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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풀문양·서양 팔메트?그것은 하늘기운의 상상적 추상이다
당나라 풀문양·서양 팔메트?그것은 하늘기운의 상상적 추상이다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4.04.23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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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21_ 唐草紋의 기원과 상징

▲ [그림6]백제 금동광배 당초문. 부여 부소산성 출토. 지름 12.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 고대문화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의 하나가 ‘唐草紋’이다. 당초문은 忍冬紋, 忍冬唐草紋 등으로 혼용하기도 하는데, 이 문양에 대한 기원과 상징에 대한 해석은 왜곡이 아주 심하다. 이번 호의 주제는 당초문의 기원과 상징에 대한 바른 해석을 시도해 당초문의 발생학적 원류와 본질을 밝힘과 동시에 그동안 잘못 알려진 현상을 바로 잡으려 한다.


문양의 상징 해석은 근거가 분명하고 정확해야 한다. ‘문양은 역사적 기억에서 저장된 뇌의 지문이자 그 시대 문화의 거울’이란 사실을 유념한다면, 민족문화의 시원사상이 반영된 문양의 해석은 그 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짚어내는 첩경이 되므로 그 해석의 정확성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해석고고학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기존의 문양 해석상 왜곡이 가장 심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한반도 최초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인 시원이며, 그 문양의 상징성은 천손족의 태양숭배사상을 반영한 ‘빛살무늬’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민족 시원문화의 상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고대의 시원문화와는 무관한 빗살무늬[櫛文土器]로 해석하고 있는 현상이 아직까지도 시정되지 않고 있는 사례.
② 신라 왕권의 상징인 금관의 양식은 태양의 심볼인 화염무늬를 왕권의 형식 언어로 표현한 그 시대 최고의 디자인이다. 그런 금관의 도상 원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뭇가지형[樹枝形], 사슴뿔형[鹿角形], 山字形, 出字形 등의 즉물적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금관에 내장된 문양의 정보해석에 실패한 전형적 오류의 사례.

▲ [그림7] 통일신라 당초문 암막새

③ 이른바 비파형 동검은 神巫의 儀器를 불꽃형으로 디자인한 神劍인데도, 상징의 해석이 전혀 깔려있지 않은 악기를 연상케 하는 비파형 동검이란 터무니없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는 사례.
④ 환두대도의 문양은 대도의 사용자인 우두머리를 상징한 솔개(수리)문양이고, 수리문양은 神과 등식관계를 이루는 神鳥의 상징이다. 새숭배사상에서 등장한 환두대도 문양의 이러한 원류를 해석하지 못하고 즉물적 이름인 삼엽문으로 호칭하고 있는 고대문화에 盲目인 한심한 사례.
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태양의 에너르기다. 고대인이 인식한 圖像의 母題 문양은 생명의 근원인 태양문이 그 중심이 된다. 태양문에서 연화문, 파형문, 거치문 등으로 분화가 이뤄지는데, 그러한 모형의 원리를 망각한 채 연화문이 마치 중심문양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왜곡의 사례.


⑥ 당초문은 ‘唐草’가 덩굴풀의 일종인 ‘새삼’이므로 ‘하늘기운의 草紋化’를 동양식 어휘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그 원의를 추적하지 못하고 축자주의 식으로 ‘당나라 풀의 문양’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이국풍’으로 해석해 서양미술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현상과 당초문의 기원은 이집트의 연화문(로타스)과 메소포타미아의 팔메트(인동문)가 기원이라고 함으로써 사상의 시원을 서양에 두는 왜곡된 현상.


이와 같은 기초문양의 잘못된 해석은 고대문화의 정체성 수립자체를 기초설계부터 어긋나게 해 불구의 구조로 만들어 버리는 폐단이 생긴다. 바로잡지 않으면 문화의 뿌리를 모르는 문화맹목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다.
기존 학설을 불가피하게 비판하는 본 연재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많을 줄 안다. 특히 해석의 오류라고 지적당한 학설을 그동안 통설로 믿어온 기존학계의 사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 새롭게 나오는 발견의 현상을 어찌 막으랴. 제기되는 새로운 학설에 대한 기존학계의 통상적 태도는 무관심을 가장한 침묵, 의도적인 외면, 폄하와 무시 전략 등이다. 그러나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침묵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이론인가 하는 문제만이 관건일 뿐이다.


이런 원리를 처음 발견하고 논증할 사징을 찾아 수십 년간 헤매면서 어느덧 인생 70을 넘기고 보니, 이제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걸릴 것도 없는 입장이 됐다. 다만 해석고고학 입장에서 사실을 말해 동도자들과 함께 정보이 공유하며 평가를 받고자 할 뿐이다. 학문의 울타리도 소용없고, 전공도 아닌 자라고 운운할 필요도 없다. 영역을 확대해 학문적 발전을 도모할 일만 남았다. 학계의 사고 전환을 촉구하면서 반론을 제기하거나 냉철한 비판을 기다릴 뿐이다.

