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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몸에서 ‘경기 12잡가’가 폭포처럼 흘러나와 … ‘아리랑’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에도 기여
가녀린 몸에서 ‘경기 12잡가’가 폭포처럼 흘러나와 … ‘아리랑’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에도 기여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4.03.17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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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_ 23. 경기민요 - 이춘희 名唱(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는 경쾌하고 밝아 배우기가 쉬운 것 같지만 섬세하기 때문에 진짜 어려워요. 그리고 막상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매우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가사는 骨髓에 맺혀야 하고, 소리를 많이 해서 그것을 소리화해야 합니다. 50년간 소리를 했지만, 아직도 안 되는 날이 많습니다. 맑은 물, 유리그릇 같은 투명한 것이 경기소리의 매력입니다. 들을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많은사람들이 맛보게 하고 싶어요.

결혼식에 축가가 나오는 게 일반화 됐다. 대개 혼인 당사자의 친구들이 부르는데,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초청해 부르는 경우도 있다. 노래들은 대부분 외국 것 아니면, 우리의 현대 노래들이다. 이와 관련해 어느 결혼식장에서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축가하러 나온 분이 경기민요 전수자였다. 하객들이 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경기민요 하는 이 분에게 모두가 쏙 빠졌다. 노래는 판소리 중 短歌의 하나인 「사랑가」였는데, 소리도 즐겁고 경쾌했지만, 그것으로 신랑을 돌려세우는 재미가 하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소리하는 도중 ‘사랑’이란 가사만 나오면 신랑이 만세를 부르게 했는데, 그날 신랑은 두 팔을 들어 만세를 수없이 했고, 그것으로 결혼식은 웃음과 즐거움의 도가니가 됐다. 우리 국악 노래의 흥겨움과 재미를 새삼 만끽할 수 있었을 뿐더러 국악의 대중화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했다.


우리의 국악 노래는 흥겹고 신나는 게 있는가 하면 심금을 쥐어짜는 슬픈 것도 있다. 경기민요는 그 가운데서 경쾌하고 밝은 소리로 꼽힌다. 대조적으로 서도민요는 조금 무겁고 슬프다. 경기민요는 서울, 경기, 충청도 일대지역의 민요로, 음색이 맑고 깨끗하며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경기민요는 여러 지방에서 고루 불리는 대중적인 통속 민요의 한 갈래로, 대표적인 노래로 「노랫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태평가」, 「한강수타령」, 「풍년가」 등을 들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친밀감이 가는 경기민요는 이 때문에 경기지방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고장에서나 즐겨 부르고 있다. 경기소리라는 게 있는데 이는 경기민요와 경기잡가를 포함하는 좀 포괄적인 것이다. 이것도 물론 서도소리와 남도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음색이 맑고 깨끗하며 경쾌한 것이 특징으로 ‘경기 12잡가’와 그 대표노래인 「유산가」, 그리고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달거리」 등이 즐겨 불린다.

박춘재-이창배-안비취로 이어지는 경기민요, 그 脈 속 소리인생 50년
소리인생 50년을 바라보는 이춘희(67) 명창은 바로 이 경기민요와 경기소리의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출중한 예인이다. 근대 경기민요의 맥은 조선조 말 가무별감을 지냈던 박춘재(1881~1948)를 거쳐 이창배(1916~1983), 이은주(1922~), 안비취(1926~1997)로 이어지면서 이춘희 명창이 그 대를 이어받고 있다. 그는 스승이던 안비취의 계보를 이어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이춘희가 경기민요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건 어려서부터의 타고난 ‘끼’ 때문이다. 어린 아이 때부터 소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소리에 빠져든 탓이다. 서울 토박이로 용산구 한남동에서 대대로 살아온 이춘희의 10대 시절인 1960년대에는 거리에서건 라디오에서건 민요가 흔하게 들려오던 때다. 그가 그 시절 국악을 알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소리가 좋았고 아름답고 곱게 들려서 빠진 것이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춘희가 떠올리는 노래는 뜻밖에도 대중가요다. 황금심이 불렀던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장희빈」. 연속극 앞뒤에 나오는 그 노래를 듣기위해 그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은 욕망은 결국 가요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했고, 거기서 대중가요를 익힌 게 이춘희 경기민요 인생의 출발이다. 그러나 가요학원에서 이춘희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것은 대중가요가 아니라 국악 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길로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였던 이창배 명창이 운영하는 ‘청구고전성악학원’에 다니면서 국악, 특히 경기민요와 인연을 맺는다. 거기서 이춘희는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 동안 이창배 명창 문하에서 경기민요를 비롯해 가곡과 시조, ‘12잡가’ 등을 두루 공부하며 열심히 배운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처음 이창배 선생님을 뵐 때는 한 3개월이면 다 배우겠다 싶었지요. 경기민요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창배 선생님에게 10년을 배우고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민요에 빠져들면서 소리와 추임새의 오묘함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무렵 안비취 명창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10년을 가르치던 이창배 명인이 어느 날 안비취 명창을 소개하면서 “이제 네가 배울 사람은 이 사람이다”며 그녀를 안비취 명창에게 넘긴 것이다. 안비취 명창은 그 때 초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던 터라 이춘희는 그를 스승으로 삼아 비로소 소리꾼 인생으로서의 포부를 갖는다.

