정임용 의혹만큼이나 이상하게 처리됐다. 먼저 청와대와 감사원은 해당 부서인 교육인적자원부로 관련내용을 이첩했다. 그런데 교육부도 이 사안을 ㄱ대학으로 이첩했다. ‘ㄱ’ 대학에 문제가 있다고 민원을 제기했는데 결국 ‘ㄱ’대학에 진상 조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결국 이의를 제기한 교수들은 한 달만에 ‘문제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민원제기 끝에 불이익 당하기 일쑤

교육부가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민원처리결과를 보면 이상한 결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올해 상반기 대학의 비리나 불공정한 행정처리문제로 교육부에 쏟아진 민원 가운데 상당부분을 해당 대학으로 이첩한 것이다. 이 가운데는 학과 폐지 반대 등 대학이 자체적으로 처리해야할 사안들도 있었지만 민원의 대상이 대학인 문제까지도 해당대학으로 이첩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민원을 제기한 당사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보게되는 경우마저 생겼다.

박 아무개 교수는 1997년에 ㅍ대학에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그런데 임용된 지 2년이 지나 조교수로 승진할 때가 됐는데도 승진 심사를 받지 못했다. 결국 2000년 8월로 임용기간이 만료됐고, 또 다시 전임강사로 재임용 됐다.

박 교수는 인사행정이 파행적이라며 올해 3월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 사안을 다시 ㅍ대학으로 이첩했다. 박 교수는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도 재심을 신청해 재임용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니 임기를 6개월 연장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박 교수는 2003년 2월까지 신분을 유지하게 됐지만 교육부의 ‘이첩’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대학본부와 주변의 일부 교수들이 학내문제를 외부로 알리고 다닌다며 박 교수를 추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교육부에 제기한 민원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 됐다.

학내규정에 따르면 두 번에 걸쳐 승진에서 탈락할 경우 자동으로 재임용에서 탈락된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번에도 승진심사에서 불공정한 절차를 거쳤고 현재 재임용 탈락 위기에 처해있다.

학내 비리와 관련한 학생들의 민원처리 방법은 더욱 이상하다. 박 아무개 군 등 ㅎ대 학생 4명은 지난 3월 대학이 자신들에게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며 교육부에 구제를 요청했다. 이들은 2001년 법인비리의혹이 불거지고 자신들을 가르치던 교수가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불법점거 등의 사유로 대학에서 제적 등 중징계를 받았다.

교육부는 뒤늦게 ㅎ대학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고, ㅎ대 법인에 비리사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 관련자들을 징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적된 학생들이 구제를 요청하자 교육부는 이 사안을 ‘ㅎ대로 이송’한 것이다.

학생의 교육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부가 감사를 통해 학생들이 주장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학습권을 박탈한, 또 비리사실이 확인된 해당 대학으로 이송한 것이다. 이들은 민원을 제기함으로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박 아무개 군 등 ㄷ대학 학생들도 지난 6월 자신들에게 내려진 징계가 부당하다며 교육부에 철회를 요청하는 진정을 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 사안도 해당대학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같은 달 이 대학 총장과 총장의 처남인 사무처장은 검찰조사에서 교수임용의 대가로 4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비리의혹을 제기하는 민원인에게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하는 무책임한 일도 있었다. 지난 5월 김 아무개씨는 학교법인 ㅅ학원의 부정비리혐의를 조사해 달라며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답변은 “당해 법인에서는 민원인이 제기한 내용과 다르다고 주장한다”며, “제기한 민원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제출하라”라고 요구했다. 불편한게 있으면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부실한 민원처리, 부작용 우려

교육부가 모든 민원 사항을 처리할 수는 없다. 민원내용 가운데는 정당한 행정처분이나 사법적인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이런 저런 민원인들로 교육부 직원들은 일과시간 이후에서야 자신의 업무를 시작해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와 대학자율권을 핑계로 사실확인조차 안하고 해당기관으로 이첩한다면 관리감독기능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윤태범 충남대 교수(행정학)는 “제기된 문제를 무마하고 미루게 되면 부정적 관행을 남길 수 있다”며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음을 우려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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