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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그곳에서 인도유럽어족의 문화가 태어났다
도전적인 그곳에서 인도유럽어족의 문화가 태어났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6.17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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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_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 프리스토퍼 벡위드 지음|이강한·류형식 옮김|소와당|811쪽|42,000원

고고학을 통해 알려진 위대한 고대 문명들은 비옥한 유라시아의 주변 농업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원은 그곳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문명의 변두리, 도전적인 중앙유라시아가 우리의 기원이다.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 세계 석학강좌의 주인공으로 한국을 찾았던 크리스토퍼 벡위드 인디애나대 중앙유라시아학과 종신교수는 세계 최고 중앙아시아 연구기관인 CEUS(Department of Central Eurasian Studies)의 2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CEUS 수십 년 연구 성과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는 2009년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처음 출간됐다.


벡위드는 르네 그루세 이후 가장 포괄적으로 중앙유라시아 연구를 종합한 석학으로 평가되고 있는 학자다. 특히 한국사 및 일본사를 중앙유라시아 연구에 직접적으로 포함시켜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한 학자로도 주목받고 있다. 『고구려어, 일본어의 대륙적 친족어』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번역되면서(2006) 한국에 소개됐다. 2009년 출간된 문제작이 5년만에 한국어로 소개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학계와 연구자들의 내공이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책의 의미에 대해서는 저자 벡위드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책이 중앙유라시아 전체 역사를 포괄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범위가 광대해 많은 주제들을 거론하고 있지만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제들을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은 중앙유라시아학이 그만큼 충분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지 못한 사정과도 닿아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중앙유라시아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최근 괄목할 발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비교하자면 세계의 다른 지역, 특히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는 어떤 것이든 너무 지나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반면, 중앙유라시아 연구에서 대부분의 주요 주제들은 소홀히 다뤄졌고, 어떤 것들은 거의 방치돼 있다.” 예컨대 玄裝 의 『大唐西域記』 같은 경우도 아직도 학문적 검토와 현대의 주석이 완료된 번역본 출판이 없다고 그는 아쉬워한다.


어쩌면 이런 아쉬움에서 이 책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정 속에서 벡위드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됐다는 것도 시사적이다. “중앙유라시아 역사와 관련된 주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접근에 대해서 여전히 연구가 필요하다. 각자가 비어있는 많은 영역들을 채우기 위래 나름대로 노력해주길 기대해 본다”는 저자의 말대로, 학문의 존립 이유를 역설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부제에 고구려가 언급됐으니, 이 부분 정도는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역사언어학에 의하면, 한자로 朱蒙 혹은 鄒牟로 표기되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 이름은 투멘(TumeN)이다. 흉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흉노 제국의 왕도 투멘(Tumen)이고, 튀르크 제국의 건국신화에는 투민(Tumin)이 주인공이다(두만강의 강 이름도 바로 이 이름을 딴 것이다). 하늘의 신이 강의 신의 딸을 임신시키고,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왕궁에 들어가고, 말을 기르고, 활을 잘 쏘고, 위기를 맞아 탈출해 새로운 왕국을 일으키는 줄거리 또한 유라시아 스텝 전역에 펼쳐진 건국신화의 전형이다. 저자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신화가 스텝 루트를 따라 세계 곳곳에 존재할까. 그는 “스텝 루트를 따라 문화가 전파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스텝 루트를 따라 문화가 전파될 때, 건국신화만이 아니라 戰車와 戰士도 함께 전해졌다. 저자는 이 스텝을 ‘실크로드 시스템’으로 명명한다.


그렇지만 벡위드의 고구려에 관한 언급은 어쩌면 국내 역사학자들과 논쟁적인 조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고구려의 기원은 요서 지역이라고 보고 있으며, 평양의 원래 이름은 ‘피아르나’였고, 연개소문은 ‘우르 갑 소문’이라고 주장한다. “기원전 2세기 초반 어느 때, 원시 일본-고구려어족이 남쪽으로부터 遼西(현재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지역으로 이주했다. 남쪽에서 그들은 쌀 농사를 지었고 수렵을 했던 민족이다. 원시 일본-고구려어족 가운데 원시 일본어족 갈래인 왜족(Wa)은 기원후 2세기에도 여전히 요서 지역에 살았다. 그들은 수렵도 했고, 분명 농사도 지었지만, 가축을 기르는 초원의 전사들은 아니었다. 이와 달리 그들과 친척 관계인 고구려어족은 스텝 지역 전쟁에 익숙한 기마전사가 됐다. 역사학적 자료에는 기원후 12년에 그들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미 그렇게 묘사돼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은 요서지역이라고 했다.”


벡위드가 근거한 사료, 그리고 그가 취한 언어적 접근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4세기에 고구려는 마침내 낙랑을 정복하고 ☆피아르나(☆Piarna)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평평한 땅’이란 뜻으로,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平壤이라고 한다. 그들은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고, 다른 부여-고구려계 종족들과 함께 한반도 지역 대부분을 휩쓸었다.” 역사학자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오래전에 이 ‘평양’의 ‘평’이 평평하다는 의미에 ‘넓고 크다’는 의미가 포함된 글자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단순 ‘평평

한 땅’이란 걸로는 한 나라의 ‘수도’로 선택되는 필요충분조건이 읽히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분명 이러한 서술은 광범위한 주제를, 그가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간단히 언급’하는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노출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숲의 나무 하나 하나는 좀 더 세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지만, 그가 그린 숲 전체(중앙유라시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중앙유라시아’를 통해 문명축의 새로운 이해를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고고학을 통해 알려진 위대한 고대 문명들, 즉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강, 황하 강 유역의 문화들은 비옥한 유라시아의 주변 농업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원은 그곳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문명의 변두리, 도전적인 중앙유라시아가 우리의 기원이다.” 그가 ‘우리의 기원’이라고 과감하게 말하는 데는, 인디애나대 우랄-알타이학과에서 티베트의 토번 이전 시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과 어떤 연관이 있다. 그는 바로 그 ‘도전적인 중앙유라시아’에서 역동적인 원시 인도유럽어족의 문화가 태어났고, 그것이 고대 세계로 전해져 다시 ‘발견됐으며’, 현지인들과 결합해 고전 문명의 기초를 닦았다고 설명한다.


“그리스와 로마, 이란, 인도, 중국이 그러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그들의 후손들과 또 다른 중앙유라시아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복과 발견과 연구와 탐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 시스템, 고급 예술, 선진 과학을 창조해 냈다. 이집트인, 수메르인 등등이 아니라 중앙유라시아인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중아유라시아는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이 책에 ‘추천의 글’을 쓴 강인욱 경희대 교수(사학과)는 “중앙유라시아 중심의 역사관으로 유라시아의 역사를 통찰하면서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서술하는 데 주력했다. 세부적인 논증이나 자료에서 부족한 점도 많고, 한국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아쉬운 점도 군데군데 보인다. 이 책은 기존에 알고 있던 중국 또는 서양문명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탈피해서 중앙유라시아의 관점에서 본 새로운 역사 인식을 제시하는 학사적 의의가 있는 책인 바, 그러한 지엽적인 문제로 책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의미를 매겼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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