▲ 500여 명창들과 함께한 ‘설립자들’ 공연.


안비취 명창은 이춘희에게 스승이자 어머니이기도 했다. 소리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여자의 품행에 대해 가르쳤고, 여자가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도 가르쳤다. 이춘희는 스승을 어머니로 삼으면서도 야멸차게 배우고 자신을 단련시킨다. 한 달간 방음장치를 한 골방에서 전화도 받지 않고 소리만 불렀다. 하루는 「유생가」만 30번, 다음날은 「제비가」만 30번 등 하루 여섯 시간씩 앉았다 일어서다를 반복하며 소리를 했다. 이것은 그녀가 창안한 혹독한 훈련방법이다. 노래에 몰두하고 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는 10여 년 소리를 하고 처음 대중 앞에 섰을 때 무참한 실패를 경험한 것에 따른 고육책이다. “10여 년 했으니 소리를 좀 안다고 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떨려서 소리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소리가 쉬운 것이 아니고 얕봐서는 안 되겠구나 했지요. ‘가사는 골수에 맺혀야 하고, 소리를 많이 해서 소리화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그 방법의 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1985년 국립극장에서 연 첫 발표회 때 성과가 나타난다. 이춘희는 무대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나선다. 못 하면 영영 노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노래를 불렀다. “그 공연 후 저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습디다. 이전까지는 그저 노래 참 잘한다는 말을 하던 사람들이, 그 무대 이후부터는 저를 명창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후 이춘희는 1986년 제주 한라문화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1988년 KBS 국악대상을, 그리고 1996년에는 한국방송대상 개인부분 국악인 대상을 받는 등 이은주, 안비취, 묵계월을 잇는 우리 국악계의 경기소리와 경기민요 제2세대 선두주자로 발돋움한다. 1995년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이후 민속단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1997년 11월 안비취 명창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된다.


이춘희의 경기민요 명창으로서의 출중한 예기는 해외에서도 빛을 발한다. 2007년 ‘코리안 사운드 앤 컬러’ 타이틀의 해외공연에서 이 명창은 한국의 전통예술을 빛낸 예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많은 해외공연 가운데 2011년 8월 독일에서의 공연을 그는 가장 자랑으로 꼽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2잡가가 있어요. 한 곡에 10분 이상 걸리는 곡인데, 그것 중 4곡과 「회심곡」, 그리고 민요 몇 가지를 갖고 독일무대에서 독창을 1시간 30분 했어요.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가사내용도 모르고 멜로디로 모르면서 하나 흐트러짐 없이 경청하고 끝난 후에 환호하는 것을 보고 제가 탄복을 했습니다.”


이 명창의 이런 해외에서의 명성은 우리나라의 세계적으로 중요한 한 문화이벤트에도 기여한다. 바로 우리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과정에서 아리랑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문서와 자료화면 위주의 심사에서 이 명창이 실연으로 아리랑의 참 모습을 보여준 것. 그는 아직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되던 2012년 12월 5일 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을 잊지 못한다.


“등재 여부를 모르니 축하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날 오전부터 한복을 입고 11시간을 꼬박 기다렸지요. 그리고 회의장이 너무 엄숙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소리를 할까 고민했어요. 그 때 아리랑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발표가 나왔고,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나를 버리고~’ 하며 소리를 띄우면서 무대로 걸어나갔습니다. 타이밍이 극적으로 잘 맞았었지요.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2절까지 거푸 불렀지요. 노래를 끝내고 인사를 하는데 모두 나와서 사진 찍자며 감싸 안더군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걸 몸과 소리로 보여준 그 날 밤을 그래서 잊을 수 없다는 얘기다.

