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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그림, 그리고 ‘셰익스피어 휴가’
창문, 그림, 그리고 ‘셰익스피어 휴가’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 승인 2014.05.19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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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엔 읽고 싶은 책이 쌓여간다. 책 소개란을 보다가 솔깃해서 메모해 놓은 포스트잇이 어느덧 스무 개 가까이 된다. 그 책들 속에 푹 파묻혀 지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가방 속에 책들을 원 없이 집어넣고, 전망 좋은 방에 가끔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장소를 고른다면 괜찮은 휴가가 따로 없지 않을까. 19세기 중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열심히 일한 공직자들에게 선물로 한 달 남짓 되는 유급 휴가를 선사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셰익스피어 휴가’였다. 한 달간 머리 아픈 정치판에 신경 쓰지 말고 정서를 풍요롭게 다져두라는 일종의 독서휴가인 셈이다.

햇살이 눈부신 날, 셰익스피어 휴일을 보내고 있다. 그저 커다란 창문 하나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굳이 나들이가 부러울 것 없다. 창을 통해 온 세상의 빛만큼은 전부 나를 향해 쏟아질 테니까. 햇빛 샤워를 하며 축 늘어져 있는 팔자 좋은 우리집개처럼 호사를 누려보고자, 나도 책들을 발코니에 있는 자그마한 커피 테이블 위로 가져다놓았다. 처음엔 빛과 책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독서도 취향인지라 휴대폰, 스피커, 머그컵, 쿠키, 자외선 차단크림 등 커피 테이블 위가 또 다시 번잡해져 있다. 볕드는 창가에 앉아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나도 모르게 할머니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비몽사몽간에 문득 내 자신이 평화로운 그림 속의 한 장면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제목으로는 ‘책 읽는 여인’이 좋을까, 아니면 ‘창가의 여인’이 더 나을까. 

서양 그림을 보면, 환한 빛을 받으며 여인이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한다. 무릎 위에 책을 펼쳐 놓고는 창밖을 보며 백일몽을 꾸는 여인도 숫자가 꽤 된다.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그린 고요한 방이 생각난다.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늘 한쪽에 창문이 반쯤 열린 채로 보여 진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앞에서 편지를 읽는다. 무슨 내용일까. 열린 창을 통해 노르스름하게 익은 것 같은 황금빛 햇볕과 딱 기분 좋은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어온다.

집이라면 으레 큰 창문이 있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투명한 유리창을 모두가 갖게 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반지하층에 사는 사람이라면 볕이 드는 전면 창문을 가지는 게 꿈일 거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이 살아오던 집에는 열린 틈이 별로 없었다. 때로는 문 하나에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정면 쪽으로 난 좁은 창 두 개가 전부였다. 오늘날엔 창을 통한 환기와 채광이 사람들의 건강은 물론 기분까지 좌우한다는 것쯤은 상식이 돼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침침한 실내와 고인 공기가 해롭다는 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서까지도 사람들은 온기가 달아날까 해서 창을 여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의사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아예 실내 환기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창을 크게 만들지 않은 이유는 겨우내 식구들을 괴롭히는 추위와 창을 통해 침입하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였다. 창문은 좁고 천장도 낮아서 어두컴컴한 집안이 난로에서 나오는 연기로 시커멓게 돼도 옛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유리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비싼 사치품이었던 시절, 창문을 작게 뚫는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유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날씨가 궂은 계절이면 두꺼운 천이나, 가죽, 카펫이나 나무판 등 있는 것을 다 동원해서 창문을 막았다. 그리고는 뭔가 밝은 빛에 비춰 볼 일이 있을 때만 잠깐 가리개를 걷어냈다. 집안에서도 자연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유리 덕분이었다.

돌로 된 벽은 냉기를 피하기 위해 나무판을 덧대어 놓기도 했다. 그나마 뚫린 조그만 창문마저도 겨울엔 나무판으로 막아놓았다. 그 위에 사람들은 무얼 했을까. 그림을 그렸다. 나무 패널화를 직접 그리거나, 아니면 액자를 걸었다. 실내가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전원풍경이나, 꽃, 나무, 마을길을 그려 넣었다. 마치 실제로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그렇게 그림은 빈 벽에 붙어 유리창을 대신했다. 유리 값은 내렸어도, 여전히 그림은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19세기 무렵에 이르면 드디어 목공 기술이 발달해서 모서리가 딱 맞는 창문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난방이 좋아져서 하늘거리게 비치는 가벼운 커튼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런 커튼을 달면 집 안에 최대한 많은 빛이 기분 좋게 여과돼 들어왔다. 더는 외풍을 막기 위해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면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썼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미장센 영화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햇빛 가득한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말없는 하녀, 그리트가 등장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테이블 위에 마실 물을 채워놓고 나가는 그녀는 미술전문가는 아니지만, 오직 단 한 사람, 베르메르의 그림을 진심으로 알아보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이다.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면서 강렬하게 공감하는 것은 빛에 대한 인상이었다. 작업실의 창문을 통과하는 빛의 결에 대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민감하게 느낄 줄 안다. “창을 닦아도 될까요?” 그러자 타성에 젖은 무심한 마님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비웃는다. 그러자 그리트가 이렇게 말한다. “빛이 달라져서요.”

어느덧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섬세하게 달라져 있다. 조금 전까지 따갑던 햇살이 이젠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 상냥하고 부드럽다. 오월의 어느 날, 창문은 그림이 되고, 나는 그 그림 속에 등장하는 책 읽는 여자가 돼 있다.

□ 다음호 필자는 고봉만 충북대 교수입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빅토리아시대 회화 연구(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당신도, 그림처럼』,『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다, 그림이다』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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