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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사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
관심병사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
  • 교수신문
  • 승인 2014.07.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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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소영현 문학평론가·연세대 HK연구교수
한국은 안전한가. 한국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해도 좋다. 국경 아닌 국경을 지키는 군대 내에서 부대원 간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도심 광장 곳곳에서 애국가 합창과 함께 월드컵 응원전이 열릴 수 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적 상황으로 보든 국가별 치안 순위로 보든 한국은 안전하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말해도 좋은가. 한국에서는 국가가 국민 전체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치안에 관한 객관적 지표가 보증해주고 있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이 땅을 사는 이들에게 낯설지 않다. 국가적 재난 수준의 사건사고가 한국사회에서는 상시적으로 발생한다. 천재지변과 같은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빈번하다. 당연하게도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사고가 일상 전반에서 불안 기류를 형성한다. 최근 경우만 두고 보더라도, 지하철이나 열차 관련 사고, 버스터미널 화재나 요양병원 화재 사건, 무고한 희생을 낳은 세월호 참사나 GOP 총기난사 사건 등은 평온한 일상을 산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포착했다 해도 감각의 속성상 공통의 것으로 인식되기도 쉽지 않다. 안전하다는 감각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안전하다는 감각이 천재지변까지 포함해서 국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기만 한다면 어떤 사건사고든 사전에 예방하거나 적어도 사후적으로 적절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과 그 총합인 사회적 합의가 출처임을 짚어둘 수는 있을 것이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치안과 안전 시스템을 둘러싼 믿음 혹은 사회적 합의가 깨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하지 않다는 우리의 감각은 이전과는 다른 결을 갖게 됐다. 안전과 구조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따른 이들이 삶을 얻지 못했고, 개별적 판단에 따라 탈출한 이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구조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국가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통치의 목소리는 명령에 따른 이들을 죽게 내버려 뒀다. 치안과 안전 시스템은 그들을 위해서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국민을 버리는 국가의 맨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냄으로써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재난 가운데에서도 한국사회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역사적 비극이 됐다.


한국사회 전반에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이 유포됐다는 사실이 곧 국가의 치안과 안전 시스템이 느슨해졌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위협한다고 가정되는 존재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치안과 안전 시스템은 보다 정교해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세월호 참사라는 문턱을 넘어서면서 한국사회는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이 국가의 치안과 안전 시스템 작동 여부와 무관해진 상황에 전면적으로 노출됐다. 사회 전체를 떠도는 기류라 해도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개별적으로만 경험되기 시작했다.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을 둘러싸고 사건의 실체와 범행 동기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는 중에 부각된 ‘관심병사’라는 말은 이러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가시화한다. 군대 내에서의 관심병사 제도 운영의 취지와 한계를 따지는 일은 따로 이뤄져야 하겠지만, 성소수자,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출신자, 신체적·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 등이 그 이유만으로 특별 관리 대상이 되는 메커니즘에 수긍할만한 논리가 없을 것은 분명하다. 기억해둘 것은 사회적 타자를 ‘특별관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며, 차라리 현대화된 고도의 통치 전략의 압축판이라는 점이다.

치안과 안전 시스템이 이제 등급화된 국민 사이의 위계에 따라 달리 작동한다는 의미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모두의 것이지만, 안전을 보장받는 이는 모두가 아니다. ‘관리’ 대상으로 판정되면 사회의 일원 가운데 누구든 치안과 안전 시스템 바깥에 놓일 수 있는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등급 낮은 이들을 ‘버리는’ 방식이 이 시스템의 핵심 운용 원리다. 특별 관리 대상에 등급을 매기는 방식은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힘을 얻어가는 통치 전략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뚜렷해진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이러한 통치 원리가 시스템으로 안착한 전환국면의 가시적 결과물이다.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의 총량은 줄어들기보다 증가되는 추세지만, 치안과 안전 시스템의 주된 관심사는 안전 일반이 아니라 누구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 안전구역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되고 있다. 끝내는 공동체를 흔적 없이 파괴하게 될 ‘안전 없는 안전사회’로 우리가 진입하고 있음을 명징하게 인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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