▲ 2011년 8월 베를린 공연


이게 이춘희 명창을 전 세계에 알리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지난 1월 프랑스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프랑스’가 이 명창의 아리랑을 주제로 한 「아리랑과 민요(Chant Arirang et Minyo)」 음반을 제작해 출시한 것이다. 이 음반은 프랑스 전역의 방송사와 도서관에 소장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음반사 아르모니아문디의 유통망을 통해 유럽 등 전 세계 60여개 국에 소개됐다. 이 음반은 이 명창으로선 기념비적인 것이다. 이 음반에는 그가 평생 부르고 또 불렀던 「긴아리랑」, 「구아리랑」과 「아리랑(본조 아리랑)」, 「노랫가락」, 「창부타령」, 「노들강변」, 「태평가」, ‘경기 12잡가’ 중 「유산가」 등이 무반주 또는 장구 하나로만 이뤄진 담백한 연주로 실려 있다. “이 음반은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 기념 음반이기도 합니다. 통상 민요에는 반주가 많이 들어가는데, 이번 음반에는 무반주와 장구 장단 하나만 넣어 진솔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어요. 이를 통해 앞으로도 아리랑의 멋을 전 세계 많은 이들과 나눠나갈 생각입니다.”


계기는 또 다른 계기를 낳는다. 이 음반과 관련해 이 명창은 3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전통공연예술제인 ‘제17회 상상축제’에 초청을 받아 지난 7, 8일 개막공연으로 아리랑을 부른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이 명창은 1시간 20여분 동안 「밀양아리랑」과 「강원도 아리랑」, 「유산가」, 「이별가」 등 경기민요로 분류되는 민요들을 불러 호평과 함께 그의 명성을 더했다. 이 명창의 이번 공연에는 피리 명인 최경만과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도 함께 해 우리 국악의 예술성을 알리는데 한 몫을 했다.

해외서도 극찬 … 경기민요에 이야기 엮어 만든 소리극에도 애착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를 노래하고 알리는 오늘날의 활동이나 업적은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명창은 그래서 스승을 아끼고 그 업적을 알리는 데 정성을 다 한다. 특히 그가 소리와 인생을 배워 ‘어머니’로 모시는 안비취 명창에 대한 정성은 지극하다. 1997년 안비취 명창이 별세하자, 그 해 추모공연을 올린 것을 비롯해 2002년과 2010년에도 추모공연을 했다. 이에 더해 올해는 안 명창을 포함해 경기민요의 맥이라 할 수 있는 세 분 스승에 대한 대규모 추모공연을 마련했다. 이름 하여 「설립자들」이라는 타이틀의 추모공연이다. 3월 12일부터 사흘간 열린 「설립자들」 공연은 근대 경기소리의 기초를 확립한 박춘재를 비롯해 이창배, 안비취 등 이 명창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명창들의 예술혼을 기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으로, 이들을 위한 추모 사업을 출범시키는 첫 발이라는 게 이 명창의 설명이다. 추모를 위한 첫 사업으로 박춘재 명창을 기리는 동상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다.


현재 이 명창이 회장으로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는 ‘전통민요협회(www.koreansori.co.kr)’가 주관하고, 이 명창을 비롯해 역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이은주(92) 명창과 김영임, 김혜란, 이호연, 김금숙, 김장순 명창 등 경기명창 및 그 문하생 500여 명이 총출연한 매머드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에선 「유산가」, 「창부타령」, 「본조아리랑」, 「이별가」 등 경기민요와 ‘경기 12잡가’의 한 곡인 「달거리」, 「매화타령」, 「양류가」, 「실타령」 등 경기소리 및 「산염불」 등 서도민요, 그리고 「회심곡」, 「서울굿」을 비롯해 오늘날 확대된 경기소리의 다양한 갈래의 소리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안비취 명창의 애창곡이었던 「회심곡」을 재현했으며, 박춘재 명창의 ‘휘모리 잡가’ 중 「맹꽁이타령」이 젊은 소리꾼들에 의해 새롭게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후학 양성에도 열성을 쏟고 있는 이 명창의 소박한 꿈은 경기민요의 대중화다. 이의 일환으로 판소리처럼 경기민요에 이야기를 엮어 만든 소리극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이 명창은 그동안 「시집가는 날」, 「춘풍별곡」, 「까막눈의 왕」 등 이미 적잖은 소리극을 만들어 공연에 올린 바 있다. 이를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경기민요의 참맛을 두루두루 알게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맑은 물, 유리그릇 같은 투명한 것이 경기소리의 매력입니다. 경기민요는 들을수록 매력적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하고 싶어요.”


“花爛春城하고 萬化方暢이라/때 좋다 벗님네야/山川景槪를 구경을 가세/竹杖芒鞋 單瓢子로/千里江山 들어를 가니….” 이 봄, 이 명창의 낭랑한 「遊山歌」가 딱 어울리는 계절이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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