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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과 왕령씨 흐엉씨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과 왕령씨 흐엉씨
  • 교수신문
  • 승인 2014.06.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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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이 있는 논산과 대전, 특히 논산에는 결혼이민자들이 종종 눈에 띈다. 식당에서 어눌한 말투로 “뭐 드시겠어요?”라고 묻는 여자 종업원의 경우 대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온 이른바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대전 시내에도 아시아 각국의 식료품점이 있고 결혼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쌀국수’ 집이 생겼다. 예기치 못했던 ‘국제화’가 도시와 농촌 가리지 않고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집 아이는 아직 중학교 2학년이다. 그런데도 아이 엄마는 내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아이 공부하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며 구박하기 일쑤다. 그 구박을 무릅쓰고 흥미롭게 보는 방송은 결혼이민자 가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외국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다루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다. 태어난 곳을 평생 떠나본 적이 없는 시어머니는 한국의 식습관과 풍속을 외국인 며느리에게 강요하면서 갈등을 빚는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은 며느리의 나라를 함께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온갖 불편함을 겪게 되면서부터이다. 말하자면 시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한국인 사위가 아내의 고향을 방문해 집을 고쳐주거나 텔레비전을 사주는 것과 귀국 전날 밤 온 가족이 눈물바다가 되는 것도 항상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결혼이민자 가정에 대한 나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대학의 변화 중 하나가 외국인 유학생들의 급격한 증가이다. 특히 지역대학의 경우 외국인 유학생, 특히 중국인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크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내가 수업을 하는 강의실에도 외국인 학생이 늘 한두 명씩 있다. 유학생의 경우 대개 말이 서툴기 때문에 수업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력도 떨어진다. 나는 강의 중간에 그 학생들을 따로 불러 질문도 하고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묻곤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구실에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고 조금 친해진 학생에게는 식사를 함께 하자며 과잉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보자면 한국인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의 고향을 다녀온 뒤 며느리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듯이 나도 그들을 보면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치고 사르트르의 나라이자 톨레랑스의 나라에서 학문을 배우겠다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강의를 따라가고 발표를 하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강의실에서 필기노트를 빌려주고 리포트의 문장을 고쳐주던 안느와 샤를로트 덕분에 유학생활은 한결 수월해졌다.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 주었던 친구들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를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조금 다른 친구로 대해준 것 같다. 그만큼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 출신의 프랑스인’과 사는 데 익숙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리 퀴리, 지네딘 지단의 경우처럼 말이다.


병무청에 처음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군대에 안 가도 되는 경우를 적어놓은 글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중 하나가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그렇다면 혼혈인이라도 외관상 식별이 불가능하면 군대에 가야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이었다. 최근에는 병역법이 개정돼 이 규정이 폐지됐다고 한다. 결혼이민자가 15만 명이 훌쩍 넘은 지금 그 가정에서 태어난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이제 군대에 가게 됐다. 군대뿐이 아니라 회사원, 공무원도 되고 사회 곳곳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 아이들이 군대에서 외국인 취급은 당하지 않을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한국인들은 결혼이민자 가정을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도 심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우리민족이 외국인을 싫어하거나 차별한다기보다는 그들과 어울려 사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난 곳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한국인 시어머니처럼 말이다. 우리가 아직까지는 서로 어울려 사는 기술이 부족하고 이른바 ‘이타성’이 결여돼 있는 까닭에 왕령씨와 흐엉씨를 또 다른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곧 브라질 월드컵이 열린다. 본선에 진출한 국가의 선수들 면모를 보면 ‘외관상’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팀도 있고 단일 인종 팀도 있다. 프랑스 팀은 지단과 앙리와 마켈렐레처럼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 선수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런 프랑스 대표팀을 두고 ‘해외 올스타팀’ 혹은 ‘아프리카 드림팀’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하자 극우정당의 당수 르 펜도 더 이상 프랑스팀을 비난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최고의 미드필더 비에라를 세네갈에서 귀화시켜 데려온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민자의 자녀를 자국에서 교육시켜 최고의 선수로 만든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과연 16강에 오를 수 있을지 예측이 분분하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월드컵 열기에 추모 분위기가 묻혀서는 안 되겠지만 한국팀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같을 것이다. 한국팀의 16강 진출 말고 즐거운 상상을 하나 더 하자면 언젠가 결혼이민자 가정 출신의 한국선수가 결승골을 넣어 우리가 월드컵 결승에 오르는 일이다.

□ 다음호 필자는 주진오 상명대 교수입니다.

 


박아르마 건양대 교양학부·불문학
필자는 프랑스 리옹2 대학과 서울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프랑스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를 비롯해 10여 권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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