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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인정 일·이원론 논쟁으로 살펴본 대안사회 비전
분배-인정 일·이원론 논쟁으로 살펴본 대안사회 비전
  • 교수신문
  • 승인 2014.04.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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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분배냐 인정이냐?』 낸시 프레이저·악셀 호네트지음 | 김원식·문성훈 옮김 | 사월의책 | 400쪽 | 25,000원

 
프레이저는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문화적 인정 모두를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하자는 분배-인정 이원론을 주장한다. 호네트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들을 일관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21세기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는 무엇일까. 지난 20세기를 지배하던 자본주의 변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이상이 아직도 유효할 것일까. 아니면 인종, 젠더, 성적 취향 등 집단적 정체성 인정이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할까. 『분배냐 인정이냐?』는 진보적 사회운동과 이를 정당화하는 개념적 프레임에 대해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가 벌인 기념비적 논쟁이다.


미국과 독일의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프레이저와 호네트 간의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프레이저의 시대진단이다. 그녀에 따르면 과거의 사회운동이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며 분배정의를 추구했다면, 오늘날 사회운동은 개인이나 집단의 차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문화적 저항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방향 전환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분배문제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키고, 사회비판을 문화비판으로 축소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인정이론’으로 대표되는 호네트의 비판이론은 사회비판의 규범적 틀을 분배에서 인정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회운동의 방향 전환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이러한 시대 진단에 근거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문화적 인정 모두를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하자는 분배-인정 이원론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불의는 현상적으로 볼 때 항상 분배와 인정의 문제가 뒤섞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분석적 차원에서 볼 때 분배와 인정은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된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배정의와 문화적 저항
예를 들어 노동자 계급은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문화적 무시 역시 겪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모든 불의는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발생한다. 반대로 동성애자 역시 문화적 무시와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 처해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동성애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문화적 가치 유형에 기인한다. 이에 비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중적이다. 여성은 출산과 가사노동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으며, 고용 노동에서도 저임금과 주변적 노동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남성중심적 가치유형 때문에 여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에 비해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경제적 차별이 철폐된다고 문화적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결국 여성에 대한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배구조, 인정구조 모두가 변해야 한다.


▲ 프레이저의 주장_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문화적 인정 모두를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하자는 분배-인정 이원론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불의는 현상적으로 볼 때 항상 분배와 인정의 문제가 뒤섞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분석적 차원에서 볼 때 분배와 인정은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된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분배와 인정은 경우에 따라 어느 한쪽이 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상호 독립적인 문제 영역으로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정의란 분배와 인정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려는 이원론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한편으로 특정 집단을 둘러 싼 문화적 지배와 평가절하, 공적 관행을 통한 배제, 공개적 비난이나 욕설 등이 극복돼야 하며, 다른 한편 소득 및 부의 재분배, 노동 분업의 조정, 경제민주화, 기타 경제기구의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프레이저에게 현대 자본주의 사회란 경제 체제와 문화적 가치유형이 결합된 이원적 질서가 되며,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운영논리인 자본의 자기증식과 이윤추구는 독립성을 갖는다.


이에 반해 호네트는 인정 일원론을 제시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분배의 문제는 인정의 파생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네트가 전략적 차원에서 분배와 인정 모두를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하는 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극심한 불평등 해소에 최고의 우선성을 부여하는데 주저하는 것도 아니다. 호네트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들을 일관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 호네트의 주장_ 인정 일원론. 분배와 인정 모두를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로 설정하는 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극심한 불평등 해소에 최고의 우선성을 부여하는데 주저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요구들을 일관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호네트는 시대 진단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즉 인정투쟁은 최근 소수자 운동을 통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1950~60년대 미국의 흑인인권운동, 200년 역사를 갖는 여성운동,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노동운동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저항운동에서는 누구를 한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인정의 문제가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결국 완성한 사회구성원에게 부여되는 보편적 권리의 향유 주체를 확대하고, 그 권리 내용을 실질화하는 진보적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인정투쟁은 집단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권리를 통한 제도적 인정을 요구한다. 분배문제란 바로 이런 제도적 인정을 통해 해결된다.


이를 전제한다면 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는 노동자들을 사고 팔 수 있는 노동력 상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정질서에,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그것이 문화적이든, 경제적이든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정질서에, 그리고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부르주아, 남성, 이성애자만을 완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인정질서에 토대를 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인정질서를 전제한다고 해서 자본 축적의 고유한 논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호네트는 생산관계를 토대로 보고 모든 상부구조를 이것의 반영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일원론, 체제와 생활세계 개념을 통해 경제와 문화를 이원화시키는 하버마스의 입장을 넘어서, 사회적 인정질서라는 규범적 한계 내에서 작동하는 경제 논리의 상대적 자립성을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적 축적체계는 제도화된 규범 질서를 통해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그 한계 내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인정질서의 변혁을 위해
사회변혁이란 무엇을 변혁하는 것일까. 호네트에게서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인정질서의 변혁이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를 노동력 상품이나 임대물 정도로 취급하는 왜곡된 인정질서가 있었다면, 복지국가적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는 노동3권과 사회복지권을 부여받은 동등한 권리 주체로 인정된다.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유연화 시대에는 이러한 권리 영역에서 배제된 실업자,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이들이 겪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무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적 인정질서가 필요할까.


프레이저와 호네트의 입장은 각기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쪽 입장을 따를 때 다른 쪽 입장이 그토록 부조리해 보이다가도, 이내 다른 편에 서면 이전의 입장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또한 프레이저의 명료함에 매료되면 호네트의 글은 너무 난해해 보이고, 호네트의 정치한 분석에 이끌리면 프레이저는 너무나 도식적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우리에게 이 논쟁이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대안 사회에 대한 비전을 심화시키는 생산적 논쟁이 되길 기대한다.


 


문성훈 서울여대·현대철학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악셀 호네트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기관지인 <베스텐트(WestEnd)> 한국판 책임편집자로 있다.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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