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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잡은 ‘집단서평’, 대중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묻다
자리잡은 ‘집단서평’, 대중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묻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4.23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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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_ ‘역사가의 글쓰기’ 모색한 푸른아카데미 서평회

▲ 병자호란1,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 396쪽|2013.10|15,900원병자호란2,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 396쪽|2013.10|15,900원
 
집단서평이란 방식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푸른역사아카데미 서평회가 지난 18일(금) 저녁 ‘역사학자의 대중적 글쓰기’를 주제로 4월의 자리를 마련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1·2』(푸른역사 刊, 2013)의 저자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책을 초청도서로 선정했고, 집단서평자로는 이영림 수원대 교수, 이영석 광주대 교수를 불렀다. 사회는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가 맡았다. 모양새로 본다면 일종의 역사학 내부의 대화인 동시에, 사회학자까지 가세한 다학문적, 학제적 모습이었지만 핵심은 역사 연구자의 전문적 시각을 어떻게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양식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1·2』의 저자 한명기 교수는 “역사 연구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광범한 1차 사료의 섭렵을 통해 ‘原石을 채취하는 데’ 있다고 본다. ‘원석을 채취하는 것’이 바로 학술서이고, 그 원석을 ‘보기 좋고 정교하게 다듬은’ 결과가 대중서라고 생각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원석 채취와 가공을 학술서와 대중서에 비유한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사를 전공한 이영림 교수는 “사료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기존의 딱딱한 연구서 형식에서 벗어나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썼다는 점”을 장점으로 읽어내면서도 ‘연대기 서술에 의존한 평면 구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좀 더 엄격한 역사적 조망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영국사를 전공한 이영석 교수는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가리켜 ‘역사가의 글쓰기와 관련해 역사가가 직면한 세 가지 어려움을 잘 이겨낸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역사에서는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선택해 자기완결적인 서사구조를 이뤘고, 그 서사를 간결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문체형식을 빌려 서술했다. 이전 시대의 국제관계를 오늘날의 상황과 대비하는 연출력도 보여줬다. 외국사 연구자로서 한편으로 갈채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부러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역사학의 지평에서 다소 배외자인 사회학자의 시선은 어떨까. ‘공중을 위한 역사학(public history)’을 강조한 정수복 박사는 역사가 시어도어 젤딘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젤딘은 동료 역사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특정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라고 촉구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이 쓰는 역사서가 당신의 개성의 표현임을 믿는다. 독창적인 역사학은 독창적인 정신의 반영물이며 따라서 그것을 낳을 수 있는 어떤 표준적인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한명기의 독창적인 역사서술이며 ‘공중을 위한 역사책’이다.”


전문 학술서가 대중을 만나는 일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학문 공동체의 내적 언어를 긴밀히 사용하는 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대중과의 만남은 여전히 서먹한 문제다. 그러나 일반 지의 범위를 넘어서는 대중들이라면 ‘학술적 전문성’에 육박하는 지적 흥미와 공부에도 눈이 밝게 마련. 이들은 단순한 교양 이상의 지적 성취를 맛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 주제 ‘대중적 글쓰기’는 ‘역사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1·2』을 둘러싼 역사학자, 사회학자의 집단서평이 다른 분야의 ‘대중적 글쓰기’에도 충분히 시사점을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이들은 국사학자의 대중적 글쓰기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학술서가 原石이라면 대중서는 원석 잘 다듬은 것

한명기 명지대·한국사


저자가 이미 출간된 자신의 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원고를 청탁받은 이상 몇 자 적을 수밖에 없다. 이하 『역사평설 병자호란 1·2』를 쓰면서 저자가 주목했던 몇 가지 사항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병자호란을 저술의 주제로 삼은 동기는 무엇인가. 저자는 무엇보다 병자호란과 관련된 기존의 敍事가 지닌 한계성을 뛰어넘고 싶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병자호란에 대한 기존의 서사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1636년 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仁祖와 朝廷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고,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산성에서도 조정 신료들은 ‘오랑캐’ 청에 맞서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斥和派와 청에게 군사력이 밀리는 현실을 고려하여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主和派로 나뉘어 격렬한 정쟁을 벌였다. 하지만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외부의 구원병마저 차단되면서 인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三田渡로 내려와 청 황제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 같은 서사의 키워드는 ‘斥和’, ‘主和’, ‘결사항전’, ‘항복’, 그리고 ‘치욕’ 등이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위의 서사나 핵심 키워드가 상징하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17세기 초반은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던 격동기였기 때문이다. 14세기 후반 이래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명이 무너져 가고 신흥 강국 청이 굴기하고 있었다. 중심부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패권국 교체의 흐름은 조선, 일본, 몽골 주변국 모두에게 직접, 간접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明淸交替의 격동에 휘말렸던 국가들 가운데 조선의 위상은 독특했다. 조선은 개국 이래 시종일관 명을 ‘上國’으로 섬기고 변함없이 事大했던 나라였다. 일본은 한 때 명의 책봉을 받았지만 곧 ‘변심하여’ 임진왜란을 통해 명에게 도전했던 국가였고, 청 또한 본래 명의 지배 아래 있다가 왜란 무렵 세력이 커지면서 명에 도전했던 국가였다. 몽골은 부족별로 명에 대해 복종과 반항을 無常하게 반복했다.


