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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적 관점’에서도 문화 분화 과정 분석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문화 분화 과정 분석
  •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사회심리학
  • 승인 2014.03.25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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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세계의 문화와 조직―정신의 소프트웨어』 헤르트 홉스테드 외 지음|차재호·나은영 편역|학지사|615쪽|23,000원

 

『세계의 문화와 조직』 제3판은 초판에 비해 분량과 내용이 매우 방대해졌다. 초판에서는 51개국의 문화 차이를 개인주의-집단주의, 권력거리, 남성성-여성성, 불확실성 회피-수용, 및 장기-단기지향성이라는 5개 차원으로 구분했었다. 이번 개정판에는 여기에 ‘自適(방종, indulgence)-自制(구속, restraint)’ 차원이 첨가돼, 모두 6개 차원에서 국가문화의 차원들을 세세히 비교했다.


그 중 앞의 4개 차원은 기존의 IBM 연구와 그에 대한 반복연구에 근거해 76개국의 문화차원 점수를 제시하며 각 나라별 특성과의 관련성을 소개했고, 뒤의 두 차원(장기-단기지향성과 자적-자제 차원)은 세계가치조사 자료를 근거로 93개국의 문화차원 점수를 각 문화의 특성과 연계하며 설명했다. 책의 후반부에 문화 간 만남과 문화의 진화에 관해 상당한 분량의 논의를 추가했다는 점도 이번 개정판의 특징이다.

문화는 마음의 소프트웨어
홉스테드는 문화를 ‘마음의 소프트웨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그 사회의 문화가 일종의 소프트웨어처럼 설치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후의 모든 행동의 발현을 좌우하는 프로그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즉, 동일한 자극에 대한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문화다. 권력거리가 큰 문화에서는 웃어른께 복종하는 행동이 자연스럽지만, 권력거리가 작은 문화에서는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른 차이가 적어 서로를 비교적 동동한 존재로 대우한다. 그래서 권력거리는 “한 국가의 제도나 조직의 힘없는 구성원들이 권력의 불평등한 분포를 기대하고 수용하는 정도”라고 정의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직접적인 대립은 피하려 하며 화합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정직한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주의 문화의 가치기준은 내집단이냐 외집단이냐에 따라 다른 배타주의적 특성을 띠며, 개인주의 문화는 모두에게 동일한 가치기준을 적용하는 보편주의적 특성을 띤다.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갈등해결 방식에서 나타난다. 갈등이 있을 때 남성적 문화에서는 승자를 가려 결판을 내려 하나 여성적 문화에서는 타협과 협상으로 해결하려 한다. 남성적 국가는 성과지향적 사회를 추구하며 자국 GNI 중 군비지출 비율이 높은 반면, 여성적 국가는 복지사회를 지향하며 자국 GNI 중 해외원조에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불확실성 회피문화는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불안수준도 높아 자살률도 높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테이블을 탕탕 치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납된다. 반대로, 불확실성 수용문화는 심장병 사망률이 높은데, 그 이유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한 불확실성 회피 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고속도로에서 허용하는 최대 속력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불확실성 수용문화는 극단적 사상에도 포용력을 보이며, 불확실성 회피문화는 소수집단과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장기지향 문화에서는 금년의 이익보다 향후 10년의 이익을 중요시하며 절약을 강조한다. 짧은 기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던 아시아의 다섯 마리 용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장기지향 문화를 지니고 있다. 문화에 따라 각 나라의 조직 특성도 다르며, 사람들이 그에 적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문화 차이와 행복: 한국의 위치는?
‘자적(방종)-자제(구속)’ 차원은 개정판의 세 번째 저자인 민코프의 연구로 추가됐다. 그가 발견한 문화의 세 차원 중 배타-보편 차원은 집단주의-개인주의와, 겸손-과시 차원은 장기-단기지향성과 상관관계가 높았기 때문에, 나머지 ‘자적-자제’ 차원만을 포함시킨 것이다. 잉글하트의 세계가치조사에서 ‘안녕-생존’ 차원이 통계적으로는 옳지만 이는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의 차이와 연관된 부분이 많아, 가난한 국가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사례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민코프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찾아낸 문화 차원이 자적-자제 차원이다.


‘자적 또는 방종’ 문화의 사람들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돈을 쓰고, 혼자서나 친구들과 여유롭고 재미있는 행위를 탐닉”하는 특성을 지니며, 반대로 ‘자제 또는 구속’ 문화의 사람들은 “여러 사회 규범과 금지에 의해 사람의 행위가 구속되며, 여가활동을 즐기는 것, 돈 쓰는 것, 기타 유사한 도락 행위가 어느 정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관적 행복감은 전자가 더 높으며, 홍콩의 부유한 시민보다 가난한 필리핀 여성이 더 행복하다는 역설도 설명이 가능하다.


경쟁과 긴장 속의 한국 문화는 특히 이번 개정판에 첨가된 ‘자적(방종)-자제(구속)’ 차원에서 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93개국 중 자제 쪽에 가까운 25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지니고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치조사에서도 자기표현적 가치보다 생존 가치를 중요시하는 쪽에 위치해 있다. 높은 자살률을 보이며 행복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을 이번 개정판의 문화차원 분석과 연계해 살펴보는 작업도 유용할 것이다.

문화 차이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문화의 분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2011년 <사이언스>지에 45명의 연구자들이 33개국의 자료를 분석해 밝혀낸 문화의 ‘빠듯함(긴장, tightness)-느슨함(이완, looseness)’ 차원의 탄생 과정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이는 위에 언급한 ‘자적-자제’ 차원과도 연관이 있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천연자원이 부족하며 환경적 위협이 큰 사회에서는 대개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빠듯함을 경험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주관적 행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의 생태학적 압력과 취약성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분화가 일어나며 진화해 왔다는 사실은 ‘미래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최신 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으로 세계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기에 어느 정도 문화의 수렴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이 지구상의 환경이 종적, 횡적으로 너무나 다양해 한동안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화 간 차이는 지속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서로의 차이를 알면 소통하기가 쉽고, 그럴 경우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문화의 차이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용적인 지혜와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사회심리학
필자는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교수를 거쳐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디어심리학』 등이 있으며, 한국방송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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