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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가 무겁고 딱딱하기만 하다고요?
대학교재가 무겁고 딱딱하기만 하다고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3.18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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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소설에서 만난 사회학』 조주은·박한경 지음|경북대출판부|205쪽|15,000원

 

이 책은 두껍고, 비싸고, 내로라하는 서양 학자의 책을 그저 번역한 수준의 사회학 교재가 주지 못하는 지적 흥미를 던져준다. 대학 교재도 이 정도 이상의 분발이필요하지않을까.

자 여기 205쪽 분량의 아주 얇은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이런 책을 누군가 지하철에서 읽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대학생 정도로 보인다면, 이 책은 십중팔구 ‘대학 교재’일 것이다. 그런데 책이 정말 얇아서 그런 용도조차 쉽게 의심을 살 수 있다. 대학 교재라고 한다면 무시무시한 부피를 기본으로 삼는, 뭔가 위압적인 외양을 하게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이 책은 3월 어느 날 지하철을 이용해 등교하는 한 학생이 아주 찬찬하게 훑어 내려가던 책이다. 책의 이름은 『소설에서 만난 사회학』, 부제는 ‘픽션보다 재미있는 사회학 이야기’다. 이렇게 보니 이 책은 사회학 교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피에르 지마의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83)나 루시앙 골드만의 『소설 사회학을 위하여』(청하, 1987)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 『소설에서 만난 사회학』을 그런 반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피에르 지마나 루시앙 골드만 류의 ‘소설 사회학’이나 ‘문학 사회학’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들이 그렇게 못박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문학 텍스트를 다의적 의미망으로 접근해 그것이 지닌 사회적 구조를 환기하는 동시에 텍스트의 문학성만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 창조성을 발굴하고자 했던 명백한 지향성이 『소설에서 만난 사회학』에는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할 듯하다. 저자들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아주 명료하다. “삼십년 知己인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쓰기로 한 것은 소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나 한가롭게 이야기를 하다가 소설 이야기를 하게 됐다. 소설 이야기는 어느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회학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러다가 소설 속의 사회학을 소재로 책을 써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삼십년 지기 두 사람의 우정 어린 의기투합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 책의 의미를 다 포착할 수 없다.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사회학 교재의 환골탈태
이런 구절이 서문에 또 있다. “사회를 연구하는 여타 학문들, 예를 들어 정치학, 법학, 경제학, 인류학, 커뮤니케이션학 등과 (사회학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난감해한다. 각종 사회학 개론 교재들은 연구 대상에 대한 혼란만 더해 줄 뿐이며, 『사회학적 상상력』과 같은 매력적인 제목의 입문서들은 막상 읽어 보면 사회학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만들 만큼 대중이 읽기에 쉽지 않다.” 아하, 이제 이 책이 놓일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저자들의 저술 동기를 알겠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소설을 통해 사회학을 만나면 좀 더 재미있게 사회학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학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모아서 뭔가 사회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같은 저자들의 설명대로, 이 책은 ‘소설의 사회학’이나 ‘문학 사회학’과 궤를 같이 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통해 사회학을 만나려고 온갖 애를 다 쓰는 사회학자들의 방법적 고민의 소산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소설 속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사회학이 직접 언급된 작품들, 사회학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더라도 사회학적 시각 또는 사례가 뚜렷이 담겨 있는 작품, 심지어는 사회학적 관점의 중요한 출발점을 정확하게 포착한 에세이,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까지 ‘사회학’이라는 리트머스시험지 위에 올려놓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제1장, 제2장에서는 소설에 묘사되는 사회학의 이미지를 다룬다. “안타깝게도 사회학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소설은 많지 않다. 소설 속의 사회학의 이미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유쾌하기만 한 작업은 아니었다”라고 저자들은 고백한다. 그런데도 이 작업을 계속한 것은 “일종의 사회학의 자기성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익한 작업”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그 확신이란 이런 것이다. “대중이 소설을 읽으며 형성하게 되는 사회학의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길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제2장에서는 사회학과 사회학자를 긍정적으로 이미지로 그린 소설들을 다뤘다. 제3장부터 제7장 까지는 책의 후반부다. 주로 사회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뒀다.

사회학의 탐구 대상이나 탐구 방법, 사회학의 매력 등 묵직한 사회학 교재들이 강조하려고 했던 바로 그 내용을 호명한 것이다. 이 부분은 전반부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일종의 긴장된 지적 작업 형태로 이어졌다. 저자들 말대로 제3장은 후반부의 서론 격인데, 이를테면 이렇게 접근했다. 제3장의 전체 제목은 「사회학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고, 세부적으로 ‘사회학은 의문을 품는 데서―『병신 같지만 멋지게』’, ‘인간과 동물은 무엇이 다른가요?’, ‘데이트에 대한 고정 관념’, ‘사람들은 왜 비싼 등산복을 입을까?’, ‘건물에만 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등을 통해 “사회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라고 제안한다. 지식의 축적과정, 사회학의 탐구 대상, 인간의 행동 양식 등을 ‘소설’이라는 거울을 통해 읽어내고자 한다.

소설의 통찰력을 검증한 사회학
한 번 더 저자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소설이 보여 주는 통찰력을 사회학이 검증해 주면, 사회학은 소설의 이야기를 활용해 보다 재미있게 스스로를 이해시킬 수 있고, 소설은 독자층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 입장에서는 소설도 읽고 사회학적 관점에도 익숙해지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에, 이런 재미를 통해 사회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유인’하려했던 저자들은 국내외 소설을 섭렵했다. 토마스 벨러의 단편소설 「다른 종류의 결함(A Different Kind of Imperfection)」에서부터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火車』, 『모방범』 등 東西 작품들을 넘나든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고, 또 묵직하지도 않으면서도 기존의 사회학 교재들 못지않게 사회학 입문서로의 교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말 그럴까 의심하는 이들을 위해 박현욱의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를 저자들이 어떻게 요리하고 있는지를 보자. 다소 상투적인 접근이긴 하지만 저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일부일처제에 대한 도발’, ‘일처다부제의 사회적 조건’, ‘모계제와 모권제’, ‘부모의 이혼’ 등을 읽어낸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사회학적 지식이 거대한 제도의 부정이나 전복을 위해서 동원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회학은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들의 판단을 도와주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쓰인다.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사회적 현상 하나를 선택해서 정말로 당연한 것인지 반문해 보라. 이것이 사회학적 통찰을 향한 첫걸음이다.”


자, 이쯤 되면 이 책은 무겁고, 두껍고, 비싸고, 내로라하는 서양 학자의 책을 그저 번역한 수준의 ‘사회학 교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못하는 지적 흥미를 던져준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학 교재도 이 정도 이상의 분발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교재에도 신선한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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