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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고 딱딱한 역사가 말랑해졌다. 어떻게?
견고하고 딱딱한 역사가 말랑해졌다. 어떻게?
  • 교수신문
  • 승인 2014.06.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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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전경목 지음|휴머니스트|2013|384쪽

 

숨에 읽었다. 한번 손에 쥐니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소설도 아닌 것이 흥미진진하고 심지어 박진감마저 있다. 전경목 교수가 땀 흘려 지어놓은 덕분에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는 맛있는 읽을거리가 됐다. 내가 알고 있는 저자는 불철주야 고문서를 수집하고 정리한 후 읽고 글쓰기에 전념한다. 연구와 글쓰기를 여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힘든 자세이다. 저자 스스로 고백했듯, 고문서는 오랫동안 방치돼 종이에 배어든 매캐한 냄새와 켜켜이 쌓인 먼지로 조금만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 거리고 재채기가 나고 콧물이 연신 흐른다. 그럼에도 전경목 교수는 고문서와 씨름하고 끙끙거리기를 쉬지 않는다. 독자를 즐겁게 하려면 저자가 그만큼 괴로워야 한다. 전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그리 괴로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즐긴다. 그것도 아주 좋아한다. 언제나 또 누구에게나 만나면 새로운 고문서 이야기를 나누고, 역사를 바라보는 참신한 방법론을 논할 준비가 돼있다. 이만한 책을 집필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
저자는 고문서를 그냥 박물관의 유물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영화 제목처럼 고문서를 살아나도록 했다. 여간한 방법으로는 케케묵은 먼지로 뒤덮인 고문서에 생명을 불어넣기 어렵다. 방법론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그만큼 숙성됐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한국사연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독자들은 서구학계의 굵직한 역사연구 성과와 이를 가능케 한 방법론을 하나 둘 접하면서 그 세련됨에 놀라고 묵직함에 감동받곤 했다. 서구 역사학계의 방대하고도 속 깊은 연구 성과는 하루 이틀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법론은 모색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를 실제 역사 연구에서 적용해 일정한 성과를 이뤄내기는 더 어렵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문서건 연대기 자료건 사료와 씨름하다가 그 속에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기 십상이다. 이론을 가져다가 요리하기는커녕 재료를 다듬다가 하루가 저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감했다. 조선시대의 비밀상자를 열기 위해 서구 학계의 미시사 연구방법론을 당차게 동원했다. 두껍게 읽기를 응용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른 시각의 제공을 위해 뒤집어 보기를 했다. 사회상을 통찰하기 위해 주요한 역사 ‘용어’에 주목하고, 기왕의 역사상을 해체하기 위해 깨뜨리기 방법을 동원했다. 모든 학문의 시작은 懷疑라는 점에 착안해 역사의 상식들을 의심해 보고, 양면 또는 다면보기를 통해 미시사가 지엽적인 주제에 매몰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저자는 독자들을 수백 년 전 조선의 생생한 모습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

‘진짜’ 조선의 모습
35냥을 받고 아내를 보내는 최덕현의 수기는 한 장의 고문서에 머물지 않고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가능했으며 신분이나 시기에 따라 재혼 풍습이 어떠했는지 알려주었다. 나아가 유교이념이 뿌리내린 조선시대에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을 리 없다는 역사적 통념을 뒤집었다. 자식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절절함이 느껴지는 김광팔의 탄원서는 엄격한 가부장의 모습이 아닌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평범한 조선의 아버지를 상상하도록 했다.


공명첩에 얽힌 역사는 더욱 흥미롭다. 조선 후기에 부유한 평민들이 양반이 되고자 공명첩을 구입했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저자는 수많은 고문서를 통해 오히려 평민들은 공명첩을 사지 않으려 했으나 국가가 공명첩을 강매했음을 밝혀냈다. 평민들이 공명첩을 사지 않는 이유는 마을의 이웃사촌들이 가짜 양반을 진짜로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책 곳곳에 펼쳐놓은 조선의 진짜 모습들은 단기간에 고문서 몇 장을 연구한 결과가 아니다. 저자가 수십년간 애써 모은 고문서를 읽고 읽으면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연대기 자료 그리고 邑誌와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사료들과 수십 번 심지어 수백 번을 견주며 고민한 숙성의 결과다. 저자는 고문서 전문가이지만 단지 고문서에만 기대지 않고 여러 가지 사료들을 동원해 조선후기의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남은 숙제
그럼에도 남은 숙제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또 숙제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성실하게 연구하고 기대가 많기에 희망을 내려놓을 수 없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역사상은 주체적인 근대민족국가 수립의 前 과정으로서의 그것이었다. 조선후기에 자본주의 맹아를 탐색했던 사회경제사 연구 성과 그리고 실학 등에서 근대전환의 정신적 토대를 찾았던 사상사 분야의 업적이 쌓이면서 조선후기의 역사상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 기왕의 역사상에 대한 역사학계 내부 혹은 외부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이제 적어도 조선후기의 역사상은 단일하지 않게 됐다. 도리어 조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조차 든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미시적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미시적 연구 성과의 축적은 조선의 역사 구조와 특질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는 미흡하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든가,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지 뭐? 조선시대도 역시 그랬구만’과 같은 탄식 아닌 탄식, 상식 아닌 상식을 확인하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시사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연구 대상에 대한 미시적 함닉이 아닌 이상 거시적 역사 구조와의 조우가 필수적이다. 역사는 변하지 않고 지속하려는 힘들과 변화하려는 동력과 의지의 투쟁이다. 조선의 역사 풍경과 조선 사람들의 멘탈리티, 그리고 그 속에 구조화돼 있는 문화유전자와 사상의 바탕들을 읽어내야 한다. 저자 또한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거시적 맥락에서 파악할 때 비로소 미시사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앞으로 조선후기 요호부민이나 노비 등과 관련한 고문서 연구 결과를 계속 집필할 계획이라고 밝힌 대로, 점점 더 세밀하게 그러면서 점점 더 거대한 구조에 다가서는 후속작들을 기대해 본다.

 


김 호 경인교대·사회교육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지은 책에는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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