주변 제국의 다양한 동향을 고려할 때 ‘청군에 의해 남한산성이 포위된 상황’이나 또 ‘조선이 청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는 상황’, 혹은 ‘조선이 청에 굴복하여 항복하는 상황’은 결코 조선과 청만의 문제일 수 없었다. 명과 일본, 심지어는 몽골까지도 병자호란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자호란의 결과는 한양, 椵島, 瀋陽, 山海關, 北京을 거쳐 對馬島와 江戶에까지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1636년의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諸國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국제적 전쟁’이자 ‘문제적 장소’였던 것이다.


병자호란은 또한 우리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디아스포라의 출발점이었다. 전쟁의 종료와 함께 수십만의 被擄人들이 심양으로 끌려갔다. 이산의 고통과 슬픔 속에 도망과 贖還을 둘러싸고 수많은 갈등과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대두했다. 나아가 조선인과 청인들 사이에 다양한 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역설적이지만, 강제적인 대규모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조선인의 사고 공간이 심양을 거쳐 北京은 물론 西洋으로까지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목도한 명청교체의 실상과 청의 속살은 조선 지식인들이 지녔던 기존의 華夷觀에 충격을 줬다. 저자는 바로 병자호란이 지니는 이 같은 복합성을 국제적 시야에서 종합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나름의 ‘원칙’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대중역사서를 쓰려면 먼저 그 주제와 관련된 학술연구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연구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광범한 1차 사료의 섭렵을 통해 ‘原石을 채취하는 데’ 있다고 본다. ‘원석을 채취하는 것’이 바로 학술서이고, 그 원석을 ‘보기 좋고 정교하게 다듬은’ 결과가 대중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철저하게 短文과 單文을 통해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대부분 비전공자라고 할 때, 그들이 이 책의 내용과 문맥, 전후 관계를 쉽게 이해하려면 간결한 문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역사서의 ‘可讀性’을 제고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 대중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딕 강조 필자)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병자호란1, 2』, 『16세기』(공저) 등이 있다. 동아시아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은 필자는 첫 저서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프랑스사 전공자의 몇 가지 의문점

이영림 수원대·프랑스사


무엇보다 먼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장점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기존의 딱딱한 연구서 형식에서 벗어나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썼다는 점에 있다. 간결한 문장과 생생한 묘사, 다양한 그림자료의 활용에서 대중을 위한 저자의 고심과 노력이 느껴지고 낯선 역사 용어들을 글속에 녹여낸 솜씨에서 저자의 내공이 엿보인다.


저자는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며 교훈으로서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17세기 초 조선의 운명을 명·청 교체기 동아시아 세력관계의 재편과정과 임진왜란 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일본의 정세 속에 자리매김하며,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국제 질서의 전환기에 직면한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강변한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이어져온 저자의 학문적 궤적은 애초부터 그러한 시각에서 출발한 것일까. 아무튼 인접국의 침입으로 인한 환란 연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동아시아 속에서 읽어내며 역사적 시각의 외연을 확대시켜온 학문적 성과를 품격 있는 대중 역사서로 탈바꿈시킨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공자이기에 드는 몇 가지 의문점을 토대로 대중적 글쓰기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 책에서는 명·청·일 세 나라와 뒤엉킨 17세기 조선 역사의 굴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시대상의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과연 전체적인 인구 피해는 어느 정도였으며 지역적으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하다. 사회사 연구성과를 토대로 17세기 조선의 사회상과 전쟁의 참상에 관한 전체적 조망이 필요하다.


둘째, 첫 번째 의문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는 글쓰기와 구성의 문제다. 저자는 호란을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세력 변동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괄의 난 이후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조선의 정치상황, 가도를 둘러싼 미묘한 상황, 어리석은 조정과 우유부단한 인조 등에 관한 묘사는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그러나 상황 묘사와 일화가 반복되다보니 정작 2장 병자호란 부분에 이르러서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이는 연대기 서술에 의존한 평면 구성 탓이다. 줄기와 잔가지를 구분하는 입체적 구성을 시도하면 어떨까. 병자호란 이전에는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서술을 통해 국제정세, 조선의 사회상, 반정 후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인조와 조정 대신들을 다룬 다음, 병자호란 부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묘사와 직접 인용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면 좋을 듯하다.


셋째, 양난을 겪은 조선의 상황은 19세기 말과 유사하다. 실제로 저자는 배와 등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복배수적 상황이 14세기 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19세기 말에 되풀이됐음을 강조한다. 국제정세에 대한 인조 정권의 무지와 유연하지 못한 대처를 14세기 말 및 19세기 말의 상황과 비교하며 오늘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조선이 살아남아 200년 이상을 유지한 저력이 무엇인지 간략하게나마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급변하는 국제정세 및 중앙의 정치적 지배층의 무능과 모순으로 글을 마치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이 역시 위기를 극복하려는 17세기 조선의 자생력 노력에 관한 사회사 연구 성과에 의존할 문제다.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루이 14세는 없다』, 『프랑스 구체제의 권력구조와 사회』(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정』, 『근대 유럽의 형성』 등이 있다.

