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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대하는 제가 달라졌어요!
제자들을 대하는 제가 달라졌어요!
  • 교수신문
  • 승인 2014.06.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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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벌써 일 년이 눈 깜작할 사이에 휙 지나갔네!” 탄식과 더불어 동시에 긴장감마저 느껴졌던 순간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연구년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지도 벌써 한 학기가 다 지나 종강을 맞게 됐습니다. 1년 동안의 꿈같은 연구년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신선한 설렘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현장으로의 복귀는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일종의 가벼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주변의 동료교수들도 그들의 누렸던 자유로운 연구년을 마치는 시점에서는 아마도 저와 같은 탄식을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연구년이란 표현 그대로 연구에 정진하는 해를 의미하는 것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실상은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지난 일 년 연구 많이 하셨나요?”라는 반가운 인사에 돌아오는 답은 대개 “허허, 이제부터 연구해야죠.”라며 머쓱하게 웃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연구년 동안 연구 많이 했다고 자신 있게 답했던 교수들은 제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아, 물론 나름대로 연구년을 알차고 충실하게 학문 정진에 투자한 교수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로 복귀한 이후 정말 한 학기라는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갔는지 못 느낄 정도로 저는 학교생활에 무척 분주하게 적응하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았고 긴밀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애착감도 예전보다 더욱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모두 다 제 친 자식들 같고 친 조카들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특히 제가 지도하는 동아리 활동에 이번 학기만큼 열정을 쏟아 부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으로만 주로 이용했던 카카오톡(KakaoTalk)은 제자들의 메시지들로 넘쳐나고 동아리 카톡 방에서의 대화는 그야말로 격의 없는 소통이 이뤄지고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함께 단체로 영화 관람도 했고 동아리 학생들과는 영화제에도 참석해 즐거운 현장체험 학습의 나들이도 만끽했습니다. 미술관도 방문해 그림들과 건축물들을 관찰하면서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도 가졌습니다. 또한 방과 후에는 학생들과 중국집으로 몰려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며 식도락의 여유를 부리기도 했지요.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 남학생들과는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인생에 대해 논하는, 제법 진지한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녀석들의 머리가 제법 커졌고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도 크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기도 했지요. 제자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아진 제 자신에 놀라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제법 근엄하고 깐깐하기로 알려진 제가 어떤 연유로 이렇게 바뀐 것일까요.


그 이유가 혹시 저의 전공과 연구 분야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요? 참고로 제가 담당하는 전공과목은 한국언론사, 기자 윤리, 미디어 비평 등 주로 저널리즘의 근본과 원칙을 중요하게 다루는 수업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저널리즘의 원칙이란 것을 강조하게 되고 언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나 역사적 일탈을 날카롭게 비평하기도 하지요. 학생들에게 비쳐진 제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언론과 사회에 관한 도덕철학이나 윤리학적 자세만을 강조하는 근엄한 교수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딱딱한 제 모습이 강의실에서는 물론 사적영역에서도 학생들로 하여금 저를 친근하게 대하기 어려운 그러한 존재로 느끼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은 제게 연구를 위한 재충전의 기회가 된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누구를 위한 선생이며 진정 누구와 긴밀히 소통해야하는 존재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를 가졌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도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한 젊은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잠재하는 많은 사회적 스승의 역할에 대해 고뇌했던 것도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가 지금 이 순간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연구년 동안 제자들과 직접 마주대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간만큼 제자들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원론적인 말이지만, 진리탐구의 목적과 가르침의 대상이 학생들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지요. 사회가 혼탁할수록 근본과 원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럴수록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들을 합니다. 바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그 중심에 있고 그래서 그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싶습니다.


때로는 학생들의 철없는 행동에 식상하기도 했고 생각이 부족한 그들의 발언에 속이 상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과 거리를 두기도 했고 불통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의 모습이 그들의 미숙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지면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자들과의 진심어린 소통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 다음호 필자는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최경진 대구가톨릭대·언론광고학부
필자는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경북언론학회장, 방송위원회 대통령선거방송심의위원, 한국언론학회 언론법제윤리 연구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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