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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구조개혁안을 지켜보면서
교육부의 구조개혁안을 지켜보면서
  • 김영(논설위원/인하대, 한문학)
  • 승인 2014.04.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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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正論]

김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올해의 봄은 이상하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벚꽃이 때 아닌 3월 말에 한꺼번에 피기 시작했다. 여느 해 같으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먼저 피고, 목련과 벚꽃이 뒤를 이어 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때 아닌 이상 고온 현상으로 한꺼번에 핀 봄꽃들을 맞이하는 심정은 마냥 즐겁지만 않다. 올해 벽두에 교육부가 대학을 5등급으로 분류해 2023년까지 대학정원을 16만명 감축하겠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대학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는데, 이를 접하는 우리 대학교수들의 마음은 느닷없이 한꺼번에 찾아온 봄꽃들을 대하는 것처럼 참으로 당황스럽다.

누가 봄에 꽃이 핀다는 것을 모르겠으며, 우리 대학교수가 머지않은 장래에 대학 지원자가 대학정원을 밑돌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우리가 당황하는 이유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게 봄꽃이 한꺼번에 두서없이 피기 때문이며, 교육부의 구조조정 계획이 너무 획일적인 잣대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온 각 대학의 특성과 역할, 그리고 대학의 자율적인 조절 능력과 자구노력을 무시하고 주로 정량적 지표에 의지한 평가에 근거해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교육부의 구조개혁안은 대학을 혼란하게 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필자도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이 위기는 주로 외부로부터 온 것이기는 하지만, 주체적인 대응을 못한 대학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교육부는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까지 일방적인 대학정책의 영향권 안에 두려고 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대학의 총장을 대학 스스로 민주적으로 선출하려는 총장직선제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소위 대학에 대한 ‘연구지원’의 실상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교육부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도 순수하게 대학교수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부나 기업의 구미에 맞는 연구를 유도하고 연구비를 미끼로 대학을 평가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과 연구지원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필자가 이런 지원제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구비와 지원액을 대폭 증액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정부는 교수들의 창의적인 연구와 자율적인 대학 발전을 위해 지원은 하되 간섭과 통제는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요즘 대학가에는 교수들이 인류의 미래와 나라를 걱정하는 고민을 담은 연구는 하지 않고 정부나 기업의 ‘연구비를 따기 위한 연구’를 하느라 바쁘며,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내기 위한 진지한 공부는 하지 않고, 정부와 언론의 평가를 잘 받고, 빠른 승진과 승급, 그리고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한 점수를 따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대학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교육부가 대학 지원자 감소 경향을 명분으로 대학 구조개혁을 진행하면서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대학은 더욱 혼란해지고 연구풍토는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조조정을 집행하는 교육당국자는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논한 『노자』 17장의 현재적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장 높은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그가 있는 것만 겨우 알고,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친밀함을 느껴 그를 찬미하고,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두려워하고, 그 다음가는 지도자는 경멸한다. 그러므로 통치자의 믿음이 부족하면 백성들이 믿지 못한다. 그래서 삼가 조심하여 말을 아낀다. 이렇게 해서 공을 이루고 일을 완수해도, 백성들은 모두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했어’라고 말한다.”

김영 인하대·한문학
연세대에서 박사를 했다. 민족문학사연구소·민족문학사학회 대표, 한국한문학회장, 한국고전번역원 위원 등을 지냈다. 인하대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등을 거쳐 교수회 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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