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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던져진 질문들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
  • 손호경 서울대 곰팡이병원성연구센터 연수연구원
  • 승인 2014.08.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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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손호경 서울대 곰팡이병원성연구센터 연수연구원

“식물병리의 원리가 무엇인가?” 박사 논문 심사 때 마지막으로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답변을 횡설수설하고는 그렇게 박사 논문 심사를 마쳤다. 지금도 나는 정확한 답을 모른다. 아마도 식물병리학자로 살아가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연구자로 보낸 몇 해 동안 나에게 던져진 몇 가지 질문을 생각해 보려 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 빈둥거리는 막내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밥값은 하고 사는지 의문이다”고 장난 섞인 말씀을 하셨다. 과연 ‘밥값’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생물이 좋았고 연구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식물병리학, 균학, 유전학 등의 매력에 빠져 실험했고, 그 결과들을 논문으로 출판했다.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받은 인건비와 연구비의 합보다 더 큰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했을까? 아니면 논문이나 보고서의 서론 수준으로 내 전공분야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자위하며 경력 쌓기에만 급급했을까? 내게 ‘밥값’은 주어진 근무시간과 연구비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 이상의 것이 돼야 할 텐데 그조차 벅차니 더 긴장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박사과정 지도교수께서는 대학교수의 ‘교육자‘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사이비(?) 멘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진정한 멘토가 돼 보시려 부단히 노력하셨다. 나도 이제 감히 그 멘토의 자리를 꿈꾸기 시작했는데 가장 난해한 질문이 나에게 던져진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은 12과목의 ‘교육학’ 수업을 듣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교육학이 교육자의 필요조건은 아닐지라도 그 친구들은 교육학 수업을 듣기 시작한 학부 시절부터 교육자의 꿈을 꾸며 다방면의 준비를 해왔으리라. 긴 박사 과정 동안 전공 외 서적을 멀리했고, 인간관계도 많이 단조로워졌다. 나에게 감히 ‘선생님’이 될 만큼의 인문, 사회학적 소양이 있을지, 학생들과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진짜 멘토가 될 만큼의 인생 경험과 삶의 지혜가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도 학생과 같이 성장해 가야 할 것인데 나의 실수와 실패를 학생의 책임으로 돌리며 자만하며 살지는 않을지 두려운 일이다.

지도교수께서는 가끔씩 강연료도 없는, 초등학생이나 일반인 대상 강연을 가신다. 또 Editor·Reviewer로서의 책무도 정년을 몇 년 앞둔 현재까지 충실히 하시며, 외부의 자문 문의나 중고등학생들의 실험 문의도 성의껏 답해주신다. 옆에서 보기에 가끔씩 그런 모습이 낭비라고 느껴질 때가 많지만 본인이 하실 일이라며 오랜 세월 일관되게 하고 계신다. 이러한 모습을 조금 더 원론적으로 나에게 질문한다면 “보상 없이(혹은 손해 보면서까지) 이 사회를(학계를) 위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겠는가?” 정도가 될 것 같다. 세월호 사건, 천안함 사건, 4대강 오염 문제, 제2롯데월드 안전 문제 등 원칙적으로는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통해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사항인데도 각종 이권과 정치색에 오염된 과학자 혹은 전문가들에 의해 문제의 본질이 훼손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모습을 본다. 어느 때보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가 중요한 이때 내게 던져진 질문(책임)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학회지 리뷰도 가끔씩 거절해 버리는 이기적인 내가 얼마나 잘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점점 더 여유 없이 바빠져 갈 내 일터에서, 불가항력적인 도전과 실패의 순환이 가져올 스트레스 속에서도 붙잡고 있어야 할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너무 앞으로 달리고만 있다고 느껴질 때 한 번씩 뒤돌아보며 나에게 던져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고 내 삶의 모습으로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손호경 서울대 곰팡이병원성연구센터 연수연구원

주요 곡류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식물병원성 곰팡이인 붉은곰팡이의 병 발생과 곰팡이 독소 생성 기작에 대한 분자유전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3년 대통령 Post-Doc. 펠로우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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