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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난 뒤 ‘사건 이후 우울(Post-Festum Melancholia)’을 걱정하다
거대한 재난 뒤 ‘사건 이후 우울(Post-Festum Melancholia)’을 걱정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5.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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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 정신분석을 위한 교토 국제 콜로키엄을 다녀와서

필자는 2008년 이후 해마다 대만, 인도, 미국, 포르투갈 등으로 논문을 발표하러 나갔지만, 한 번도 학술대회 후기를 쓴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 봄 일본 교토대 정신분석 학술대회에 참여한 뒤 일련의 사건을 접하면서 이 지면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의 불가분적 관계를 짚었던 학술대회 참여 후기를 쓴다. 지금도 시계를 되돌려 일어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래서 아직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가장 큰 이유다. 정신과 삶의 연결과정을 전지구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던 일본 교토대 정신분석 학술대회 행사를 소개하는 것이 ‘세월호사건’이 준 정신적 충격을 정리하는 데 도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라깡 정신분석을 위한 교토 국제 콜로키엄’은 2014년 4월 9일 저녁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를 주제로 한 전야 세션을 시작으로, 10일과 11일에 교토국제회관에서 ‘꿈과 구조: 환태평양을 연결하는 정신적 장치’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 국제학술대회를 주최한 가주시게 신구 교토대 인문학대학원 교수(정신과 의사)는 학술대회 발표문을 통해 지난 1990년부터 일본, 한국, 대만의 연구가들이 다양한 중요한 주제들을 갖고 활발하게 정신분석적 교류를 해왔으며, 최근 수년간 대만에서 개최된 콜로키엄에서는 주로 기억이나 정치를 주제로 논의했지만, 올해 교토에서는 정신분석의 뿌리인 프로이트로 돌아가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우리 공동체의 진정한 구조’인 ‘내적·정신적 장치’에 대해 발표한다고 밝혔다.

공동체의 진정한 구조 ‘내적·정신적 장치’
이번 학술대회에는 한국에서는 김종수 정신과 의사, 김영민 동국대 교수 그리고 필자가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전 일본 정신분석학회장이며 2002년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정신분석학회를 주도한 사토시 카토 박사를 비롯해, 타다키 후루하시 박사(나고야의과대), 마사히로 이토 교수와 시무라 젠포 사토시 교수, 인류학자인 코조 와타나베 교수(오사카대), 그리고 리카 가야마 정신과 의사(도쿄 리크요대)가 참여했다. 대만에서는 챠오양 랴오 교수, 신-하오 랴오 대만국립대 교수 외에 키엔 켓 림 국립교통대 교수와 에밀리 수희 차이 국립중경대 교수가 왔고, 몽고 대표로는 신구 박사 밑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아나라 뭉크친이 참여했다. 프랑스에서는 라깡과 친분이 깊은 낭뜨 출신의 장-루이 고(Jean-Louis Gault) 박사, 그리고 이미 1990년대 말 우리나라를 방문해 라깡 정신분석 논문을 발표하고 작년에 작고한 스크리아빈 박사의 미망인, 조엘 스크리아빈 정신과 의사가 참여했다. 호주에서는 러셀 그리그 교수가, 헝가리에서는 크리치안 인드라이스 교수가 참여했다.


필자는 9일 ‘일본가족과 현대사회: 히키코모리와 안티고네’라는 제목의 전야세션에서 히키코모리 주제가 매력적이어서, 떠나기 전부터 이 세션을 통해 일본사회를 엿본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후루하시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일본에서 1970년대 등장했다는 히키코모리는 오늘날 한국과 유럽에서도 많이 등장하며 특히 한국에서의 ‘인터넷 중독 젊은이’들이 급진적으로 증가함을 보고하면서, 이런 현상을 ‘히키코모리’같은 상태로 규정했다. 이 발표는 최근에 인터넷 중독으로 영아 아들을 살해한 부정한 아버지 사건과 맞물려 있었으며, 그에 준하는 많은 인터넷 중독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후루하시 박사는 이런 현상이 개인의 독특한 정신에 기인되지 않고, 가족, 학교, 대학, 교육체계와 문화, ‘젊은이들’의 사회적 문제와 직결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개념보다도 더 비극적으로 가슴을 후비며 정신과 사회의 불가분적 관계를 보여주는 개념은 일사토시 카토 일본 자치의대 교수의 「일본 동부 대 지진의 후유증에서 관찰되는 현대사회의 병리」라는 논문이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기도 한 카토 교수는 2011년 대지진과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의 케이스를 예로 들어가며, 많은 사람들이 바로 ‘사건 이후 우울(post-festum melancholia)’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카토 교수에 의하면, 이 용어는 원래 일본 정신과 의사 빈 키무라가 ‘절대 되돌려지지 않을 과거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다. 키무라는 이 현상과 반대로 주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온갖 종류의) 증표에 대한 극도로 예민함의 현상을 ‘사건 이전(ante-festum)’의 불안으로 묘사했다.


