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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북미대학의 시장개방Commercialization of Universities
[기획특집]북미대학의 시장개방Commercialization of Universities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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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캐나다 대학에서 빚어진 이상한 풍경들
기업들, 연구·강의 방향도 간섭…‘고액입찰자’기다리는 대학

미국 대학 총장들 사이에는 “우리는 기금을 지원 받는
입장에서 지원자와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해 왔고,
이제는 지원자 자신이 되려 하고 있다”는 농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시장에 대학의 문을 개방한
미국에서는 기업이 대학에 지원하는 기금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커지게 됐고, 급기야는
‘기업이 대학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산업진흥법 개정안 입법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나는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면서 앞으로 받게 될 전공수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교수들은 사실에 입각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바티스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길 원하는 것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 학교와 노바티스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교수들은 노바티스와의 동맹관계를 맺기 위해 열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수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따질 때마다 나는 무시당하거나 꾸중듣기 일쑤였고, 때로는 학점에 불이익을 받기까지 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학생으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받고 있는 것이 과연 대학교육인가 기업연수인가-셰린 라리자니, 버클리대 자연자원대학 4학년생”(데일리 캘리포니안 2000년 5월 23일자)

기업은 ‘따고’ 대학은 ‘잃었다’
2천5백만 달러를 지원받는 대가로 노바티스사에 특허우선권을 양도했으나 결국 교육과정, 교수들의 연구방향 등 전반적 대학운영권을 빼앗긴 버클리대 자연과학대학의 경우는 미국에서 대학-기업간의 유착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버클리대 뿐 아니라 대학교육을 시장에 개방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의 많은 대학들이 기업의 이러한 ‘예기치 못했던’ 태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대학들은 △대학내 산학협력단 설치 가능 △대학 내에 기업 소유의 연구소 운영 가능 △대학이 기업을 직접 운영 가능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산업교육진흥법개정법안(2002. 4. 29)’의 입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학을 시장에 개방하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산학연계 현상은 지금보다 훨씬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보다 앞서 ‘시장개방’의 길을 걸어온 다른 나라의 대학들은 이를 되돌리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부가 교육에 투자하는 기금이 줄어들게 되면서 대학들은 다른 수입원을 찾아 나서게 됐고, 기업은 대학의 이런 요구에 기꺼이 부응해 왔다. 정부는 이런 기업의 ‘시혜’에 세금감면 혜택을 부여해 대학에 대한 기업의 투자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투자는 결코 ‘시혜’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투자를 미끼로 대학의 재원을 이용해 기업 연구를 진행했고, 기업 간부를 교수직과 행정직에 앉혀 대학운영에 간섭했고, 연구·수업 등 전반의 방향을 조정했다. 그러나 대학과 교수들은 이에 침묵했다. ‘저항’은 곧 ‘자금의 고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돼 왔다. 제니스 뉴슨 요크대 교수(사회학)는 ‘유니버시티 미인즈 비지니스’(1988)라는 저서에서 “1960년대에 대학들은 기업의 오염된 손으로부터 자율권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들은 기업과의 동맹을 위해 투쟁한다”라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 동맹을 후원하고 있는 지금,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사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와 연맹을 맺는 대학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돈 카메론 길포드 공대 학장은 길포드 카운티 고등학교와 연맹을 맺으면 시바 건설에서 13만6천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이 고등학교와의 상호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시바사는 방학 기간 동안 길포드 공대 학과장들을 회사로 초대해 접대하면서 앞으로의 커리큘럼에 대해 ‘협상’했다. 이제 이 대학은 시바사에서 요구하는 학위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고 있다. 돈 카메론 학장은 “우리 대학은 이제 절차만 까다롭고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 정부기금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촘스키, “시장 손길은 ‘자유’에 대한 도전”
그러나 문제는 더 근본적인 곳에서 발생했다. 노엄 촘스키 MIT 교수가 “무책임한 시장의 손길이 학문과 교육을 지배하게 된 것은 대학의 본질인 ‘자유’에 대한 가장 거대한 위협이다”라며 작금의 현실을 두고 ‘지적, 도덕적 치욕’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듯, 교수들이 ‘학문’과 ‘대학교육’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미국 교수 협의회(AAUP: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는 “연구수행과정에서의 자유, 그리고 그 결과를 공개할 자유는 학문의 진보에 필수적 요건이다. 이에 대해 기업 또는 정부가 간섭하려 들어서도 안 되고, 사전 제약이 있어서도 안 되며, 위반에 따른 제재가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선언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같은 해 캐나다 교수협의회(CAUT: Canadian Association of University Teachers)에서는 ‘유니버시티 포 세일; 캐나다 대학 교육은 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1999)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인 네일 튜디버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교육은 사기업의 일부분이 돼 버릴 것이며, 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초 학문은 예산부족으로 고통을 겪다 고사하게 될 것이다”라면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투사는 교수들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확실히 교수들은 연봉, 신분보장 등의 문제로 기업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 불안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독립적 학문주체가 될 것인가, 가장 높은 가격을 불러주는 입찰자를 기다리는 존재로 전락할 것인가’의 기로를 결정하는 ‘대학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또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교수협의회는 지금 “더, 더 충분한 검토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GATS(서비스에 관한 일반 협정)에 대해 지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93년에 체결한 북미자유협정이 대학교육에 미친 폐단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총장들, 기업요구 사항에 압박감느껴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얻기 위해 애써온 이안 뉴볼드 캐나다 대학 총장 협의회 의장(마운트 엘리슨대 총장)은 “시장은 우리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는 기업의 요구사항들로 인해 심한 압박감을 느껴 왔다. 나는 이제 동료 총장들에게 기업의 야욕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크로니클 지 1999.11.12).
뉴볼드 총장은 “가장 기본적인 연구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상의 노력이다. 기업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업은 ‘모두의’ 이익까지 배려해 주지는 않는다. 이타주의는 일시적인 ‘거래’이며, 그 속에는 여지없이 대가를 바라는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이를 보여주는 이들 대학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기업이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문
1. 교수: 종신재직권, 연봉, 학문의 자유, 연구 부담, 지적 재산권, 고용·해고
2. 커리큘럼: 어떤 과목들을 어떤 교수를 통해 가르칠 것인가, 수업에 어떤 교육장비들을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3. 대학재원 이용: 학교건물·도서관·실험실·각종 기자재의 이용
4. 대학운영: 정량적 목표 설정, 마케팅·기금 조성 등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식 운영
5. 예산 할당: 어떤 프로그램이 기금을 지원받을 것인가, 그 액수와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6. 인재 확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의 우수한 학생 지원(장학금 수여, 등록금 대출 등)
7. 서비스: 기자재 구매 경로, 하도급업체 선정 권한
(출처: Canada Federation of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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