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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상상력 … 이의 있습니다!
빈곤한 상상력 … 이의 있습니다!
  • 정리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4.07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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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_ 대안문화정책포럼, 정부 ‘인문정신문화’정책 분석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학을 대중화해 국가가 관리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접근법에 대한 진한 성찰이다. 이는 인문학 콘텐츠의 소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학적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연결된다.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정책’은 현 정부의 4대 국정기조인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기반 구축 중 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의 중요 테제로 자리 잡았다. 문화융성이 ‘국민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인문정신문화가 중요 과제로 부상했다.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인 문화융성위원회가 2013년 7월 25일 출범했고, 산하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후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4대 전략을 제시했다.

이어 문화기반국에 인문학 부흥 전담부서인 ‘인문정신문화과’를 설치했다. 정부 부처에 인문학 부흥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문정신문화에 현 정부가 기울이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지난 2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대안문화정책포럼’도 이러한 정부의 인문정신문화정책을 좀 더 확장된 토론의 공간으로 불러낸 자리였다. 특히 이 자리에서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국문학)는 발제문 「인문정신문화 정책의 평가와 대안」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정책에 다섯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창은 교수가 제기한 다섯 가지 문제점을 들어본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1) 인문학이 복지의 수단화되고 있으며, 2) 인문학대중화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쳐져 있고, 3) 인문학 근본 토대 형성이 간과되고 있으며, 4) 도서관·박물관 중심으로 정책 사업이 협애화하고 있고, 5) 인문학 사업에 관한 상상력이 빈곤하기에 문제가 있다.


첫째, 인문학을 ‘복지의 수단’, 새로운 경제적 ‘성장 동력’으로 간주하는 사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인문정신 문화와 관련된 보고서 및 워크샵 발제 등에 따르면 ‘행복지수, 높은 자살률, 경제적 위상에 못 미치는 삶의 질’ 등이 거론된다. 더불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새로운 차원의 동력으로서 콘텐츠 및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는 언급도 있다. 경제적 풍요에는 일정정도 도달 했으나 정신적 빈곤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 아래, 인문학이 정신적 위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지이다. 이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인문학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자발적 책읽기 모임이 이뤄지는 것이 국가 영역의 관리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 자치단체가 인문학을 주민 복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정부도 정신문화 향유 방식을 다원화해 ‘인문학을 복지의 수단’으로 접근하려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인문학을 ‘자기주도형 학습체계’와 연결시키겠다는 ‘길위의 인문학’이나 독서를 통해 정신적 고양을 주도하겠다는 ‘국민 독서문화 진흥’, 그리고 전통이야기를 콘텐츠화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등이 그 사례이다.


둘째,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정신의 가치 정립과 확산을 위한 사업은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주요 사업 내용으로 “△인문학 교육 우수 선도학교지원, BK21플러스 사업 등을 통한 인문학 연구 및 전문 인력 양성 확대, 알기 쉬운 인문학교재 개발·보급 등 인문정신 교육을 중심과제로 삼아 사회에 확산 △ 고전의 현대적 번역을 통한 인문학의 대중화 △ 인문정신문화진흥법 제정, 전담기구·협의체 운영 등 인문학 진흥의 제도적 기반 구축 등”을 제시했다. 예산 배정을 보면, 인문정신문화 진흥 사업에 5백15억8천800만원이 배정돼 있는데, 그중 인문정신문화 대중화 및 세계화에만 4백60억9천700만원을 지원한다. 전체 사업 예산 중 89.3%가 대중화에 집중된 셈이다.

인문학 근본 토대 형성은 간과되고 있다
인문학 진흥은 대중화 사업으로 국한될 수 없다. 연구가 활성화되고, 연구성과가 산출되면서, 그 영향력을 실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순환구조 형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인문학을 마치 고갈되지 않는 원천처럼 간주하고, 대중화에 힘써 향유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공급은 없는데, 수요를 늘리는 형국이다. 인문학적 성과를 마련하기 위한 구조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지원이 없이, 인문학을 대중화하려는 것은 ‘성과위주’의 접근방식이다. 국가기구가 동원돼 시행하는 정책의 핵심적 난점이 인문학과 관련된 사업에도 나타나고 있다.