카토 교수는 이 개념을 쓰나미를 일으킨 일본 동부 대지진과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정신적 현상에 적용했다. 그는 오늘날 일본의 정신적 현상을 두 가지 불안, 즉, ‘(대지진때) 친척, 친구와 다른 이들의 죽음으로 야기된 결정적 손실로 인한 사건-이후적 불안(post-festum-like anxiety)’과 ‘개인들이 방사능의 희생자가 될지 모를 미래와 관련한 사건 이전적 불안(ante-festum-like anxiety)’으로 나눴다. 그는 ‘사건 이후적 불안’의 경우, 쓰나미로 이웃을 잃은 아주머니가 ‘생존자의 죄의식’을 겪고 있는 것을 예로 들었고, ‘사건 이전적 불안’으로 ‘전체 IQ 128, 언어 IQ 144 및 행동 IQ 103’을 가진 고교생의 경우를 들었다. 후쿠시마 인근의 토츠기(Tochgi)에 사는 이 고교생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인터넷과 만화에서 방사능으로 암에 걸린 일화를 수집하는가 하면, 부모에게 해외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다가 거절당하자 세상을 ‘순순한 장소’와 ‘오염된 장소’로 나눠 스스로 오염된 것을 만지지 않도록 항상 검사하고 목욕을 2시간 이상 하는 버릇을 보여, 치료를 의뢰받은 학생이다.


이외에도 카토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람들이 매일 방사능 지수라는 과학적 지수에 집착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현상을 정신병적 구조로 설명하기 위해 라깡이 이미 불안 세미나에서 다룬 프랑스 작가, 모파상을 불러냈다. 카토 교수는 죽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la horla, outside의 의미를 지닌 hors와 there의 뜻을 지닌 la의 합성어라고도 함)가 우주에서 침입해 주인공의 생각을 사로잡는다는 환상을 다룬 모파상의 소설 『라 오를라(La Horla)』가 프랑스에서 당시 진행되고 있던 과학적 진보에 대한 모파상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빚어진 ‘파라노이아(Paranoia)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카토 교수는 “인간에게 있어서 방사능의 존재는 바로 최악의 오를라이다”라고 결론짓는다.

베이유·모파상과 정신병적 구조
한편 후쿠시마 사고 후유증과 관련해 카토 교수는 거식증에 걸린 프랑스 작가 시몬느 베이유의 예를 들면서, 나치에 의한 인종말살을 목격한 베이유는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자기로 인한 타인과 자연의 희생을 줄이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베이유의 죽음은 단순 자살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도덕적 빚’을 지불하려는 노력이다. 일종의 ‘생존자의 죄의식’을 앓기도 한 베이유의 일화와 어떤 측면에서는 자신이 앓았던 매독으로 인한 정신병의 결과로 읽혀지기도 하는 모파상 소설의 정신적 구조는 모두 카토 교수가 주장하듯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정신병적 구조의 틀로 해석될 수 있다. 카토 교수는 영국에서 죄수들이 가석방될 때 그들을 모니터 할 수 있도록 죄수들의 몸에 전자칩을 심는 것을 검토 중인 것처럼 현대사회는 일종의 ‘전자 감옥’이 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카토 교수의 지적대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한 증상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망상’임을 고려할 때, 감시로 가득 찬 ‘전자감옥’의 현대사회는 정신병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 러셀 그리그 교수는 현대사회의 우울과 애도는 ‘망각할 수 없어 생기는 현상’임을 설명하면서, 프로이트의 꿈 자체가 바로 이 망각될 수 없는 것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말해주는 이론이라고 발표했다. 주최 측인 신구 박사는 동양불교와 라깡의 관계에 주목했다. 대만의 에밀리 차이 교수는 중국과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만 학생 시위를 통해 정치와 정신의 연계과정을 보여줬다.
지금 이 나라 모든 국민은 명명백백히 인재인 이 참사를 어떻게라도 되돌려 아까운 수백 명의 희생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사건 이후 우울’ 혹은 ‘사건 이후적 불안’을 앓고 있다. 또한 우리는 매일매일 꺼져가는 소중한 생명의 불꽃을 대하며 희망의 불꽃도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이 참사의 비극이 잊혀 미래에 또 이러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건 이전적 불안’도 가지고 있다. 부디 우리 모두 지난 2주간처럼 우리의 마음을 후회와 미안함으로 자책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세상의 안과 밖이 정의와 윤리적 책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새로이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신명아 경희대·영문학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경희대 후마니타스컬리지 영어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라깡, 사유의 모험』(공저) 등의 책을 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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