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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자녀 교육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자녀 교육
  • 한지연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HK교수
  • 승인 2014.08.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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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 칼럼] 한지연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HK교수

“지식인층이 자식의 교육 문제에 직면했을 때 지극히 감정적이고 이기적 행동을 하는 것을 자식사랑이라 치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교육과 경제가 항상 이슈로 등장하는 사회다. 경제 문제는 학계와 경제계 인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가들이 진단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교육 문제 역시 교육계 인사들이 여러 정책을 내놓았고, 그에 따라 사교육 금지, 일부 허용, 개방 등 특별한 원칙 없는 정책에 따라 현재는 사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 원칙, 정책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에서 접하는 대학생들의 변화된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숙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원, 과외 등 사교육 체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 대학가로 몰려들어왔다. 이에 따라 강의 방식도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됐다. 필자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2009년 무렵에는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인식과 그에 대한 고민, 해결 방안 등을 모색하는 방식의 강의가 이뤄졌다. 학생들 역시 독창적이고 철학적 사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이러한 강의는 학생들에게 버거움으로 다가가기 시작했고, 중요한 부분을 간략하게 요점 정리해 주지 않으면 기말고사를 대처할 능력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성적 항의에 부모가 개입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자뿐 아니라 대학 내 많은 교수들이 겪었겠지만, 성적을 상향 조정해 달라는 부탁 혹은 압박, 협박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적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초중고를 비롯해 대학까지 학교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교단에 서 있는 이와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역시 이들에게 있는 것이지 외부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아이의 성적만 잘 받으면 형평성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식의 항의를 하는 부모의 태도는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가 초중고를 거치면서 이미 부모의 거친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부모들 가운데는 대학교수를 남편으로 둔 아내, 혹은 교수, 공무원, 학교 교사 등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지식인층인 셈이다.

지식인층이 자식의 교육 문제에 직면했을 때 지극히 감정적이고 이기적 행동을 하는 것을 자식사랑이라 치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도 외부에서 이야기할 때는 교육학적 관점에서 객관적이면서도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상위층에 있는 이들의 사회기여도가 낮을 때 이들을 비꼬는 어투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不在를 부르짖는다. 지식인층이라면 자식 교육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배어 있어야 할 것이다. 배움은 학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교육에 있어서도 내 아이에 대한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몰고, 더 나아가 초중고, 대학 강의실에까지 직접 관여하려는 태도를 우리 스스로부터 정화시켜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과 부모의 지나친 관여에 대해 동료들끼리 비판하면서도 내 자식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중적인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소위 교육계에 종사한다고 하면서 이런 일을 자초한다면 좋은 의미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비판적 시각으로 바뀐 것과 같이 교육계에도 그러한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필자도 7살 아이의 교육에 관해 한참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는 주위에서 많은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정규교육과정 이외에는 사교육에 발을 들여놓게 하지 않은 엄마 탓에 또래 아이들에 비해 무언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필자가 아이에게 해주는 것은 매일 밤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뛰어놀고, 함께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배움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불타는 교육열에 나 자신과 아이가 희생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한지연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HK교수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실크로드 불교 신앙사 및 대승불교 성립과 전파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서역불교 교류사』, 『동아시아 법화경 세계의 구축』(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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