셋째, 인문정신문화 정책과 관련해 문화융성위원회 ‘인문정신문화 특별위원회’가 조직됐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됐지만, 인문학의 생산과 인문학자 양성, 그리고 인문학 연구의 토대 구축적 측면에서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학문영역 분류체계 속에서 인문학에 접근해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BK21포스트사업’과 ‘HK사업’을 핵심으로 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연계된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디지털아카이브 작업이 주를 이룬다. 반면, 융합이 창조경제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도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분야’의 융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학의 인문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사각 지대에 놓이고 있다. 인문학 전공자의 사회진출과 인문학의 경제적 부가가치 산출에 대한 효용적 판단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2년도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인문계열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48.4%이고, 사회과학계열 정규직 취업률은 57.4%, 공학계열 정규직 취업률은 69%다.


이렇다보니, 인문계열 학과의 폐과 현상이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고, 대학의 인문학 교양과목도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다. 인문학 교육과 연구의 중심인 대학의 연구·교육 기능이 크게 위축되고 있고, 대학 인문학에 대한 진흥 계획은 부재한 상황에서 ‘인문학을 통한 문화융성’이 추진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학 교양교육과 대학 인문학의 구조적 접근, 대학 인문학에 대한 평가지표의 변화 없이는 ‘인문학 정책의 성과’ 산출도 어렵다고 본다. 넷째, 현재 인문정신문화 진흥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맡아 진행하면서 ‘도서관과 박물관 사업’에 기반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인문학은 분과 학문이 아니기에,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맡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담부서가 만들어짐으로써 인문학에 대해 접근 방식에 변화가 발생했다. 문화 향유 차원에서 인문학을 접근하고, 독서진흥운동과 전통문화와 연결된 대중화 사업에 집중되는 경향을 띠게 됐다. 인문학 진흥 전담부서인 ‘인문정신문화과’가 ‘도서관박물관정책 기획단’에서 변화한 조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구조적 틀은 사업을 제한한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토대로 한 인문정신문화과의 사업은 기존의 자산을 활용하기에 가시적 성과를 산출하기에는 유용하다.


하지만, 정책적 측면에서는 인문정신문화과의 사업이 기존의 도서관 박물관 사업에 ‘인문정신문화’라는 내용만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조직의 확대를 꺼려하는 현재의 정부조직 방향으로 인해 ‘도서관박물관정책 기획단’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 사례로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문독서 아카데미’를 들 수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 위주의 사업 방식에 대한 전향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도서관·박물관의 사업 형식에 ‘인문정신 문화’라는 사업 내용을 입히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인문학 지원 없이 ‘인문학 통한 문화융성’ 아이러니
다섯째, 인문학과 관련된 사업 추진 방식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의 빈곤 현상이 뚜렷하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인문학 관련 사업은 인문학 강연, 지역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거리 인문학’, 스토리텔링, 기획전시 등 경직된 사업이 일반적이다. 이들도 대부분 그간 시민사회에서 ‘시민인문학’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온 성과를 인계하는 방식이었다. 그나마 ‘인문도시’를 중심으로 공간 내에서 인문학을 활성화하는 접근법이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는 인문학을 교양교육, 위안, 관광, 여가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더불어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사업 위주로 구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 한국국학진흥원의 「인문정신문화 진흥방안 연구」는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이 보고서는 ‘민간의 인문공동체 운동 사례’를 통해 ‘마포는대학’등 ‘○○은 대학’ 사례, 수유너머, 문탁네트워크, 인디고 서원, 문화공간 빈빈(彬彬), 인문학협동조합 등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자들의 도전적 접근이었던 성프란시스대학의 사례나 인권연대의 ‘평화인문학’ 사례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이들 사례를 국가적 차원에서 흡수하기보다는 창조적 인문학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사업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상상력의 빈곤은 권위주의적 접근과 정책 집행에 기인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고양함으로써 인문학적 상상력이 확장될 수 있고, 창조적인 방식의 사업이 전개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문학을 대중화해 국가가 관리하는, 즉 통치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접근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이는 인문학 콘텐츠의 소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학적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연결된다. 또한, 정신문화적 차원의 국가 이데올로기 작동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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