당초문 해석의 바른 길
한국 고대사상이 투영된 대표적 문양은 빛살무늬, 불꽃무늬[火焰紋], 태양문, 새문양[鳥紋], 당초문, 연화문 등이 중심축을 이룬다. 본 연재에선 이런 대표적 문양의 상징에 대한 의미를 기존학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런 재해석으로 고대문화와 사상의 체계를 추출하고 한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수립해보려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기울였다. 이런 일은 한국 정신문화의 골격을 세우는 기초 작업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당초문을 정의하기를 ‘식물의 형태를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한 장식무늬’라고 했다. 그리고 내용 설명을 이렇게 했다.
“본래 唐風 또는 異國風의 덩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초문계 장식요소는 민족의 조형양식의 특질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으로, 각기 그 발생지역에 따라 특성을 달리해 그 지역의 문화적 성격을 뚜렷이 보여준다. 당초문의 형식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해 그리스에서 완성을 보았으며, 여러 지역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했다. 그리스계 당초양식의 한 유형은 서기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진출과 더불어 동방에 전래됐으며, 또 한 가지 유형은 스키타이 문화에 전파돼 그 지역의 의장적 특성인 새나 짐승무늬와 결합했다. 이 양식은 유라시아 내륙지방에 널리 퍼져 중국의 전국시대 미술 등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고대미술에도 영향을 주어,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각종 金工裝身具, 馬具, 금속용기 등의 문양으로 성행했다.”


“당초문은 식물의 덩굴이나 줄기를 물결 모양으로 문양화한 것, 이 무늬의 기원은 오래되고, 분포상태도 매우 광범위하다. 고대 이집트의 로타스 로제트, 메소포타미아의 팔메트 등을 弧線이나 渦捲線으로 표현된 오래된 당초, 그것을 집대성하고 리드미컬한 형식으로 전개해 나간 그리스 당초, 여기에 아칸서스의 요소가 받아들여지고 이것이 로마로 계승돼 나갔다. 이런 서방계의 당초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으로 들어온 것은 육조시대의 일이다. 北齊에서 수당시대에 걸쳐서 이 당초에 화문과 포도, 석류 등의 과일이 붙고 채색이 다채로워졌다.”(『세계미술용어사전』, 중앙일보사, 1999) 당초문은 C자형, 또는 S자형으로 길게 뻗어 나가는 蔓草(덩굴풀)가 문양화된 것으로, 오래 전부터 장식문양으로 사용되면서 시대와 지역과 민족에 따라 도상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뤄져 왔다. 그런데 위의 설명처럼 서방에서 기원해 동방으로 전래됐다는 논조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당초문의 발생과 전파는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그리스 → 로마 →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진출(B.C 4세기)로 중앙아세아 동방전래 → 중국은 육조시대(A.D 3~4세기) 전래’로 요약되는데, 이런 전파 경로는 당초문의 발생학적 究明을 동양학의 견지에선 한 번도 따져보지 않고 오직 서양미술사 중심의 견해만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하면 唐草란 語義에 당초의 발생정보가 몽땅 들어 있는데, 그걸 한 번도 해석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唐나라 풀의 문양’, 또는 이국풍의 문양으로 알아왔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다면 唐草의 원의는 무엇일까. ‘唐’자의 字解는 나라이름(중국의 역대 朝代名이 ‘唐’인 나라는 네 나라가 있다. 陶唐(堯), 唐(李世淵), 後唐(李存勛), 南唐(李昇)) 외에 명사, 동사, 형용사 합쳐 용법 11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새삼 당’이란 훈석이 있는데, 당초의 ‘당’은 바로 이 새삼을 가리키는 것이다.
새삼은 S자 형으로 뻗어 콩과의 식물에 감아 붙으며 기생하는 일년생 만초를 말한다. ‘唐’은 『爾雅』 「釋草」에서 ‘蒙’(덮을 몽, 입을 몽, 새삼 몽)과 같고 ‘女蘿와 같은 덩굴풀’이라고 했다. ‘몽’도 새삼이고, ‘여라’도 새삼이다. 새삼의 다른 이름은 唐蒙, 絲, 女蘿, 蒙菜 등이 있는데, 모두 ‘덩굴’, ‘댕댕이’, ‘넌출’ 풀들을 말한다.


덩굴풀의 ‘덩굴’은 몽골어 탱그리[天=ta´ng]가 변한 말이다. 즉 하늘풀이 덩굴풀인 것이다. 우리말에 머리, 우두머리를 비속어로 ‘대가리’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이 대가리도 탱그리의 변음이 아닌가 한다. 전라도에선 무당을 ‘당골’이라 하는데, 육당 최남선 선생은 ‘당골’을 하늘의 관계어로서 탱그리의 변음이라고 했다. 탱그리 곧 하늘은 높고, 으뜸이며, 우두머리다. 그런 탱그리의 기운을 한정 없이 리드미컬하게 뻗쳐가는 덩굴풀로 문양화한 것이 당초문을 만든 고대인들이 미의식이었다.


