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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도서 지원과 '공감'이라는 단서
학술도서 지원과 '공감'이라는 단서
  • 교수신문
  • 승인 2014.04.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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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책이 안 팔린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대학가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책 읽는 모습을 보기 드문 현실이다 보니 책이 안 팔린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얼마 전 한 젊은 출판인이 인문 서적 출판은 잠시 멈추고, 좀 잘 팔릴 수 있는 책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는 학생들과 취업준비자들을 위한 책이 요즘 잘 나간다면서, 공들여 만든 학술서가 500여 권도 채 팔리지 않았다고 푸념했습니다.


지난 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공감도서(가칭)’ 학술 부문 선정 및 보급사업 공고가 있었습니다. 학술 분야의 출판 활동을 고취하고, 국가 지식사회 기반을 조성한다는 취지의 사업입니다.


주관측인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철학, 사회과학, 순수과학, 기술과학, 언어, 역사 등 ‘학술’ 분야의 책들을 놓고, 관련 학자·출판평론가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70%), 공동도서관 등 수요자 추천도서 조사(30%)로 330종을 선정, 종당 1천만원을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저자보다는 출판사를 지원, 관련 도서를 국고로 구입해 공공·복지 시설에 배포하는 문화정책의 일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국민이 공감할 만한 도서’라는 단서입니다. 학술서는 교양서와 달리 특정 층이나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을 갖춘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연구 결과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작품과는 다르다는 뜻이지요.


‘우수학술서’라고 명시하지 않고 ‘공감도서’ 학술 부문 선정이라고 표시한 데서 혼란이 일어납니다. 개념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학술서에는 대중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눈높이가 조정된 책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시민의 탄생』(송호근, 민음사 刊)이나 『깊은 마음의 생태학』(김우창, 김영사 刊) 두 책은 쉬운 언어로 기술돼 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도무지 쉽게 독서가 가능한 책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책이 ‘공감’ 학술서일까요? ‘공감’을 평가한다는 것인지, ‘학술’을 평가한다는 것인지, 기준도 애매모호하기만 합니다.


정부가 학술문화를 장려하고 학술 분야 출판 활동을 고취하고자 한다면 학술서 앞에 그 어떤 단서도 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단서들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술전문 출판사들과 연구실에서 知의 모색에 여념 없는 학자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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