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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GNP 5% 교육재정’ 확보를 다시 말하자
지금 ‘GNP 5% 교육재정’ 확보를 다시 말하자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사회철학
  • 승인 2014.04.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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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사회철학
독일의 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에 따르면, 오늘날 진보란 ‘파국과 문명의 퇴행’을 막는 데 있으며,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 경제 성장으로 대표되는 ‘더 많은 진보’는 포기돼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진보가 결과한 양적 진보가 아니라, 이것이 야기한 자기 파괴적 결과를 극복할 수 있는 질적 진보를 이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해도 양극화만 심해지고, 기술 진보가 대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지금 이러한 진보관은 시의적절하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의 대학은 대학 본래의 이념에 맞는 질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는가. 아니면 파국과 퇴행의 길에 들어섰는가. 지금 우리에겐 대학구조개혁이 지상과제가 됐다. 2018년부터 학령인구가 현재 대학정원인 56만 명보다 줄기 시작해 2023년에는 40만 명으로 떨어진다는 공포 시나리오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보다 적다면 학생들의 선호도에 따라 폐교되는 대학이 속출할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시장 논리로부터 대학을 지켜내기 위한 정부와 개별 대학의 노력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교육부는 시장 논리로부터 대학을 보호하는 획기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 지표를 통해 대학을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정원감축과 퇴출만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대학 역시 이에 따라 지표 맞추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물론 교육부는 ‘대학특성화 사업’을 통해 학령인구절벽에 대비하고,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고 하지만, 수도권에 546억, 지방대에 2천31억을 지원하면서 이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지원규모는 BK21사업에 투자된 1조4천억 원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사업은 의도치 않게도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몰락을 야기함으로써 대학을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는 대학을 시장 논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시장 논리를 대신해 칼자루만을 휘두르려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구조개혁 이후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전국 대학을 일괄적으로 평가해서 퇴출 대학을 정하면 수도권에만 대학이 집중되고, 지방에는 대학이 사라지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전국 대학을 권역별로 평가해 학생들의 선호도와 무관하게 대학의 존폐가 결정된다면 학생 유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 더구나 살아남은 대학을 보면 인문학도 기초과학도 없이 소위 취업 위주의 학과로만 특성화돼 있다. 과연 세계적인 명문대학 중 이런 대학이 있을까.

대학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진리 탐구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해왔고, 전자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후자는 실용학문과 응용과학이 담당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적이 양자택일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용학문이나 응용과학은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 있었고, 교육에서도 두 가지 목적은 서로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이 구조개혁을 통해 이런 대학 본래의 전통을 해치고 단지 취업준비기관으로 힘겹게 살아남는다면, 이는 결국 ‘파국과 문명의 퇴행’이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 교육시설도 갖추지 못한 부실대학이 폐교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지 정원축소로 인한 재정 부담 때문에 대학이 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개별 대학의 자구책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국가 100년 대계라는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GNP 5% 교육재정’ 확보를 다시 말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사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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