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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파괴
개인의 파괴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4.06.2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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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릴레이 에세이]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1998년 10월 20일 어느 한국계 미국인이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2층에서 화재가 나자 모두 옥상으로 대피하라는 호텔 측의 지시를 거부하고 혼자 외벽을 타고 내려오려다 떨어져 숨진 적이 있었다. 그보다 20여년 전 미국으로 떠났을 때의 한국을 떠올리며 그는 한국의 ‘전문가’들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판단은 틀렸고 나에게는 커다란 비극이었다. 나의 이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그를 탓할 수 없게 됐다. 진도 앞바다에서 ‘전문가’들을 믿고 따르다가 300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태안 안면도이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15분경부터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이 파손시킨 유조선에서 기름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민들은 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저 구멍을 막든지 바지선이라도 끌고 와서 저 쏟아지는 기름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주장들을 했다. 하지만 모두 ‘매뉴얼’을 신봉하는 해경의 ‘전문가들’에 의해 설득력 있는 해명 없이 묵살됐다. 물론 2시간이 지나서야 알파잠수의 이종인 대표에게 연락을 하고 그가 5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소형어선으로만 접근을 허락하고 선주도 공사허락을 늦게 내줘서 작업은 지연됐고 결국 48시간이 지난 9일 오전 7시 50분에야 구멍을 봉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약 1만 500여톤(약 1만2천 킬로리터)의 원유가 유출됐다. 근처에 있던 모래채취선들의 용적도 보통 1~3천톤 정도 되니 몇 대만 불러왔다면 거의 모두 받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게 소설이 아니다. 7년이 지난 2014년 2월 15일 부산에서의 화물선 기름유출사고 때, 오후 2시경 부산에서 화물선이 다른 배와의 충돌로 20cm x 30cm 크기의 구멍으로 기름이 새기 시작했는데, 두 명의 해경이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사투를 벌여 나무토막으로 그 구멍을 사고발생 4시간 만에 막았고 기름유출은 최소화됐다. 물론 태안 때는 구멍이 3개였고 더 큰 것도 있었지만, 큰 구멍들은 어차피 각각 4.5시간 8.5시간 만에 유출을 멈췄다. 30cm x 3cm 크기의 작은 구멍 하나만 이틀 동안(37시간) 유출을 계속했었던 것이다.

2014년 부산에서 했던 상식적인 생각을 왜 7년 전에는 하지 못했을까?

올해에는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오려는 학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올해 스승의 날은 기념을 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서 어른들 말을 듣다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학생들에게는 어른의 상징인 스승들이 무슨 감사를 받을게 있나.

안산 모 고교 교사의 말이다. “1차원인은 아니지만 잘못 가르친 학교책임도 크다. 정상적인 판단이면 뛰쳐나왔어야 했다. 아이들은 위기상황 파악에 한계가 있었다.” <경향신문>의 해석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교육 대신 암기위주 주입식교육에 매달렸다는 뜻”이다.

세월호 사태를 다섯 자로 정리하자면 ‘개인의 파괴’ 또는 ‘상식의 마비’로 이름 짓고 싶다. 사실 개인의 독립적인 사고를 위축시켜왔던 교육과 사회 환경은 회사의 지시가 없다고 탈출방송을 하지 않은 선장, 선장의 지시가 없다고 승객을 돕지 않은 선원, 상부의 지시가 없다고 선내방송이나 선내구조를 하지 않은 해경 등 인과관계 마디마디에서 나타났다. 심지어는 집단의 ‘검증’으로 포장되지 않은 개인의 제보나 고발은 항상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우리의 형사사법제도는 사고의 1차원인인 비리를 키워왔고 역시 고발정신이 요구하는 ‘개인’을 죽여 왔다.

우리집 첫째 딸 경채는 지금 만 여섯 살이다. 경채의 두 가지 모습이다. 첫째, “아빠의 꿈은 뭐야” 묻길래, 당황해서 엉겁결에 “세상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았음 좋겠어”라고 조금 강박적인 얘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왜 꿈이 그건데 선생님 하고 있어?”라고 묻는다. 더 당황해서 더 깊게 강박에 빠져들어 “응, ‘너희만 편하게 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신경 좀 쓰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중에 갑자기 방에 뛰어 들어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까지 찾아와서 물어보니 “아빠가 나보구 다른 사람들 굶어죽는 것 신경 안 쓰고 편히 살았대” 하며 더 크게 운다. 간신히 문장구조를 설명해서 울음이 그치는데 3분은 걸렸다. 

경채의 두 번재 모습이다. 어느날 밤늦게 집에 들어 왔다. 경채: “뭐 하다 늦게 왔어?” 나: (역시 당황해서) “세상을 어떻게 굶어죽는 사람들 없게 만들지 얘기하다 왔어.” 경채: “그걸 뭐하러 얘기해. 정답을 알잖아. 부자들이 나눠주면 되지.” 나: (긴 침묵) “응, 그런데 부자들이 잘 나눠주려고 안 해.” 경채: “그럼 공짜인 걸 가지면 되잖아.” 나: “공짜가 어디 있어.” 경채: “지나가다 보니까 ‘공짜 휴대폰’이 많던데… ‘무료’라고 써 있던데…” 이 대화의 끝은 “물이 필요한 애들을 위해서는 정수기가 있다”는 경채의 말로 끝맺었다.

나는 첫째 경채보다 둘째 경채가 좋다. ‘희생’이라는 외부적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모습보다 자신만의 상식적인 해법을 상상해가는 모습이 더 편안하다. 지식이 부족할 뿐 강박에 빠진 아빠보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훨씬 낫다고 본다.  

6개월 전에는 낮에 “시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설명해줬더니 저녁 때 다음 한 줄을 남겼다.

“제목: 우정―친구 날 지키네 나도 이제 컸(으)니까 같이 할 수 있네.” 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논리적인가. 학교에서도 외부의 무엇을 따르기보다 자신 속의 무엇을 찾아가는 모습을 가르치고 싶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표현 통신의 자유』, 『진실유포죄』의 저자이며 학생들과 일을 많이 하면서 ‘공익소송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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