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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아닌 질소 얻으려 곤충 잡아먹어
에너지 아닌 질소 얻으려 곤충 잡아먹어
  • 교수신문
  • 승인 2014.06.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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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 107.식충식물

▲ 식충식물의 하나인 끈끈이주걱 http://commons.wikimedia.org
대관절 어인 일로 이런 신비롭고 약삭스런 생물이 다 생겨났담? 식물에 빌붙어 반 기생하는 겨우살이나 완전 기생하는 새삼 식물을 본 난에 논한 적이 있지만 말이다. 동물을 사냥하는 벌레잡이식물(食蟲植物, insectivorous plants)은 결코 온통 곤충만 잡아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광합성을 해 간신히 살아가면서 오직 부족한 영양소를 벌레에서 얻어 보충할 따름이다. 이들은 남다른 해괴망측한 벌레잡이기관(捕蟲器官)을 가져서 작은 동물을 잡아 소화시켜 질소 따위의 영양소를 벌충하는 일종의 肉食植物(carnivorous plant)이다. 하지만 곤충단백질에서 절대로 열이나 활동에너지를 얻는 것은 아니고, 단지 질소(암모늄) 같은 무기염류영양소를 얻을 뿐이다.


파리지옥, 끈끈이주걱 등 모든 벌레잡이식물들은 주로 축축한 늪지대(bog)나 토질이 형편없는 토탄(peat)·이끼(moss)며, 흙이 아주 얇게 깔린 곳이나 지극히 척박한 땅, 특히 질소나 칼슘성분이 무척 적은 암석의 露頭에 뿌리를 박고 안간힘을 다해 살지만 하나같이 뿌리내림이 턱없이 형편없다. 아주 약골이라 경쟁식물이 곁에 있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습도가 높고 더운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지금껏 이렇게 희한하게 적응(진화)한 것이 세계적으로 630종이 넘고, 우리나라에도 통발과 10종, 끈끈이주걱과 4종, 벌레잡이풀과 1종 이렇게 의외로 많은 총 15여종이 自生한다고, 강원대 자연대 유기억 교수께서 알려주셨다.


식충식물은 동물을 잡는 방법에 따라 5무리로 나뉘니, 1)잎이 주머니 꼴인 벌레잡이주머니(捕蟲囊)를 가진 종류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야생하는 네펜데스(Nepenthes), 2)잎에 점액을 분비하는 털(腺毛)이 한가득 나서 먹잇감을 달라 붙이는 끈끈이주걱, 끈끈이귀개(‘귀개’란 귀지를 파내는 기구인 귀이개를 뜻함), 3)벌레가 닿으면 더더욱 센 압력으로 배좁은 통 안으로 빨아드리는 통발, 4)여닫이기구인 벌레잡이잎(捕蟲葉, 털이 많은 잎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임)을 가진 것이 여차하면 재빠르게 잎을 오므려 곤충을 덥석 드잡이하는 파리지옥, 5)벌레가 닿으면 안으로 향한 털이 시나브로 움직여 저절로 속으로 끌려들게 하는 벌레잡이또아리풀들이다. 그런데 식충식물의 분비액(소화액)이 곰팡이를 죽이는 놀라운 성질이 있는 것을 알고 抗眞菌劑(anti-fungal drugs) 약품 개발을 하는 중이라 한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 둘만을 골라 간단히 살펴본다. 첫째, 열대지방에 자생하는 네펜데스(Nepenthes lowii)는 잎이 변해서 표주박이나 주전자(pitcher) 닮은 포충엽을 가지기에 ‘pitcher plant'라 부른다. 네펜데스 일종은 작은 포유동물인 산지나무두더지(Tupaia montana), 쥐(Rattus baluensis)와 공생을 하니, 이들이 뚜껑의 단물을 핥아 먹고 네펜데스는 ‘주전자’에 떨어뜨린 배설물을 영양으로 쓴다. 그리고 벌레잡이잎은 입자루가 펴져서 잎처럼 보이는 것으로 이런 잎을 가짜 잎(僞葉)이라한다.


또한 벌레잡이‘주전자’에는 날아다니는 곤충이 대부분이지만 달팽이나 개구리는 물론이고 작은 새까지도 잡힌다. 그런가 하면 어떤 모기유충이 통속의 액에 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잡힌 벌레를 먹고 사는 거미도 있다. 바닥에서 3분의 1정도 채운 액체에는 소화액이 들었지만 먹잇감을 소화시키느라 다 소비하고 나면 거기에 살고 있는 세균들이 단백질분해를 도와준다.


두 번째, 잎을 7개 이상 갖지 않는 파리지옥(fly trap)은 각 잎의 중앙에 3개의 털이 있어 잎을 아물어 닫기 위해서 최소한 2개에 자극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神經草’라고도 부르는 미모사(mimosa)가 물체가 닿으면 반응하듯이 일종의 감촉성(thigmonasty)인 것이다. 아무렴 식물에 신경이 있을 리 만무하니 신경초란 말은 허무맹랑한 말이고, 미모사나 식충식물이 접촉에 일으키는 반응은 모두 세포내 팽압(turgor pressure)의 변화 탓이다.


박물학자 찰스 다윈도 식충식물을 연구했으니, 1875년 7월 2일에 독일어로 된 300쪽이 넘는 『식충식물(Insectenfressende Pflanzen)』이란 책을 출판한다. 두 아들이 함께 그림을 그려 넣은 책으로,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현상(자연도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책이라 하겠다. 책에는 상세하고 조심스럽게 관찰한 식충식물의 벌레 잡는 법(trap)과 섭식방법(feeding mechanisms)을 수록하고 있는데, 초판 3천부를 여러 나라 말로 번역해 출판했다고 한다.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냐고 탓하겠지만, 1875년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朝鮮 高宗 12년이었다. 그때 그 시절에 우리의 생물학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여기까지 듣다 보니 식충식물은‘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꽃식물(顯花植物)로 종자(씨앗)로 번식(유성생식)한다. 그리고 양성화라 꽃가루받이에 곤충들의 신세를 져야 하지만, 다행히 꽃대가 늘씬해(포충기관과 멀리 덜어져있어) 곤충에 먹히는 일은 없다한다. 잎에 날아드는 벌레는 티도 안 내고 잡아먹지만 꽃에 오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뻔뻔한 깍쟁이다.
한편 잎을 길게 늘여 일부를 잘라 번식하는 營養生殖(vegetative reproduction,무성생식)도 하며, 애호가들은 잎을 따서 심거나 포기나누기로 인공번식 시킨다고 한다. 아무튼 이들은 기다림의 명수로 먹잇감이 오기만을 끈질기게 참고 견딘다. 하여 꽃말은‘끈기’라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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