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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트라우마
재난과 트라우마
  • 박남희 경북대 미술학과
  • 승인 2014.04.28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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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 칼럼_ 박남희 경북대 미술학과

박남희 경북대 미술학과 교수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를 누리고 있으나 인간 스스로의 존재와 이성에 대한 확신을 하면 할수록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운명의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17세기이후 유럽미술사에서는 홍수, 태풍, 폭설, 화산폭발 등 자연의 재난, 18세기이후에는 전염병, 기아, 사회현상과 자연이 어우러진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산업화가 가속될수록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자연의 거대한 힘에 의한 재앙들, 그 중에서도 유독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검푸른 바다에서 집어 삼킬 듯 무서운 파도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이 조셉 베르네의 「태풍 속의 난파선」, 윌리엄 터너의 「난파선」, 제리코의 「메두즈의 뗏목」등에서 나타난다. 그림 속에 나타난 드라마틱한 바다는 거의 검푸른 색과 거친 붓놀림으로 시각적으로 이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드센 파도에 맞서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은 자연 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허탈감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주어진 환경에서 억척같이 살아남으려는 장렬한 인간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술사에 새로운 흐름을 예고했고,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알렸다. 미술사에서 아름다운 형태보다 인간의 심리적 정서적 상황들, 즉 희망과 절망의 상태, 공포와 광기의 상황들을 자유롭고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하던 서양사회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인간의 감성과 자유로운 상상력, 예술의 자율성을 중요시해 자유주의 사상과 인간심리와 내면의 정서를 중요시하는 사회의 정착을 가져왔다.    

거친 바다에서 죽음에 맞선 인간들이 등장하는 다양한 작품들 중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은 1811년 7월 2일 프랑스에서 아프리카의 세네갈 식민지로 향하던 메두즈호가 함장의 미숙함으로 세네갈 앞바다에서 암초에 좌초된 실제 사건을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표류하던 생존자들이 구조를 앞두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상황을 보다 더 극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식민지에 가서 권력과 일확천금을 꿈꾸었던 400여 명의 승객들이 일부는 구명정에 타서, 목숨을 구했고, 구명정에 타지 못한 149명은 배의 잔해를 모아 뗏목을 만들어 15일간 표류했다. 뗏목에서 기아와 갈증으로 거의 죽음에 임박해, 표류 15일째 7월17일에 구조됐고, 이 때 생존자는 10명에 불과했다. 세월호가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발버둥도 못해보고, 구명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말을 순순히 듣고 꼼짝없이 배에 갇혀 어둡고 싸늘한 바다에서 죽음을 당한 아이들 때문이다.

삶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빈사상태에서 구조된 생존자들은 모두 병원에 입원했는데 거의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고 한다. 화가가 행한 면담에서 생존자들에게 엄습한 가장 거대한 공포는 바다 위에 고립된 불안감, 극한 상황이 야기한 심리적 절망감이었다고 한다. 후일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빠진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재난에 가슴이 찢어진다. 철저하게 人災였던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바다에서 조금만 배려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꽃다운 청소년들의 참사로 모든 국민들이 비통해 한다. 자식을 키우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과 교육현장의 교육자들을 죄인으로 몰고 있다. 안전 불감증, 무책임함, 권리는 있고 의무는 없는 사회에 대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조차 역겹다. 그래도 생존자들을 찾아내야 하고, 생존자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수색현장의 모든 분들의 목숨도 안전해야 한다.

생존자들에게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안타깝게 피어보지 못한 많은 또래의 친구들을 코앞에서 잃은 청소년들의 심리치료는 필수적이다. 아직 외부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이 어른들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몇 달 간의 치료로 끝날 일이 아니라 꾸준한 치료가 요구된다. 살아남은 자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롭힘은 아직 성장과정인 청소년들에게는 더 심하게 다가온다. 우리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 현실에 살아온 자에게 박혀진 악몽의 트라우마에서 탈출이 시급하다. 밖으로 들어난 외상보다 인간의 내면에 근거한 상처 치유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박남희 경북대ㆍ미술학과
19세기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제11대 전국여교수연합회장을 지냈다. 경북대 예술대학장과 미술관장,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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