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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나간 ‘榮華’의 의미를 읽는 다섯 가지 시선
그 지나간 ‘榮華’의 의미를 읽는 다섯 가지 시선
  • 교수신문
  • 승인 2014.04.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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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 13_ 콜로세움

▲ 콜로세움 전경.


오늘날 콜로세움은 더 이상 과거의 영욕을 대표하지 않는다. 구름 끼고 비오는 날이면 칙칙한 모습으로, 햇살 쨍쨍한 날에도 음산함을 멈추지 않는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말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곳을 찾는 우리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작은 회환의 바람만을 일으킬 뿐이다.

유럽에 가면 이탈리아, 특히 로마는 가장 마지막으로 보라고 한다. 이기적 발상이 아님을 양해한다면 그만큼 로마의 문화유산은 구대륙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觀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콜로세움은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과 더불어, 우리의 감각을 압도한다. 특히 전자의 역사성은 우리에게 자신이 경험한 영욕의 공간을 향한 시간여행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偏愛偏惡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듯이 끝도 있기 마련이다. 자연이 春夏秋冬을 주기로 반복과 진화를 거듭하는 것처럼, 우리의 역사도 같은 맥락의 시공을 통과한다. 동양에서 春은 방이고 元이며 그 기세는 어린아이의 기지개처럼 曲直이며 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다. 콜로세움의 건설은 로마제국의 위세가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치하에서 시작돼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됐다. 우리의 ‘무럭무럭’한 어린 시절이 가장 버릇없던 기간이었듯이, 콜로세움은 정복된 자들의 혈세와 예루살렘 약탈의 대가였다. 공자는 이 순간에 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콜로세움은 로마제국의 독재자였던 네로가 국유지를 불법으로 점유하여 건설한 황금저택(Domus Aurea)과 거대한 인공호수의 공간과 중첩된다. 유가에서는 ‘不受偏愛偏惡 曰仁’이라 했는데, 콜로세움은 무력에 굴복한 자들에 대한 로마제국의 편애, 편오를 상징한다.

專强專便
이처럼 콜로세움은 승리의 로마를 위해 세상이 잉태한 영광, 즉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며, 자신감이었다. 로마제국의 건설은 강력한 군사력과 정복된 자들에게 위반 시 잔인한 보복을 전제하는 자치권 부여의 동맹정책에 근거한다.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를 상대로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콜로세움은 건설당시 거대한 야외극장의 용도로 설계됐다. 율리우스-클라우디아 가문의 황제들에 의한 소규모 사례가 있었지만(Campagna), 로마에 최초이며 전대미문의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콜로세움은 둘레 527미터, 내부공간의 넓이 3.357 m², 높이 52미터 그리고 가로 세로 187,5 e 156,5 m로 지어졌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이며 후계자였던 티투스는 콜로세움의 완성을 기념해 100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80).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다양한 축제행사를 위한 보조건물들, 예를 들면 검투사를 위한 거처와 훈련장 그리고 이들의 주검을 처리하는 공간, 무기저장고가 함께 지어졌다. 콜로세움은 고대인들에게는 수억의 별들로 채워진 거대한 우주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의 거대함도 5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질러대는 함성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오로지 군사적 강력함으로 편리와 독점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였으니 어찌 삶의 역사에 不受專强專便 曰禮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 티스타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의 작품 1750년경, 콜로세움의 내부전경. 십자형의 교차로가 보인다 (Colosseum with Stations of the Cross. Engraving)
專是專非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의 죽음을 담보한 사투와 공공행사를 위한 공간이었다. 로마 시민들은 이곳에서 사냥연출이나 과거의 전쟁에서 거둔 위대한 승리 또는 고전시대 신화의 줄거리들을 구경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이곳이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위해 지어졌다는 전통과는 거리가 있지만, 기독교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무대이기도 했다. 검투사들의 싸움은 치열했다. 상대를 죽여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2명 이상을 적으로 상대하기도 했으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확실한 승패만이 삶을 조금이나마 더 연장하는 잔혹한 방편이었다.

로마시민들의 함성은 삶과 죽음이 확실하게 갈리는 장면에서 폭발했다. 상대의 실제 비극을 나의 희극으로 삼았으니 운명의 시비에 대한 집착은 결코 의롭지 못한 것이었으며 잔인함의 극치였다. 게다가 살아남은 검투사의 ‘秋收’한 승리조차 나의 삶을 완전히 보장하지 못한 채 황제가 치든 엄지의 행방으로 빼앗길 수 있었으니 不受專是專非 曰義와 다를 바가 없다. 계절의 변화로 보면 이러한 상황은 秋霜과 殺伐로 대변되는 마지막 陽氣의 분출이며 로마제국의 몰락이 싹트고 있던 절정의 무대연출이었다.

恣聰恣明
오늘날 콜로세움은 더 이상 과거의 영욕을 대표하지 않는다. 구름 끼고 비오는 날이면 칙칙한 모습으로, 햇살 쨍쨍한 날에도 음산함을 멈추지 않는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말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곳을 찾는 우리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작은 회환의 바람만을 일으킬 뿐이다. 멋진 폼도, 역사의 현명함도……. 不受恣聰恣明 曰智. 자만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로마는 자만을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다. 콜로세움은 자기의 시대에 보여준 炎上의 역사가 지혜를 다하지 못한, 과한 풍요로움과 교만의 역사였다. 그러기에 콜로세움은 가을 서리에 지중해 문명의 꽃들이 시들어버린 채 모든 것을 빼앗긴 앙상한 제국의 흉물로 전락했다.

濫物濫欲
지난 2011년에는 530만이 콜로세움을 다녀갔다고 한다. 나의 경험에, 콜로세움을 보고 난 후 돌아 선 발걸음에는 과거 로마의 넘침이나 끝없는 욕망은 남아 있지 않았다. 2012년에는 비의 영향으로 40cm 정도 기울었다고 한다. 역사의 차고 넘침이 있다면 기울고 사그라드는 그 끝도 있나보다. 이제 나의 마음에는 편벽됨도, 자아의 강한 주장도, 지식에 대한 수다도 소용이 없음이 느껴진다. 不受濫物濫欲 曰信. 콜로세움이 나를 이 세상과 중재한 것은 아닐까.

김정하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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