언어의 미묘한 내면세계는 당초가 ‘하늘기운을 초문화한 문양’이라는 해석의 가능성을 言徵에서 충분히 제시했다. 당초를 ‘하늘기운의 초문화’로 보는 해석은 당초의 발생원리와 기원이 식물보다 하늘기운의 작용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식물보다 하늘기운이 인간사유의 원형인 것은 고금의 진리다. 그러므로 사유의 반영이 문양이라 할 때, 그러한 발생학적 원리는 당연한 이론이라고 할 것이다.
당초라는 하늘기운은 태양의 에너지를 말한다. 태양의 에너지는 고대문화 운용의 중심 에너지로 작용하지만,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추상적 문양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태양문은 무수한 문양으로 분화되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반복한다.


하늘기운이 초문화 되기 이전의 문양이 당초의 원형이라면, 당초의 기원을 굳이 이집트의 로타스(연화문)에 있다고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로 앙소문화를 비롯한 중국의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태양문이 근원적인 하늘기운의 표현양식인 것을 쉽게 이해할 일이다.
당초의 ‘唐’은 새삼과 같은 S자형처럼 감기는 하늘기운이 본질이지, 식물이란 것에 방점이 놓인 것은 아니다. ‘唐’의 식물문양은 하늘기운이 그 다음의 진화단계에서 장식미를 지각해 나타난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당초문은 서방의 전래문양이 수용된 문양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돼 서방 전파론을 동방 자생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그림2]의 문양들은 번개문[雷紋], 소용돌이문[渦紋], 삼각뇌문 등으로 분류되지만, 그 원형은 태양문이다. 태양문은 하늘기운의 문양이므로 당초의 원류가 된다. 그러므로 애초의 당초문은 태양 에너지의 추상적 표현인 것이다. 진화와 분화가 이뤄지는 단계에서 덩굴풀의 초문양식이 첨가돼 이른바 오늘날의 당초문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초문을 이집트의 로타스라는 연화문에 기원을 두는 것은 하늘기운의 초문이란 당초의 原義를 모르고 서양미술 논리만을 추종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忍冬草와 인동당초문
당초문을 忍冬草紋, 인동당초라고 한다. 인동은 무엇이며 왜 당초와 복합됐을까. 원래 인동문이란 문양 이름은 일본인 이토추타(伊東忠太)가 팔메트(palmette)를 인동문으로 번역한 데서 생긴 잘못된 이름이다. 곧 서양의 팔메트가 인동문인데, 한국에서 이해하고 있는 인동문은 그것과 또 다르다. 인동문은 인동초 문양인데, 인동초는 한국에서 함북을 제외한 각지의 산야에 분포해 있다. 5월에 피는 꽃은 처음에 백색이었다가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라고 한다. 길이 5m까지 뻗으며 오른쪽으로 S자 형으로 감아 올라가는 덩굴풀이다. 겨울철을 나므로 인동초라 해 생명력이 강한 인고의 상징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다르다.
인동문은 인동초를 문양화한 것이라는 뜻이지만, 이것은 후대 사람들이 당초문과 비슷한 연상 작용에서 붙인 이름에 불과 하므로 고대 사유와는 별개의 문제다. 도리어 당초와 인동을 결합해 인동당초란 복합어를 만듦으로써 그 원류 해석에 혼란만 가중되는 현상을 빚고 있다. 더구나 당초 어휘 앞말로 인동을 얹으니 마치 인동이 더 중요한 것처럼 돼버린 몽매함이 어지럽다.


[그림4]는 고구려 암막새와 벽돌에 나타난 태양기운의 문양이다. 태양기운은 하늘기운을 대표하며 우주만물의 원동력을 상징한다. (1)은 전형적인 당초문의 원형이고, (4)는 초문인데 화려한 장식적 당초문의 선행단계와 같다.
[그림5]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형적인 당초문이다. 우리나라엔 낙랑시대의 칠기에 하늘기운의 기세 찬 문양이 나타난다. 당초문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장식문양에서 중심문양이 될 정도였다. 이른바 팔메트 문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꽃과 S자형으로 리드미컬하게 전개된 당초문이다. 이런 문양의 모습이 인동초와 비슷하므로 인동초문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림6]은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백제의 금동광배에 표현된 당초문이다. 당초문은 금속류의 공예에 다양하게 사용됐다. 광배문양의 총체적인 도상의 원의는 태양문에 있다. 둥근 주위의 연주와 화문이 모두 광명을 발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그림7]은 통일신라시대의 암막새 문양인데, 당초문(상)과 봉황보상화문(하)이 화려섬세의 극치를 보여준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문양은 국력과 비례한다. 이 때가 신라의 미의식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다.
[그림8]은 소박한 조선시대 분청자기에 표현된 당초문이다. 하늘을 숭상하므로 하늘기운을 상서롭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고금이 같다. 그런데 그것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생각의 디자인이 만들어낸 문양이 당초문이다. 당초문은 당나라 풀문양도 아니고, 서양의 팔메트도 아니다. 또한 인동초문도 아니다. 그런 즉물적 식물문양에 원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숭배하는 인간사유가 고안해낸 하늘기운의 상상적 추상문양이 장식문양으로 진화된 상서로운 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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