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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위의 저 소나무
남산 위의 저 소나무
  • 교수신문
  • 승인 2014.07.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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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이해하기 곤란한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는 비가역적 반응과 비슷한 혼성의 사례들이다. 구성 요소들이 구별되고 뒤섞였다는 것도 확실하며, 결과적인 양상도 식별 가능하지만 과정은 이미 증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시작도 알고 끝도 알지만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애국가」의 한 구절이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할 때도 같은 것이 발견된다.


여기에 포함된 철갑의 이미지는 ‘바람과 서리’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불변하는 두터운 보호막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또 다른 철갑의 이미지가 있다. ‘얼굴에 철갑을 두른 것처럼’이라고 할 때, 혹은 유사한 의미에서 ‘철면피’라고 할 때 이런 사례를 만나게 된다. 이 두 경우 모두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어원에서부터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王仁裕가 오대 말기의 민간에 전해지는 일화를 모은 『開元天寶遺事』는 진사 楊光遠이라는 인물이 당대의 권문세족들에게 아첨하다가, 심지어는 자신을 매질하고 욕보이는 사람에게까지도 비굴하게 굴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양광원의 부끄러운 얼굴은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다(楊光遠慙顔 厚如十重鐵甲)’고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송사』는 趙???이 殿中侍御史가 됐을 때 권문세도가들의 비행을 거리낌 없이 탄핵했기 때문에 ‘鐵面御使’라고 불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전자는 쇠로 엮은 갑옷의 두터움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몰염치함의 두께를 은유하는데 반해, 후자는 쇠로된 얼굴의 강직하고 단단함을 이용해서 꼿꼿한 어사의 거리낌 없는 직무 수행의 면모를 묘사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가지 표현은 ‘철갑피’ 혹은 ‘철면피’라는 일반화된 표현 속에서, 모두 낯 뜨거운 몰염치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사람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기원의 의미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의미론적 수렴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언어학적으로나 문화학적으로 흥미로운 탐구 주제다. 느슨하게 보자면 소리와 개념체계의 유사성이 서로 다른 어원적 의미의 유사성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추정하는 정도다. 철갑과 철면은 둘 다 ‘철’자와 철의 개념 체계를 공유한다.

처음에는 쇠로 만든 갑옷의 두터움과 쇠와 같이 얼굴의 단단함이라는 부분적인 은유적 사상 요소들 사이에 구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묘한 차이는 문화적 관행 때문인지, 아니면 언어 현상의 어떤 특성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체로서의 철이라는 개념 체계 일반으로 수렴된다. 그 와중에 철면의 이미지가 철갑을 두른 얼굴 가죽의 이미지로 수렴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철면어사의 기상은 얼굴에 철갑을 두른 염치없는 인간의 비굴한 이미지에 가로 막혀 자신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잃어버린 철면의 이미지가 「애국가」속에 철갑이란 낱말로 변형돼 나타난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이중의 역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원적으로 보자면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면을 가진 듯’이라고 노래했어야 할 구절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표현됐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전이 나타난다. 또한 철갑이 몰염치의 비유가 아니라 불변하는 기상의 비유라는 점에서 두 번째 의미론적 역전이 발견된다.


물론 다른 이해 가능성도 있다. 즉 철갑의 개념 체계가 애초부터 외부의 영향에 동요되지 않는 두꺼운 보호막으로서의 은유적 의미를 갖기 쉬웠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훨씬 단순하고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철갑의 이미지 자체가 은유적으로 어떤 결정적 의미 하나를 특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설명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단상을 통해 어떤 것 하나가 남는다. 철갑이 이런 저런 은유의 근원 영역으로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고, 그래서 아주 상반되는 것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면 어떤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두꺼운 몰염치의 철갑을 두른 자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철면이라고 주장할 때, 이 은유의 의미론적 혼란은 극치에 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양상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묻는다면, 글쎄? 그 대답은 아마도 당신이 아홉시 뉴스의 화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향준 전남대 BK21박사후연구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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