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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대지』에 소름돋게 묘사된 그들
펄 벅의『대지』에 소름돋게 묘사된 그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 승인 2014.07.29 12: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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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세상읽기 생물읽기_ 110.메뚜기

▲ 풀무치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다”,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는 다 제때를 만난 듯이 한 창 날뜀을, ‘산신 제물에 메뚜기 뛰어들 듯’, ‘산젯밥에 청메뚜기 뛰어들듯’이란 자기에게는 당치도 않은 일에 참여함을 이른다. 아무튼 다 때가 있어서, 밭농사나 자식농사, 공부농사도 適期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는 법이다.

메뚜기(grasshopper/locust)는 메뚜기목에 속한 종들을 통칭하고, 거기엔 귀뚜라미·꼽등이·땅강아지·베짱이·여치·풀무치·벼메뚜기들이 들며, 전 세계에 2만여 종이, 한국에는 200 종 안팎이 있다한다.

메뚜기 무리는 날개(翅)가 두 쌍으로 앞날개는 곧게 굳어 빳빳하다고 直翅類라고 하고, 뒷날개는 보드라운 膜質로 부채 모양을 하며, 가만히 있을 때는 앞날개 속에 접어 넣는다. 메뚜기의 영어이름 grasshopper는 풀(grass) 위를 폴짝폴짝 뛴다(hopping)는 뜻이며, 바쁘게 이 나라 저 나라를 뛰어다니면서 外務를 볼 때 ‘메뚜기 외교’라 한다.

메뚜기는 곤충의 특징을 고스란히 죄다 갖췄기에 곤충설명의 대변자(모범)로 쓰인다. 몸은 머리·가슴·배 3부분으로 나뉘고, 2쌍의 날개와 3쌍의 다리를 가지며, 머리에는 1쌍의 더듬이(antennae)·1쌍의 큰 겹눈·작은 3개의 홑눈이 있다. 가슴은 앞가슴·가운데가슴·뒷가슴의 3체절로 구성되고, 가운데가슴에 앞날개가, 뒷가슴에 뒷날개가 달렸으며, 일반적으로 앞날개는 뒷날개보다 좁고 두껍다. 또 세 가슴체절엔 각각 한 쌍씩의 다리가 붙으며, 크고 길쭉한 뒷다리는 뜀뛰기에 알맞게 돼 있다.

그런데 벼룩이나 메뚜기의 높고 먼 跳躍이나 나비, 모기의 재빠른 날개 짓은 결코 근육의 힘이 아니라 겉뼈대(外骨格)에 든 레실린(resilin)단백질의 彈性(spring power) 때문이고, 그 특성과 원리를 운동기구나 의학, 전자기구 만드는데 응용하고 있다. 

메뚜기의 한살이(일생)는 알 → 여러 번 탈피하는 애벌레 → 어른벌레로 이어진다. 번데기시기를 거치지 않는 불완전변태(직접발생)를 하므로 애벌레는 날개만 작은 성충모습을 하며, 일반적으로 번데기시기를 거치는 완전변태의 애벌레를 幼蟲(larva)이라 부르지만 불완전변태 하는 애벌레는 若蟲(nymph)이라 부른다. 그리고 암컷은 배 끝에 있는 産卵管(ovipositor)돌기를 땅 속에 밀어 넣어 알을 낳는다.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려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 하나 볼 수 없고, 모두 졸지에 황무지로 돌변했다. 아낙네들은 향을 사다가 지신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고랑을 파며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 떼와 싸웠다.”

위의 글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의 『大地』에 등장하는 섬뜩하고 소름 돋는 일부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실은 여기 나오는 메뚜기는 ‘풀무치(migratory locust)’다. 이렇게 풀무치의 떼 지움(무리·쏠림·몰림) 같은 집단행동을 ‘swarming behavior’라 하며, 이는 별안간 뇌의 시상하부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증가한 탓으로, 체색이 바뀌고, 많이 먹게 되며, 새끼를 많이 깔겨 한껏 몰려다니면서 다짜고짜로 풀이란 풀을 거덜을 낸다고 한다.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다. 필자가 대학 1학년 때 일반영어를 가르쳐 주셨던, 펄 벅 작품을 여럿 번역하신 장왕록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펄 벅 여사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지. 역시 고인이 됐지만,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그분의 따님이시다.

풀무치(Locusta migratoria)를 蝗蟲(황충)이라고 하는데, 역시 메뚜깃과의 곤충으로 메뚜기보다 날개가 발달하여 높이 올라가 멀리까지 난다. 몸길이는 수컷이 약 45mm, 암컷 60∼65mm로 다른 곤충들처럼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황충의 체색은 녹색이거나 갈색이고, 벼과식물을 주로 먹으며, 온도·습도·햇빛·먹이 등의 조건이 적합하면 많은 개체가 발생해 떼 지어 휘몰아치면서 스스럼없이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황충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고 농작물이 크게 해를 입어 가을 추수 때가 돼도 거둘 것이 없어 봄같이 궁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벼메뚜기이야기를 뺄 수 없지. 벼메뚜기(Oxya chinensis sinuosa)는 몸길이 약 21~35㎜ 이고, 수컷은 염색체가 23개, 암컷은 24개이며, 메뚜기를 꽉 쥐고 있으면 입에서 거무죽죽한 냄새나는 진을 토하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물질이다.

그토록 ‘똥구멍 찢어지게’ 배고팠던 시절에 벼메뚜기는 개구리·다슬기·미꾸라지와 함께 푸진 단백질거리로 으뜸이었다. 메뚜기잡기에 이력이 나서 오목하게 오그려 쥔 손바닥을 휙 내둘러 녀석들을 잡았으니 백발백중이요, 암수가 짝짓기 중인 것(곤충들은 수컷이 작고, 등치 큰 암놈 등에 업힌 듯 달라붙음)은 一石二鳥다.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줄기로 목(머리와 가슴팍 사이)을 줄줄이 꿰거나 병에 잡아넣었으며, 소금 뿌린 기름에 튀기고 볶아 먹었으니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것이 고소했으니 도시락반찬으로도 썼다.

뿐만 아니라 암컷 방아깨비(Acrida cinerea)도 우리의 먹잇감이었으니, 크고 긴 뒷다리 둘을 포개 잡으면 몸통을 끄덕끄덕 거리니 그 꼴이 꼭 디딜방아 찧는 모습이라 ‘방아깨비’란 이름을 얻었으리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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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치 2014-10-09 22:23:22
사진속의 메뚜기는 풀무치가 아니라 '콩중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