 

역사가가 직면한 어려움 이겨낸 결실

이영석 광주대·영국사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역사서술이다. 병자호란과 이 전쟁을 둘러싼 국제관계, 전쟁기의 조선사회 등의 문제는 조선사 연구의 다른 주제들에 비해 비교적 덜 주목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민중사, 사회사, 경제사, 사상사 위주의 학계 동향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독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호기심이 컸을 수 있다. 전쟁, 정치, 국제관계, 지배층의 대응 등을 면밀하게 교직해 전쟁과 전쟁 전후의 조선사회를 총체적으로 재현해낸 저자의 능력 또한 독자들을 흡인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동북아시아 국제정세를 바닥에 깔고 그 맥락에서 전쟁의 전개과정을 다루는 기법 또한 오늘날의 국제관계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지 모른다.


나는 특히 저자의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주목한다. 저자는 사건의 전개를 소개하거나,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할 때에도 간결한 문체로 망설임 없이 서술한다. 저자는 전쟁 전후시기의 사회상황, 외교관계, 국내정치 등을 분석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시간 순으로 서술을 전개하면서 각 장절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써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은 전문학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간결한 문체 평이한 어법을 사용했지만, 각장의 내용과 저자의 분석과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의미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는 것은 역시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는 주제가 전해주는 파급력 때문일 것이다. 또 사람들은 ‘아픔’, ‘부끄러움’ 또는 ‘비극’ 자체를 외면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되돌아보고 되씹으려는 경향이 있다. 병자호란 자체가 그런 주제가 아닐까.


외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거의 3중고에 시달린다고 봐야 한다. 실증적 연구와 대중적 글쓰기의 조화는 언제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지만, 그 외에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독자에게 펼쳐보여야 한다는 부담감과 학문연구만으로는 외국사의 특정 주제를 연구자 의도대로 조리하고 갈무리해서 그만의 개성이 담긴 결과물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결과물을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오르지 못할 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역사가의 글쓰기와 관련해 역사가가 직면한 세 가지 어려움을 잘 이겨낸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역사에서는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선택해 자기완결적인 서사구조를 이뤘고, 그 서사를 간결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문체형식을 빌려 서술했다. 이전 시대의 국제관계를 오늘날의 상황과 대비하는 연출력도 보여줬다. 외국사 연구자로서 한편으로 갈채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부러움을 느낀다.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2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분야 우수학자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산업혁명과 노동정책』, 『지식인과 사회』 등이 있다.

사회학자가 보는 역사학자의 글쓰기

 정수복 사회학자


사회학자이자 작가의 입장에서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읽으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회학이 ‘과학’을 지향하며서 이야기를 잃어버렸다면 역사학은 언제라도 다시 이야기 형식을 되찾을 수 있다. 역사안에는 이미 이야기(story)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나 증언이 될 수도 있다. 사실의 기록은 망각과의 싸움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패자나 억울한 사람도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가능하다. 모든 일에는 그렇게 된 유래가 있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이 형성된 과정의 설명이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역사를 공유함으로써 소속감을 갖는다. 역사는 과거의 삶을 귀감으로 해서 현재의 문제에 답을 찾는 행위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도 있다. 역사란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혜의 추구이다. “역사란 지나간 미래다.” 역사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찾기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문제는 똑같이 중요하다. 작가에게는 어떻게 쓸 것인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하다. 역사 대중서는 그저 쉬운 내용을 편하게 쓴 책이 아니라 알찬 내용을 창조적으로 전달하는 책이다.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로 전달하는 가독성이 높은 역사책이다. 거기에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묘사와 서사가 들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 체제 종식 이후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G2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 위치한 오늘의 남한 사회의 상황을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끼어있던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 상황과 대비시킬 수 있다.


저자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는 논문 형식을 벗어나서 풍부한 묘사와 서사를 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미래를 위한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서술이야말로 ‘대중을 위한 역사학(popular history)’을 넘어 ‘공중을 위한 역사학(public history)’가 될 수 있다. 한 개인이 겪는 삶의 내용과 형식이 그가 소속된 가족, 지역, 계급, 민족, 국가, 대륙, 문명권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힘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한다면 공중을 위한 역사학은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을 풍부하게 발휘한 책이다.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상상력을 살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형식상의 제약을 넘어서야 한다. 프랑스 역사를 전공하는 영국의 역사가 시어도어 젤딘은 동료 역사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특정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라고 촉구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이 쓰는 역사서가 당신의 개성의 표현임을 믿는다. 독창적인 역사학은 독창적인 정신의 반영물이며 따라서 그것을 낳을 수 있는 어떤 표준적인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병자호란』은 한명기의 독창적인 역사서술이며 ‘공중을 위한 역사책’이다. 

1980년대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활동하고 있다.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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